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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종교개혁은 가능한가?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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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제의 출발

강화은혜교회에서 열린 출판 감사예배에서 저자 이상윤 목사가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당당뉴스.강화은혜교회에서 열린 출판 감사예배에서 저자 이상윤 목사가 격려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당당뉴스.

가을을 알리는 붉은 단풍보다도 가을 절기를 가득 채우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종교개혁기념주일이다.

개신교의 탄생을 알리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10월의 마지막을 기념하기에 충분하며, 우리는 올해도 마르틴 루터가 95개 조 반박문을 발표한 10월 31일에 가장 가까운 10월 30일 주일을 종교개혁주일로 지킨다.

역사적으로 16세기는 이미 중세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아, 성경을 원문으로 해석하고, 오직 성경을 강조함으로써, 서방교회의 모든 제도이자 국가 권력으로 군림하던 교황의 패권은 더 이상 정상 가동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지탄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런 시기에 나타난 어거스틴 파 수도원의 마르틴 루터는 독일 제후들의 도움으로 서슬이 퍼런 가톨릭의 칼날에 희생되지 않고 살아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후 희대의 이단자가 되었고, 이어 프랑스령 사보이 공국의 상업도시인 제네바가 개혁교회를 지향하자 돌연히 기독교강요의 천재적 저자 장 칼뱅이 등장해 의회를 통한 개혁운동을 일으켜, 네덜란드의 하이퍼칼비니즘과 스코틀랜드 교회의 주축이 된 존 녹스를 통해 서유럽 교회들의 개혁운동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와 함께, 영국 왕 헨리 8세도 이혼 문제를 가지고 바티칸과 대결하다 자신이 수장이 되는 성공회 개혁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당시 유럽 교회들이 처한 상황과 형편은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종교개혁의 과제를 연상시킨다. 또한 그것은 초국가적 교권인 바티칸에 버금가는 국가교회를 세운 루터파와 장로교를 만든 장 칼뱅 그리고 대영제국의 호위무사 같은 새로운 국가교회를 만든 헨리 8세를 통해 기독교 왕국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2. 종교개혁이 의미하는 다양한 세계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던 2017년도에 미국 바이올라 대학교에서 종교사회학을 가르치던 로드니 스타크가 내놓은 저서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Reformation Myths: Five Centuries Of Misconceptions And (Some) Misfortunes)>는 우리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기존의 기독교 신학자나 역사학자들의 저술이 갖추지 못한 사회과학적 성찰과 실증적인 자료들을 총동원하여 시대상을 구현한 연구서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기독교의 발흥이나 기독교 승리의 발자취 및 종교개혁의 안팎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여 독자들을 압도하고 있다.

스타크는 그의 저서에서 종교개혁운동의 포문을 연 것으로 알려진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신학대학 교회 정문에 게시된 반박문이 사실인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는 물론 이 사건이 훗날 종교개혁을 서술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시사점을 풍기는 사건이었지만, 종교개혁운동의 극적인 효과를 거두려다 일어난 우발적인 성격의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뷔텐 베르그에 한 번도 다녀가지 않았던 루터의 개인비서 게오르그 뢰러가 남긴 라틴어 메모는 알아보기도 힘든 휘갈겨 쓴 라틴어 메모가 전부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 동조하기보다는 그런가 하며 들어보는 종교개혁에 관한 사실들은 놀랄 만한 다른 내용들도 수반하고 있다.

루터가 보름스 국회에서 조문을 당하고 도망치듯 사라졌지만, 선제후 프레데릭의 도움으로 용감한 루터 신부는 발트 브르크 성에서 독일어 성경을 번역하고, 탁상 토론을 연출하며 150종이 넘는 소책자와 각종 저서를 반포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가톨릭교회의 서슬이 퍼런 박해 속에서 용감하게 맞서 싸운 개혁자 루터는 영웅이었고, 그를 후원하던 제후들에게는 바티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명분을 쌓도록 이끌었을 터이다. 교권이 현혹하는 교회의 인사권과 재정권을 확보한 루터교회의 위용은 대단한 것이었고, 실제로 막대한 재산과 각지에 흩어진 제후들의 이해관계를 통해 새로운 지배체제를 구축한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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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 부분은 또한 영웅 루터의 모습을 역사의 후예들이 미화하지 않았는가 하고 여길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루터의 개혁 이후, 교구 주교 임명은 제후들의 손에 떨어졌고, 막대한 수도원의 재산 또한 바티칸의 손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뿐만 아니라 주민들은 주일 성수를 강조하는 법령에 따라 강제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통제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루터의 국가교회들은 칼뱅주의자들을 색출하고, 1580년대에는 색소니 지역에서 그들을 화형시켰으며, 1620년경에는 칼빈주의자들이 네덜란드에서 국민의회의 이름으로 알미니안주의자들을 정죄하고 이들 중 주동자 두 명을 처형한 후 도르트 문서를 남겼다. 이 도르크 문서는 칼뱅주의의 강력한 교리 사상을 표명한 것으로, 네덜란드 장로교회의 독재를 공식화하는데 이바지한 바 있다.

이처럼 종교개혁 시기의 종교탄압은 가톨릭뿐 아니라 자신과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이단 감별에 의한 사형 처분도 포함되었다. 영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헨리 8세도 가톨릭 교인뿐 아니라 루터교나 칼뱅주의자 심지어는 재세례파 등 다른 종교개혁 운동에 속한 사람들도 이단으로 몰아 참수시켰다.

로드니 스타크는 결국 종교개혁이 가톨릭에 저항하고 개혁을 시도했다기보다 피차간에 거슬리는 세력들을 평정하는 차원에서 행해졌고, 잔인무도하게 많은 크리스찬을 이단으로 몰아 처형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것이 유럽을 크리스텐덤(Christendum)으로 만들었다는 시각은 단지 신화라고 뼈아프게 말하고 있다.

스타크에 따르면, 우리가 상상하는 종교개혁 시절에 경건한 소작농이 가득한 중세 시대의 교회당이라는 이미지에는 역사적 근거가 없다. 유럽의 모든 교회는 애초부터 텅텅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개혁 이후, 교회의 언어를 라틴어에서 자국어로 바꾼 다음에는 과연 어떠했을까? 이전과 마찬가지로 교회는 텅텅 비어 있었다. 종교개혁은 라틴어 미사가 아닌 자국어 예배를 제공했기에, 민중들에게 호소력을 얻어냈다고 역사가들은 서술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스타크는 말한다.

1525년 이래 한 세기에 걸쳐 루터교 조사관들이 루터교 지역을 돌아다니며 쓴 보고서가 미국의 역사가 제랄드 슈트라우스에 의해 출판되었는데, 그중 한 부분에 이렇게 쓰여있다.

헤센 나사우 지역의 경우: 저녁 예배에 참석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술에 취해있었으며, 설교 내내 잠을 잤다. 예외가 있다면, 예배당 의자에서 넘어지면서 쿠당탕 소리를 낸다거나 계단에서 아기를 돌보는 여자들이 있었다는 것뿐이다. 대다수의 지역이 이와 비슷했으며, 참석자들 대부분은 자국어 찬양을 따라 부르지 않았고, 예배 도중 싸우거나 축복기도 중 몰래 빠져나가는 등 독일 루터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체 유럽 교회들이 그런 상태였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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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종교개혁은 가능한가?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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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감리교 제자사역부: 종교개혁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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