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세상, 교회의 소명은 생명을 다시 엮는 것

(편집자 주: 이글은 오하이오 감독구를 이끄는 정희수 감독이 <Soul Food>에 쓴  ‘Called to Reweave Life: Feminine Wisdom, a Wounded Earth, and the Life-Giving Way of Christ’를 번역한 것입니다.)

2025년 4월 24일, 서울 꽃재교회에서 열린 서울 연회 본회의에서 정희수 감독이 윌리엄 스크린턴 선교사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2025년 4월 24일, 서울 꽃재교회에서 열린 서울 연회 본회의에서 정희수 감독이 윌리엄 스크랜턴 선교사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새로운 시대는 과연 어떤 얼굴로 우리를 찾아올까요?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힘'을 지배하는 능력으로만 이해해 왔습니다.
팽창과 소유, 속도와 통제를 추구하며 그것을 찬양해 왔습니다. 사람과 대지, 물, 숲, 심지어 신의 창조 세계마저 우리의 목적을 위한 자원으로 대할 때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지구는 신음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지쳐 있습니다.

전쟁과 분열, 생태 위기와 외로움, 그리고 점점 더 깊어지는 불평등으로 얼룩진 세상 속에서 저는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생명을 살리는 다른 힘은 없을까요?

그 질문 앞에서 저는 다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내가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새번역)

예수님은 자신이 오신 목적을 놀라울 만큼 단순하고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생명.”

예수님은 다스리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편을 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연약한 이를 짓밟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오셨습니다.

세상을 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여성적이라는 것(the feminine)’이라는 말의 영적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성적이라는 것’이라는 말은 여성만의 전유물을 뜻하는 것도, 여성을 전통적인 양육이나 모성의 이미지에 가두려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여성적이라는 말은 훨씬 더 깊은 차원의 영적 역량입니다. 그것은 모든 인류가,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의 교회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생명의 힘입니다.

받아들이는 역량.

품어 기르는 역량.

기다려 주는 역량.

서로를 이어주는 역량.

상처 입은 것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품어 안는 역량.

다른 이들이 끝났다고만 말하는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을 발견하는 역량.

대지는 이미 이러한 지혜를 알고 있습니다.

대지는 씨앗을 받아들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겨울에도 대지는 생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상처 입은 땅에서 풀은 다시 돋아나고, 불타 버린 숲에서는 새싹이 다시 솟아납니다.

저는 이것을 대지 같은 여성적 지혜(earth-like feminine wisdom)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은 이 지혜를 통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예수께서는 몸소 생명을 살리는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꺼리던 이들의 몸에 손을 내미셨습니다.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을 환영하셨습니다. 굶주린 이들을 먹이셨고, 보잘것없다는 사람들과 식탁을 같이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힘이 아니라,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었습니다.

세상은 십자가 위에 죽음의 권세로 자신의 힘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활로 응답하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힘의 문법을 가르쳐 줍니다.

생명을 주는 사랑은 생명을 파괴하는 어떤 힘보다 강합니다.

저는 여러 현대 여성 신학자들의 목소리에서 이러한 도전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라 코클리(Sarah Coakley)는 기독교의 힘을 “연약함의 힘(power in vulnerability)”으로 다시 생각하자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연약함은 수동성이나 무기력이 아닙니다. 관조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열고, 스스로를 내려놓을 때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힘을 마주하게 됩니다.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생명을 살리는 진정한 힘 말입니다.

정현경(Chung Hyun Kyung)은 신학을 고통받는 이들의 몸과 기억 속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녀는 일찍이 아시아 여성의 신학을 가리켜 “매우 제3세계적이고, 매우 아시아적이며, 매우 여성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녀의 신학은 추상적인 교리에서 출발하기를 거부합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고통, 기억, 몸, 그리고 해방을 향한 투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저는 그녀가 말한 ‘(恨)사제’라는 이미지를 오래전부터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恨)’은 단순히 분노나 슬픔에 그치지 않습니다.

침묵당하고, 유린당하고, 쫓겨나고, 잊혀진 이들의 삶에 켜켜이 쌓인 역사적 상처입니다. 그러나 한을 품은 이들은 단순한 피해자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고통 속에서도 묵묵히 밥을 지어 먹이며 아이들을 키우고, 이웃을 돌보고, 노래하고, 춤추고, 기도하며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워 왔습니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생명의 사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상처를 품고 살아가지만, 그 상처가 최후의 종결자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저는 이런 질문을 품게 됩니다.

지구도 한(恨)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염된 강과 바다에서, 사라져 가는 숲에서, 멸종해 가는 생명종(species)에서, 전쟁으로 산산이 부서진 땅에서, 생태계 파괴로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울부짖음 속에서 우리는 그 한(恨) 맺힌 소리를 듣지 않습니까?

지구의 생명도 깊은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캐서린 켈러(Catherine Keller)는 '지구적 얽힘(planetary entanglement)'이라는 언어를 통해 이 현실의 또 다른 차원을 일깨워 줍니다. 인간은 자연과 분리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몸과 강, 대기와 숲, 이웃과 다가올 미래 세대까지도 모두 심오한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이처럼 깨지기 쉬운 지구적 상호의존성 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골로새서의 선언대로,

만물이 그분 안에서 함께 유지되는(골로새서 1:17)” 우주적 그리스도 안에서 말입니다.

강 하나가 죽으면 인간의 삶도 메말라가고, 생명종(Species) 하나가 사라지면 창조 세계는 가난해지며, 공동체가 하나가 버림받으면 우리 모두의 인간성은 훼손됩니다.

이 세 신학자의 목소리는 서로 다르지만, 우리를 하나의 초대로 이끕니다.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하십시오.

상처에 기울이십시오.

관계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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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들의 목소리는 저를 다시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합니다.

"내가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코클리의 “연약함의 힘”은 십자가에서 그 깊은 의미를 발견합니다.

정현경의 한(恨)의 신학은 상처 입은 인류를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이시는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이끕니다.

켈러의 상호의존에 대한 비전은 골로새서가 선포하듯, ‘만물이 그분 안에서 함께 유지되는’ 우주적 그리스도를 기억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러므로 여성성(femineity)을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는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생명의 을 다시 발견하는 것입니다.

포용하는 힘.

연결하는 힘.

상처를 공동체적 연대로 변화시키는 힘.

죽음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생명을 길러내는 힘.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생명을 설명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생명을 주러 오셨습니다. 이것은 구원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새롭게 합니다. 구원이 단지 내가 죽은 뒤 어디로 가느냐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너무 작은 구원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또한 우리에게 묻습니다.

무엇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가?

상처 입은 사람들이 회복되고 있는가?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고 있는가?

버림받은 공동체가 희망을 되찾고 있는가?

황폐화된 토양이 다시 숨 쉴 수 있는가?

강물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자신의 존엄성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다시 발견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생명을 주는 신학입니다.

사람들에게.

공동체에.

상처 입은 기억에.

땅과 물과 숲, 그리고 온 창조 세계 공동체에 생명을 주는 신학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계셔야 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교회가 존재하는 곳마다 많은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존엄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더 많은 외로운 사람이 공동체를 만나야 합니다.

더 많은 상처 입은 사람이 치유를 경험해야 합니다.

더 많은 창조 세계가 보호받아야 합니다.

더 많은 원수된 이들이 화해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교회에 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교회가 얼마나 큰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가, 얼마나 성공했는가가 아닙니다.

어쩌면 질문은 단순합니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고 있는가?

새로운 시대는 어쩌면 부드러워 보이는 곳에서 시작될지 모릅니다.

품어 기르는 힘에서.

기다려 주는 용기에서.

찢겨진 것들을 다시 이어 붙이는 지혜에서.

생명이 다시 솟아날 때까지 상처를 품어 안는 역량에서.

이것은 결코 약한 힘이 아닙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드러났고, 부활로 확증된 힘입니다. 세상은 종종 힘으로 사람들을 굴복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으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세상은 종종 배제와 두려움으로 질서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십니다. 그리하여 저는 대지 같은 여성적 지혜(earth-like feminine wisdom)의 가장 깊은 곳에서, 그리스도를 봅니다.

생명을 받아들이시는 그리스도.

생명을 보호하시는 그리스도.

상처 입은 이들을 품어 안으시는 그리스도.

죽음에서 생명을 이끌어내시는 그리스도.

그리고 저는 그분의 말씀을 다시 듣습니다.

"내가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새로운 시대는 마침내 가장 강한 자가 승리할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는 우리 중 더 많은 이가 생명을 살리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시작될 것입니다.

미래는 정복하는 힘이 아니라,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에 속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지혜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어져 온 지혜이며,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복음이고, 상처 입은 세상 속에서 교회가 부름을 받은 소명입니다.

바로,

생명을 다시 엮는(reweave)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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