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대하여: 대림절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편집자 주: 타인종목회자 전국연합회는 “알아두면 쓸데있는 목회 잡학사전(MINISTRYPIDEA)”이라는 제목으로 웨비나 시리즈를 마련했다. 이 글은 그 첫 번째 강의로, 곽지선 목사가 8월 18일 열린 웨비나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곽지선 목사. 사진 제공, 곽지선 목사.곽지선 목사. 사진 제공, 곽지선 목사.

처음 타인종목회자 전국연합회에서 예배에 관한 강의를 부탁받았을 때 조금 고민했습니다. 예배학을 전공한 것도 아닌 제가 예배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주최 측에서 정해 준 강의 제목을 보았습니다.

“예배에 대하여: 이전에 이런 걸 알았더라면…”

(원제: Worship & Sacrament: We Thought We Knew…)

제목을 보는 순간, 아! 이거라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예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목회하며 뒤늦게 배운 것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몰라서 배우고, 실수하면서 배우고, 교인들에게 배우면서 조금씩 깨달아 온 것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목회하며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대림절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제가 미국 교회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첫 사역지에서 교회총회(church conference)를 준비하던 어느 날, 교회 지휘자가 대림절(Advent) 찬양에 대해 의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때 대림절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일단 약속을 잡고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했지만, 제가 경험했던 한국 교회에서는 당시 교회력을 중요하게 여기며 예배했던 기억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다 미국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대림절이라는 절기를 실제 목회의 언어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왜 기다리는지, 왜 촛불을 하나씩 밝히는지, 왜 성탄절 전에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지 하나씩 배웠습니다.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배우려는 마음은 필요합니다.

목회를 오래 했다고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도, 사람도, 문화도 변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보다 계속 배우려는 마음이 있느냐인 것 같습니다.

예배는 여정입니다

제가 예배를 준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예배는 여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예배에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순서들의 모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이고(Gather), 하나님 앞에 서고(Stand Before God), 듣고(Listen), 응답하고(Respond), 세상으로 보냄 받습니다(Be Sent Forth).

예배가 끝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과 받은 은혜를 가지고 다시 세상으로 보냄 받는 것입니다.

예배를 준비할 때 여러분은 어디서 시작하십니까? 본문입니까? 설교 제목입니까? 찬송입니까? 아니면 지난주 주보를 열어 날짜부터 바꾸십니까?

저도 그렇게 시작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계속해 가면서, 예배를 준비할 때 저 스스로 다섯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질문들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1. 오늘, 이 예배를 통해 회중을 어디로 이끌고 싶은가?

예를 들어 설교의 주제가 용서라고 해봅시다.

질문은 단순히 “용서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예배 안에서 사람들이 용서를 어떻게 만나고 경험하게 될 것인가?”입니다.

말씀을 들으며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를 수도 있고, 기도하면서 붙들고 있던 상처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성찬상에서는 내가 먼저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예배를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목회적 의도(pastoral intention)가 있어야 합니다.

왜 이 기도를 하는가? 왜 이 찬송을 부르는가? 왜 여기서 침묵하는가? 설교 후 회중이 말씀에 응답할 공간이 있는가?

예배의 각 요소를 준비할 때는 그것이 예배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회중을 어디로 이끌어 가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2. 설교를 빼도 나머지 예배가 같은 이야기를 하는가?

한번은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말씀을 두고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물 위를 걸을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작은 한 걸음을 내디디면 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말하고 그냥 끝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설교 후 말씀에 대한 응답(Response to the Word)의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작은 실천이 적힌 발자국을 준비해 주보에 넣고, 마이크를 들고 회중석을 다니며 몇몇 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전화를 한 통 하세요(Make a phone call).”
“누군가를 격려하세요(Encourage someone).”
“용서하세요(Offer forgiveness).”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세요(Pray for someone).”
“용기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디세요(Take one brave step).”

그리고 물었습니다.

“이번 주 당신에게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분은 남편에게 사과해야겠다고 했고, 어떤 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친절한 일을 생각해 나누기도 했습니다.

매주 이런 활동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활동이 아니라 응답입니다. 어떤 주일에는 침묵이나 기도, 찬송이나 성찬이 응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질문은 “어떤 활동을 추가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응답할 공간을 만들 것인가?”입니다.

3. 예배에서 무엇을 가지고 월요일로 갈 것인가?

예배는 주일 한 시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설교 내용을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을 울린 한 문장이나 한 가지 결단, 하나님께 받은 위로는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예배에서 듣고 경험한 것이 월요일의 삶으로 이어질 때, 믿음은 비로소 삶 속에 발을 내딛습니다. 예배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시간이 아니라, 가정과 일터,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복음을 살아갈 힘을 얻는 자리입니다.

4. 이 전통 뒤에는 어떤 거룩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가?

어느 종교개혁주일(Reformation Sunday)이었습니다. 그 교회에는 그날이면 전통적으로 부르는 찬송이 있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A Mighty Fortress Is Our God)”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찬송이 왜 중요한지 몰랐고, 그날 그 찬송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후 한 교인이 자기 어머니가 바로 그 찬송을 부르기 위해 교회에 오셨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내년에도 그 찬송을 부르지 않으면 교회에 더 이상 나오지 않겠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그분을 찾아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주보에 들어가는 찬송 한 곡이었지만, 그분에게는 신앙의 기억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해 종교개혁주일에는 그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것은 제가 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약한 리더십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목회적 리더십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꾸거나 끝내야 할 것도 있고,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비전도 필요하고 리더십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인공은 아닙니다. 사실 회중도 주인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공이십니다.

그렇다면 나의 역할은 예배를 나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 회중이 하나님을 신실하게 예배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특히 타문화 목회(cross-cultural ministry)에서는 이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게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바꾸기 전에 들으십시오(Listen before changing).
판단하기 전에 배우십시오(Learn before judging).
이끌기 전에 이해하십시오(Understand before leading).

목회적 리더십은 결국 경청과 분별 위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미국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 꽤 오랫동안 주일 오후가 참 힘들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이상할 정도로 허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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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때부터인지 작은 의식이 하나 생겼습니다. 주일 오후에는 맛있는 간식을 먹으면서 한국 드라마를 봤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것도 자기돌봄(self-care)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몇 시간, 목사가 아니어도 되는 몇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긴장이 풀리고,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자기돌봄이 꼭 거룩하거나 영적으로 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에게는 “나 오늘 정말 힘들어,” “그 말 때문에 화났어,”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할 수 있는 동료도 필요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목사답게 정리해서 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자기돌봄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인식(self-awareness)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잘하는가? 무엇을 할 때 자연스러운가?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하고 방어적으로 만드는가?

이런 질문은 예배를 인도할 때도 중요합니다. 나는 나 자신으로서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목사’의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가?

5. 나는 하나님과 이 회중, 그리고 나 자신에게 충실하게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가?

물론 “나다운 예배”라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대로 예배를 만들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과 신학, 전통과 회중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목소리와 성격, 은사와 한계를 알고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인식이 부족하면 자신의 불안이나 욕구를 리더십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갈등이 두려워 필요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정말 회중을 위해 이것을 고집하는가? 아니면 내가 인정받고 싶은 것인가?

이 전통을 신학적인 이유로 바꾸려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한 것인가?

자기 인식은 나 자신에게 몰두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 자신이 예배의 중심이 되지 않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개인적인 질문 하나를 남기고 싶습니다.

목사가 아닐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

누군가에게 목사일 필요가 없는 관계가 있습니까? 무언가를 이끌 필요가 없는 공간이 있습니까? 유용하지 않아도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목사로 부르시기 전에, 먼저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혼자 걸을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예배를 준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질문은 다음 다섯 가지입니다.

1. 오늘, 이 예배를 통해 회중을 어디로 이끌고 싶은가?

2. 설교를 빼도 나머지 예배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3. 예배에서 무엇을 가지고 월요일로 갈 것인가?

4. 이 전통 뒤에는 어떤 거룩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가?

5. 나는 하나님과 이 회중, 그리고 나 자신에게 충실하게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목회하면서 여러분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목회를 시작하는 후배 목사님들을 보면 참 고맙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안쓰럽기도 합니다.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까요.

언젠가, 이 예배의 경험을 책으로 나누게 된다면, 첫 페이지에 이런 말을 쓰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는 젊은 목회자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든 답을 알고 예배를 준비하거나 목회할 수는 없습니다. 또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고 해서 부끄러운 일도 아닙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배우면 되는구나.”

“나도 한번 해볼 수 있겠다.”

이런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모든 답을 가지고 목회할 수는 없더라도, 서로 묻고 듣고 배우며 다시 시도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저도 대림절이 무엇인지 모르고 목회를 시작했고, 아직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함께 배우며 목회해 가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종목회자 전국연합회가 주관하는 ‘알아두면 쓸데있는 목회 잡학사전(MINISTRYPEDIA)’에 참여를 원하는 분은 포스터의 QR코드를 통해 신청할 수 있습니다. 타인종목회자 전국연합회가 주관하는 ‘알아두면 쓸데있는 목회 잡학사전(MINISTRYPEDIA)’에 참여를 원하는 분은 포스터의 QR코드를 통해 신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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