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산(Tucson)에서의 소풍

(편집자 주: 중북부한인선교구는  2026년 3월 23- 27일  애리조나주 투산에 소재한 리뎀토리스트 수양관(Redemtorist Renewal Center)에서 “나랑 소풍 갈래?”주제로 <영성형성 아카데미>개최했다. 연합감리교뉴스는 수양회 참석자인 허진실 사모의 후기를 나눈다.)

홍진실 사모. 사진, 필자 제공.허진실 사모. 사진, 필자 제공.

미국에 온 지 꼭 5년째 되던 해 3월, 나는 피닉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난해 10월 우연히 알게 된 '사모 5일 영성형성 아카데미'는 내게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자리가 금세 마감될까 서둘러 신청을 마친 뒤, 캘린더에 소풍 날짜를 저장해두고 3월 23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원래 나는 시간이 빨리 흐르길 바라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미국 생활은 나를 변화시켰다.

한국에서는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며 책임지는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면,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과 처음 경험하는 육아는 늘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낯선 환경과 제도의 한계 앞에서 자꾸만 막혀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았지만, 문득문득 밀려오는 불안과 좌절감은 점점 더 자주 내 마음을 잠식했다. 그런 때에 찾아온 '소풍'으로의 초대였기에, 나의 대답은 망설임 없이 "YES"였다. 잠시라도 이 무거운 현실에서 벗어나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아카데미 참석 전, 경청팀 조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 이미 큰 선물을 받은 것만 같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섬김으로 보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전 모임 때부터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흘렀다. "나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두 번의 사전 모임에서도 나는 계속 울었다. 그때 비로소 ‘내가 참 많이 힘들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래서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소풍을 기다리게 되었다.

귀한 선물을 받으러 간 애리조나 투산에서의 시간은 매 순간이 감격이었다. '내가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아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곳에서의 시간은 꼭 나를 위해 준비된 선물 같았다.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 예배와 기도가 절로 나오는 공간들, 그리고 그 공간을 가득 채운 따뜻한 교제들이 있었다.

참 행복했다.

같은 꿈을 꾸며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갈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사진은 중북부한인선교구가  2026년 3월 23-27일 애리조나주 투산에 소재한 리뎀토리스트 수양관(Redemtorist Renewal Center)에서 “나랑 소풍 갈래?”라는 주제로 열린 <영성형성 아카데미> 수업 광경이다. 사진 제공, 홍진실 사모, 영성형성 아카데미.사진은 중북부한인선교구가  2026년 3월 23-27애리조나주 투산에 소재한 리뎀토리스트 수양관(Redemtorist Renewal Center)에서 “나랑 소풍 갈래?”라는 주제로 열린 <영성형성 아카데미> 수업 광경이다. 사진 제공, 허진실 사모, 영성형성 아카데미.

강의 후 이어진 침묵과 묵상의 시간은 내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나의 힘겨웠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고, 동시에 나보다 더 힘들었을 엄마를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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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빠와 엄마는 참 많이 다투셨다. 내 기억 속에는 부모님의 싸우시던 장면이 더 많이 남아 있을 만큼 두 분의 다정한 모습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열 살이 되던 해에 엄마와 아빠는 별거를 시작하셨고, 그때부터 엄마는 나와 남동생을 홀로 키워내셨다. 경제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지쳐 있던 엄마는 자주 “천국에 빨리 가고 싶다”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 말은 어린 나에게 두려움이자 깊은 고통이었다.

아빠를 많이 닮았던 나는 엄마를 닮은 동생과 달리 엄마를 더 힘들게 했던 딸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나를 향해 “이기적이고 철이 없다”라거나 “못됐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고, 나는 어느새 그 말들을 나 자신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나는 그런 엄마를 많이 미워했고 이해하지 못했다. 20대에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겠다고 수천, 수만 번 다짐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엄마와 나 자신은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다.

40대가 된 지금까지 머리로는 엄마를 이해해 보려 애썼지만, 마음 깊은 곳의 원망과 미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때로는 미국과 한국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엄마와 나의 유일한 해결책처럼 느껴져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강의 말미에 들었던 “내 인생의 여름은 언제였나”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다시 엄마와 나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을 그 시절의 엄마는 얼마나 외롭고 힘겨운 삶을 견뎌내야 했을까. 내게는 늘 거대하고 강하게 보였던 엄마의 작고 연약한 모습을, 나는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때, 누군가의 말이 마음 깊이 들어왔다.

영성형성 아카데미 기간 중 매일 진행된 성만찬을 포함한 예배를 드린 애리조나주 투산에 소재한 리뎀토리스트 수양관(Redemtorist Renewal Center)의 채플. 사진 제공, 홍진실 사모.영성형성 아카데미 기간 매일 진행된 성만찬을 포함한 예배를 드린 애리조나주 투산에 소재한 리뎀토리스트 수양관(Redemtorist Renewal Center)채플. 사진 제공, 허진실 사모.

"뾰족한 선인장도 둥지가 필요한 작고 여린 새에게 안식처가 되어준다."

그 말은 엄마를 바라보는 내 시선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제껏 엄마에게 사랑받기만을 바라는 어린 딸로, 마흔이 넘도록 머물러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미움과 원망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엄마를 향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깨달음 이후, 나는 성급하게 큰 변화를 꿈꾸기보다 천천히 엄마를 이해해 보려 한다. 내가 원하는 모습의 엄마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엄마를 바라보며 진심으로 웃어드리고 싶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투산(Tucson)에서의 소풍을 통해, 내 안에 깊은 상처를 어루만질 용기와 엄마의 삶을 조금씩 인정할 힘을 얻었다.

작은 깨달음과 다짐이 모든 것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내게는 분명한 소망이 있다.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나를 더 선한 곳으로 이끄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소풍을 위해 기도와 헌신으로 준비해 주신 많은 분의 수고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나의 엄마에게 "소풍 가자!"라고 말씀드리고 따뜻한 쉼의 자리를 마련해 드리고 싶다.

또한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 그것이 앞으로도 변함없는 나의 바람이 될 것이다.

허진실 사모는 박덕렬 목사와 함께 뉴욕주의 밀포드에 소재한 Milford UMC와 Cooperstown UMC섬기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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