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교리와 교단의 전통에서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삶과 역사 속에서인가?
2026년 3월 31일, 테네시주 내쉬빌에 소재한 밴더빌트 신학대학원에서 열린 한 강연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행사를 소개한 웬들랜드-쿡(Wendland-Cook) 종교와 정의 프로그램 디렉터 요르그 리거(Joerg Rieger) 교수는 이번 모임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번 모임은 한국에서 ‘민중신학’이라고 불렸던 특정한 신학을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묻고자 합니다.”
리거 교수는 민중신학이 한국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신학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오늘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질문했다.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문제입니다. 오늘의 투쟁 속에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권위주의 체제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해방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함께 탐구하려 합니다.”
그는 이어 신학과 종교의 역할에 대해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종교는 어떻게 해방의 일부가 되는가? 종교는 문제의 일부일 수 있지만, 동시에 해결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이날 강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제의식이 되었다.
강연자로 나선 성공회대 은퇴 교수이자 죽재서남동목사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권진관 교수는 자신의 신학적 여정을 풀어내며, 민중신학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삶 속에서 형성된 신학임을 강조했다. 그는 신학의 출발점을 “민중의 이야기”에서 찾았다.
그의 말은 단순한 신학적 정의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고통과 저항의 현장에서 빚어진 하나의 신앙고백과도 같았다.
권진관 교수의 신학은 교실이나 서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신학은 감옥과 거리, 억압의 현실 속에서 태어났다. 그는 억압의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신학을 형성한 신학자이자, 오늘의 시대 속에서 그 신학을 다시 질문하는 사상가이다.
권 교수는 1974년 서울대학교 재학 중 민청학련 사건으로 체포되어 약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에도 한국 사회의 억압적 현실을 몸소 경험하면서, 기존의 학문적 길을 떠나 신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가 신학을 배우기 시작한 곳은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안병무, 서남동, 문동환과 같은 민중신학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 만남은 단순한 학문적 인연을 넘어 신학과 삶이 하나로 만나는 사건이 되었다.
권 교수는 1970~80년대 한국 사회의 시대적 배경도 설명했다. 농촌 인구가 대규모로 도시로 이동하고, 공장 노동자와 도시 빈민이 급증하는 가운데, 급격한 산업화와 군사독재가 동시에 진행되던 시기였다. 정치적 자유는 철저히 억압되었고, 민중신학은 바로 이 현실 속에서 등장했다.
그는 민중신학이 단순히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신학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지식인들의 자발적 선택과 회개의 결과였다. 당시 많은 대학생과 지식인,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고 노동 현장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삶을 몸으로 경험했다.
“민중신학은 지식인들의 회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민중신학은 그렇게 ‘가르치는 신학’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신학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권 교수에게 신학은 교리를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을 해석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신학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시작됩니다.”라고 권 교수는 자신의 신학을 요약했다.
민중신학은 한국 교회와 사회 속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신학적 흐름으로 자리해 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민중은 역사의 주체다.”라는 잘 알려진 명제가 있다. 그러나 권 교수는 이 명제를 되풀이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더 깊이 파고들며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민중은 어떻게 역사의 주체가 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오늘의 시대 속에서 민중신학이 여전히 살아 있는 신학이 되기 위해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다.
초기 민중신학은 ‘한(恨)’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었다. 한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오랜 억압 속에서 축적된 슬픔과 분노, 절망이 응축된 상태를 가리킨다. 민중신학자들은 이 한이 어느 순간 폭발하여 역사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권 교수는 한의 한계를 분명히 짚었다.
“한에 기반한 에너지는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고, 복수와 반복의 악순환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한은 더 이상 중심 개념으로 기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민중의 주체성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권 교수는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체제의 균열”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현대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보면서, 그 안에 수많은 “균열” 또는 “구멍”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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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목한 균열은 ‘이주 노동자의 고통’,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 ‘성차별’, 그리고 ‘경제적 양극화’로 나타나는 현대적 모순들이다. 이러한 균열들은 단순한 사회 문제가 아니라, 체제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부정적인 측면만 보지 않았다.
이 균열은 카이로스의 공간입니다. 즉,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시간, 변화가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은 저절로 해결되며 변화를 이끄는 것은 아니다. 권 교수는 민중의 주체성이 시작되는 지점을 “외침(cry)”에서 찾았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고통은 먼저 외침으로 터져 나온다. 그러나 외침은 쉽게 사라진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이야기다.
“외침이 이야기로 승화할 때,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함께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이야기는 개인의 고통을 사회적 현실로 확장시키는 통로다. 1970~80년대 한국에서 문학, 노래, 영화, 미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들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민중의 삶을 드러내는 신학적 언어였다.
권 교수는 은사인 서남동 교수의 “몸의 언어” 개념을 확장하여, 이야기를 “증상(symptom)”으로 해석했다. 이 개념은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에서 가져온 개념으로, “억압된 고통은 몸에 남고, 그 고통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며, 그 표현이 바로 증상”이라는 뜻이다.그는 말한다. 따라서 “이야기는 민중의 증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체제가 숨기려는 진실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체제를 흔든다며 이야기의 중요성을 말했다.
“좋은 이야기는 진실을 드러내고, 공감을 형성하며, 연대를 만들어냅니다.”
강연 이후 이어진 응답에서 밴더빌트 신학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조다니엘(Daniel Cho)과 안태하(Taeha An)는 민중신학을 오늘의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는 중요한 질문들을 던졌다.
조 다니엘은 민중신학을 보다 글로벌한 구조 속에서 이해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오늘의 세계가 단순한 국가 단위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무엇이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넘어서, 무엇이 그 고통을 만들어내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는 이를 “Capitalocene(자본의 시대)”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민중신학이 이제는 지역적 신학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구조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하지않은가라고 제안했다.
조 다니엘은 이어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오늘의 민중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들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안태하 역시 민중신학의 핵심인 “이야기” 개념이 더 깊이 탐구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누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민중이 스스로 말하는 이야기입니까, 아니면 지식인이 해석하고 전달하는 이야기입니까?”
그의 질문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해석의 문제였다. 안는 “좋은 이야기”의 기준을 물으며, 이야기 자체가 항상 해방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민중신학은 단순히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윤리적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가 연대를 만들고, 어떤 이야기가 오히려 분열을 강화합니까?”
이 질문들은 강연이 시작될 때, 리거 교수가 던진 문제의식으로 다시 이어진다. 종교는 문제인가, 해방인가?
권 교수의 강연과 학생들의 응답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종교는 억압의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민중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해석할 때 해방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민중에 대한 이상화된 이해를 경계했다. 이 점에서 그는 기존 민중신학의 일부 경향과 분명한 거리를 두었다.
“민중은 항상 선한 존재입니까?
그는 스스로 던진 이 질문에 단호하게 항상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민중은 분열되어 있으며, 서로 갈등하고, 때로는 (억압) 체제를 지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강연 이후 이어진 응답에서는 또 다른 중요한 질문들이 제기되었다.
“예수는 민중인가?”
권 교수는 예수는 절대적인 최하층에 속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민중 가운데 태어나 그들과 함께 살았으며, 결국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수의 이야기는 민중의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는 2천 년 동안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고 말하며 이야기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한 참석자는 민중신학이 더 이상 한국에만 머무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화 <기생충>을 예로 들며, 한국의 이야기가 어떻게 세계적인 공감을 얻었는지를 설명했다. 글로벌 자본주의 속에서 소외된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세계와 연결되는 것처럼, 민중신학 역시 지역을 넘어 세계적 신학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강연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오늘의 민중신학은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권진관 교수의 신학 작업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그리고 누구의 이야기가 여전히 들리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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