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포인트:
- 70년 전, 감리교회는 여성에게 목사 안수와 정회원 자격의 길을 열었다.
- 이 결정은 1968년 통합된 연합감리교회 출범과 이후 여성 목사의 권리 확대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56년 5월 4 일,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감리교 총회는 감리교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날 총회는 여성에게 목사 안수와 완전한 목사 권한을 가진 연회 정회원 자격을 부여하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총회 첫날인 5월 4 금요일, 오전부터 오후 내내 이어진 긴 토론 끝에 켄터키 윌모어 출신 대의원이자 애스베리 대학 총장이었던 잭 T. 존슨(Zach T. Johnson) 목사는 교착 상태를 풀기 위해, 교단 장정에 한 문장을 추가해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규정 아래 “순회목회(traveling ministry)”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잠시 후, 총대들은 389대 297(약 56.7%)의 찬성으로 이 제안을 통과시켰고, 이어진 표결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로 최종 승인했다.
존슨 목사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긍정적인 접근입니다. 이는 남성과 동일한 기준을 충족하는 모든 여성을 어떤 연회에서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결정은 이후 1968년 연합감리교회(The United Methodist Church) 창립 과정에서 인종 분리 구조였던 해외지역총회(Central Jurisdiction)의 해체부터, 2024년 동성애자 목사 안수 금지 조항 철폐에 이르기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
70년 전 내려진 이 결정은 단순히 안수의 문제를 넘어, 여성을 사역의 주체이자 동반자로 인정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는 오랫동안 남성 중심적 관점을 새롭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보도에 따르면, 당시 감리교회에는 이미 약 50명의 안수받은 여성 설교자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허용된 지역안수(local ordination)는 장로목사에게 주어지는 완전한 연회 정회원(full conference membership)과는 구조적으로 달랐을 뿐 아니라, 파송 보장(guaranteed appointment)이나 연금은 물론 연회 투표권도 없었고, 공식적인 순회설교자(traveling preacher)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1956년 이후 여성 목사들은 남성 목사와 동일한 기준 아래 파송을 받게 되었고, 연금과 연회목사회에서의 투표권을 포함한 권리를 보장받으며,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여성 안수의 역사를 연구하는 연합감리교회 집사목사(deacon)이자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남감리교대학교(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퍼킨스신학대학원(Perkins School of Theology)의 기독교역사 및 감리교학 조교수인 에밀리 넬름스 채스테인(Emily Nelms Chastain) 박사는 이 결정이 여성 목회 사역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변화였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감리교인들이 함께 고백한 신학적 선언이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성별로 제한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부르심은 남성들이 인정해야만 비로소 실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주 흑인 여성 감독으로서 최초의 총감독회(Council of Bishops) 회장을 역임한 인디애나 연회(Indiana Conference)의 트레이시 S. 말론(Tracy S. Malone) 감독은 70주년을 맞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성 안수의 길을 열어 준 수많은 여성 목회자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문이 닫혀 있을 때도 인내했고, 그들의 목소리가 의심받을 때도 복음을 전했으며, 교회가 그들의 리더십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았을 때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신뢰했습니다.”
그녀는 이어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의미 있는 진전을 감사함으로 기념하지만, 동시에 완전한 평등을 향한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연합감리교회의 여성 목사들과 여성 지도자들은 공적 영역에서 여성들이 직면하는 적대감이 여전히 존재함을 체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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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유엔(United Nations)은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권리가 후퇴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에서도 특히 유색인종 여성들은 더 큰 사회적 반발과 투표권에 대한 잠재적 장벽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에서 여성의 투표권이 헌법으로 보장된 것은 감리교회가 여성 성직을 공식 인정하기 불과 36년 전인 1920년이었다.
교회 안에서 여성의 평등을 위해 사역하는 연합감리교여권신장위원회(United Methodist Commission on the Status and Role of Women) 총무인 스테파니 요크 아놀드(Stephanie York Arnold) 목사는 “우리가 사회원칙(Social Principles)과 장정의 가르침을 실제 삶 속에서 충실히 살아낸다면, 그것은 오늘의 시대에 큰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연합감리교인들은 더욱 사랑이 넘치고, 해방적이며, 용기 있는 모습으로 저항하고 앞장서야 합니다. 우리는 여성 리더십을 자랑스럽게 높여야 합니다. 그리고 연합감리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인도하고, 설교하며, 가르치고 …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고 선포해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감리교 운동의 여성 설교자 전통은 운동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와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Susanna Wesley)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남편 사무엘 웨슬리(Samuel Wesley)가 영국국교회(Church of England) 사역으로 교구를 비웠을 때, 수산나 웨슬리가 10명의 자녀와 함께 드리던 주일 오후 가정예배에는 그녀의 영적 가르침을 듣기 원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후 감리교 운동의 주요 조직자가 된 존 웨슬리는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결국 여성 평신도 설교자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성 설교자에 대한 인정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아프리카감독감리교회(African Methodist Episcopal Church, AME) 초기 설교자였던 자레나 리(Jarena Lee)는 자신이 속한 교단이 여성의 설교 허가를 반복적으로 거부하는 현실을 목도해야 했다. AME 교회는 1960년에 이르러서야 여성에게 순회목회안수(itinerant orders)를 허용했다.
19세기 광범위한 감리교 운동 안에서 노예제 폐지 운동가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와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의 지도자 피비 팔머(Phoebe Palmer)를 비롯한 많은 평신도 여성은 계속해서 간증하고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여성의 완전한 성직 권리를 향한 길에는 오랜 시간의 투쟁과 좌절, 그리고 희생이 따랐다.
미국 최초로 안수받은 여성인 안투아네트 브라운 블랙웰(Antoinette Brown Blackwell) 목사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hrist)의 일부가 된 회중교회(Congregationalist) 소속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1853년에 안수한 인물은 감리교인이자 노예제 폐지 운동가였던 루터 리(Luther Lee)였다.
1866년, 헬레노어 M. 데이비슨(Helenor M. Davisson) 목사는 감리교개신교회(Methodist Protestant Church)에서 집사(deacon) 안수를 받아 감리교 전통에서 최초로 안수받은 여성이 되었다. 안나 하워드 쇼(Anna Howard Shaw) 목사는 1880년 감리교회(Methodist Episcopal Church)가 그녀의 안수를 거부하자 감리교개신교회로 옮겨 같은 해에 안수를 받았다.
1889년, 연합형제교회(United Brethren Church)는 엘라 니스원거(Ella Niswonger) 목사에게 완전한 성직 권리를 부여했다.
그러나 1939년, 19세기 중반 노예제 문제로, 남북으로 분열되었던 미국 (북)감리교회(Methodist Episcopal Church)와 미국 남감리교회(Methodist Episcopal Church, South), 그리고 감리교 개신교회(Methodist Protestant Church)가 통합하여 '감리교회(The Methodist Church)'가 탄생하면서, 여성 안수는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교단 통합을 위해 감리교개신교회 여성 성직자들은 자신들의 성직 권리를 포기해야만 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39년 교단 통합은 인종 분리 구조인 중앙지역총회(Central Jurisdiction)의 설립을 수반했다.
흑인 여성 감독으로서 최초의 총감독회(Council of Bishops) 회장을 역임한 인디애나 연회(Indiana Conference)의 트레이시 S. 말론(Tracy S. Malone) 감독이 2024년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열린 연합감리교 총회 아침 예배에서 설교하고 있다. 사진, 마이크 두보스(Mike DuBose), 연합감리교뉴스. 마찬가지로 1946년 연합형제교회(United Brethren Church)와 복음주의교회(Evangelical Church)의 통합으로 탄생한 복음주의연합형제교회(Evangelical United Brethren Church)에서도 여성 안수는 사실상 중단되다시피 했다. 공식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교단 통합 이후 여성 안수는 크게 위축되고 현저히 감소했다.
1950년대에 이르러 여성 리더십에 대한 인식은 다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II) 동안 여성들의 역할 변화와 더불어, 오늘날 연합감리교여선교회(United Women in Faith)의 전신 조직들에서 활동했던 감리교 여성 평신도들의 수십 년에 걸친 조직적 노력 덕분이었다.
연합감리교여선교회 총무인 샐리 보너(Sally Vonn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운동은 다른 모든 변화의 여정과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항 속에서도 변화를 이루어 가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온 이 유산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연합감리교여선교회 연대사역 책임자인 이성옥(Sung-Ok Lee)은 여성 평신도들이 선교회와 이후 기독교여성봉사회(Women’s Society of Christian Service)를 통해 기금을 모으고, 학교와 병원을 운영하며, 전 세계 선교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교회 사역을 위해 훈련받고 봉헌된 평신도 여성 사역자인 디코노스(deaconess)들을 파송했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공식 직분만 제외하면 이미 교회의 모든 영역에서 지도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라고 이성옥은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6년 총회 결정 이후에도 파송과 관련된 문제는 여성 성직자들에게 실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었다.
역사학자인 넬름스 채스테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56년 이후 수십 년 동안 진행된 연구들은 여성들이 규모가 더 작은 교회나 외딴 시골 지역의 쇠퇴하는 교회에 파송되는 경우가 많고, 여러 면에서 사역 여건이 더 나은 대형 교회 파송에는 배제되는 일이 반복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여권신장위원회와 같은 기관들이 세워진 것도 장정이 선언하는 가치와 실제 파송 제도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연합감리교회는 교단이 존재하는 4개 대륙 모두에서 여성 감독을 선출해 왔다. 그러나 여권신장위원회의 스테파니 요크 아놀드 목사는 여성들이 여전히 대형 교회에 파송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사례비 또한 남성 동료들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때때로 교인들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교회는 아직 여성 목회자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교회들이 여성 성직자들에 대한 이해와 파송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 역시 존재해 왔습니다.”라고 요크 아놀드 목사는 말했다.
평신도 여성들의 교인 자격을 온전히 인정하는 문제조차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다.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지난해 교단은 헌법 개정안을 비준했으며, 그 개정안에는 “성별(gender)”과 “장애(ability)”를 교인 자격을 제한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요크 아놀드 목사는 여성이나 유색인종 또는 성소수자를 목사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하는 교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연합감리교회를 꿈꾼다고 말했다.
“우리의 지방감리사(district superintendent)들과 감독들이 더 이상 그런 배제의 대화를 용납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연합감리교회에 속해 있음을 분명히 확인해주는 날을 소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따라 그 교회를 가장 잘 섬길 수 있는 목사들과 연결해 주면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요크 아놀드는 교회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할 경우 일부 교인들이 떠날 수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결국 더 많은 사람이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게 될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우리의 가치를 분명하고 담대하게 살아내는 것은 오늘날 세상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그리고 다양한 편견에 대한 해독제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이 방식으로 앞장서야 합니다.”
한(Hahn)은 연합감리교뉴스의 부편집장이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한국/아시아 뉴스 디렉터인 김응선(Thomas E. Kim) 목사에게 이메일 tkim@umnews.org 또는 전화 615-742-54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받아 보기를 원하시면, 무료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