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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만나면 나의 우주가 피어난다, 영화 말없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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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글은 연합감리교뉴스의 <영화와 설교> 시리즈로, 영화 “말없는 소녀”에 대한 현혜원 목사의 글입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현혜원 목사가 시카고 제일 ”템플” 연합감리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현혜원 목사.현혜원 목사가 시카고 제일 ”템플” 연합감리교회에서 기도하고 있다. 사진 제공, 현혜원 목사.  

난생처음 받은 사랑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지난 몇 달간 여러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요, 굳이 한 작품을 뽑자면 <말없는 소녀(An Cailín Ciúin /The Quiet Girl)>가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과한 표현과 언어가 넘쳐나는 할리우드식 영화에 익숙한 제게 영화 <말없는 소녀>는 신선한, 새로운 언어의 영화였습니다. 발표한 작품은 많지 않지만, 절제된 방식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일랜드 대표 작가로 떠오른 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Foster)>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아일랜드 출신 콤 베어리드가 감독을 맡았습니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97%(2023년 11월 24일 기준)인 것만 봐도 이 영화의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습니다.

네 명의 자매가 아침 식탁에 둘러앉아 조곤조곤 수다를 떱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이야기꽃은 아버지가 들어오자마자 금세 사그라들고 맙니다. 아이들은 눈을 떨구고, 입은 굳게 다물어버립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며, 아버지는 차갑게 아이들을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장황한 설명이 없이도 아버지라는 존재가 이 집 아이들에게는 두려운 존재일 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낡고 초라한 집에는 아이들이 다섯 명이나 있지만 엄마는 여섯 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입니다. 아버지는 술과 여자에 빠져 가족을 돌보지 않고, 엄마는 삶의 무게가 힘겹기만 합니다. 부모의 불행과 가난은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아이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힘겨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중 넷째 아이인 아홉 살 코오트는 항상 바깥으로만 떠도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마치 자신의 목소리는 가치가 없다는 듯이 침묵합니다. 어머니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침대 밑으로 숨어버리고, 자매들이 조잘조잘 떠드는 모습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합니다. 마치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공주처럼 아홉 살의 어린 여자아이는 묻는 말에 간신히 대답만 할 뿐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가냘픈 어깨와 제대로 마주치지 않는 눈동자는 아이가 길지 않은 아홉 해 동안 자기 존재를 표현할 일이 많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아이는 어떻게도 자기를 표현할 줄 모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는지도, 원해도 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아요.

만삭의 어머니는 모든 아이를 챙길 수 없어서, 여섯째 아이를 낳을 때까지 넷째 딸 코오트를 남이나 다름없는 먼 친척인 칸셀라 부부의 가정에 맡깁니다. 아이는 슬퍼하지도 않아요.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않은 채 인형처럼 차에 실려 보내집니다. 실망으로만 가득 찬 삶에 실망 하나를 더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 친척은 따스하고 자상합니다. 이블린 아줌마는 따뜻한 물에 씻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코오트를 따뜻한 물에 씻겨주고, 새 옷을 입혀줍니다. 손을 잡고 걷고, 무릎을 굽히고 눈을 맞추며 이야기합니다. 이블린의 남편 숀 아저씨는 아침마다 아이가 달리기하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지켜보고, 자기 아내 몰래 아이에게 과자를 건네주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아일랜드의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코오트는 짧고도 찬란한 여름 한 계절 동안 킨셀라 씨 가정에 서서히 스며듭니다.

창백하기만 하던 아이의 볼은 어느새 핏기가 돌기 시작하고, 당최 웃을 줄 모르던 아이의 다문 입에 슬쩍 행복감이 스밉니다. 발갛게 볼을 물들인 채 아침 햇살을 받으며 달리는 아이의 얼굴에 떠오르는 은은한 미소를 보는 것만큼 큰 기쁨을 주는 장면도 없었습니다. 아이는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 난생처음 배웁니다. 처음 듣는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에 아이의 여름은 초록빛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찬란한 햇살처럼 눈부시게 반짝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여름이 물러가고 코오트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난생처음 아이는 원하는 것이 생겼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킨셀라 부부의 집에 온 후로는 짓지 않던 무너질 듯 슬픈 표정을 짓고 불안해하며, 시키지 않아도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오면서 자신이 이 집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표현합니다. 아이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온몸으로 표현하지만, 어른들 세계에는 어른들만의 규칙이 있습니다. 아이의 언어를 모두 읽으면서도 킨셀라 부부는 차마 코오트에게 남으라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킨셀라 부부는 먼 길을 운전해 코오트를 자기 집에 데려다줍니다. 코오트의 가족은 여전히 가난하고 불행합니다. 몇 달 만에 만나는 엄마는 아이를 보고 한 번 안아주지도 않습니다. 아이는 또다시 부유하는 섬처럼 덩그러니 남겨집니다. 여름 내내 꽃처럼 피어나던 아이는 순식간에 작은 먼지처럼 움츠러듭니다.

아이는 이블린과 숀이 탄 차의 뒷모습을 힘겹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문을 박차고 힘껏 달려서 따라갑니다. 매일 숀 아저씨와 아침마다 뛰었던 것처럼요. 떠나던 숀은 저 뒤로 달려오는 코오트를 보고 차를 멈추고 아이에게 달려갑니다. 코오트는 숀에게 있는 힘껏 매달립니다. 숀은 아이를 가득 껴안아 줍니다. 그리고 아이는 처음으로 숀을 이렇게 부릅니다. “아빠, 아빠.” 마치 토해내듯 부르는 아빠라는 말은 너무도 강렬해 그 순간 아이의 감정이 고스란히 벅차게 전해져 옵니다. 아이의 간절함과 애정, 두려움과 슬픔까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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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아이가 숀을 아빠라고 부르며 꼭 안긴 장면에서 끝이 납니다.

영화는 아이의 삶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아이가 친부모의 집으로 돌아가서 여름 이전의 삶을 다시 살아가야 했는지, 아니면 (적은 가능성이지만) 킨셀라 부부와 함께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 아이의 남은 삶이 행복으로 찬란하게 피어났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강렬하게 아이의 행복을 염원하게 되는 우리의 마음만 남습니다.

저 찬란한 여름이 아이에게 행복으로 남을지, 아니면 오히려 현재의 고통을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아이를 더욱 괴롭게 할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아이가 행복하기만을 간절히 바랄밖에요. 매일 아침 숀이 읽는 신문을 가져오기 위해 달려가는 동안 아이의 얼굴에 슬쩍 스치던 그 행복이 계속되기만을 바랄 수밖에요. 아홉 살의 아이가 인생을 살기도 전에 불행을 겪는 것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아이의 삶은 이미 상처투성이입니다. 이 짧은 여름 한 철을 제외한 아홉 해 동안 코오트는 누군가의 관심을, 애정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여름 이전의 코오트는 필요 없는 아이, 공부 못하는 가난한, 그리고 이상한 아이일 뿐입니다. 잔인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까요?

오프라 윈프리와 브루스 페리(Bruce B. Perry)가 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인 <What Happened to You? (네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에 어릴 적 트라우마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이 책에 따르면, 아동기에 겪는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 성인이 된 이후까지도 남아 생각이나 판단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도대체 뭐가 문제니? (What’s wrong with you?)”라고 물을 게 아니라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라고 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의 문제는 개인의 결정이 아니라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로 인한 것입니다. 알코올 등과 같은 중독 문제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기인하는 것으로 봅니다.

킨셀라 부부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채 자란다면 코오트는 아마도 어렵게 성장하고, 성장해서도 모든 것이 어렵기만 한 사람이 될지 모릅니다. 낮은 자존감, 우울, 외로움이 늘 그를 괴롭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찬란한 여름 한 철, 따뜻한 사랑을 받은 아이는, 그래도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찬란한 꽃으로 피어나는 법을 배운 아이는, 어쩌면, 다시 불행으로 뒤덮인 집으로 돌아와 성장했더라도 마음 한켠에 희망을 품고 자라지 않았을까요?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는 아홉 살의 작은 여자아이는 먼지 한 톨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자신을 바라봐 주고 눈을 마주치면 미소를 지어주는 타인이 가까이 있는 존재는 꽃처럼 피어납니다. 한 존재가 먼지 한 톨일 수도 있고, 꽃 한 송이가 될 수도 있는 그 차이는 오직 사랑뿐임을, 영화는 잔잔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코오트라는 작은 우주는 따뜻한 사랑을 만났을 때 비로소 피어날 수 있었음을, 영화는 이야기합니다.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12월에, 사랑으로 우리의 우주가 피어나고, 타인의 우주 또한 피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이메일 tkim@umnews.org 또는 전화 615-742-5109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무료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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