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글은 도은배 목사가 교인들이 제출한 질문에 대답하는 “Ask Your Pastor” 설교 시리즈 4편이다.)
여러분은 예수께서 지옥에 가셨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도 많은 분이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모욕감이나 불쾌감을 느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지옥은 죄인들이 가는 곳이라 생각하기에 예수께서 지옥에 가실 분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아마도 그래서 이 질문을 저에게 주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사도신경을 아시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담고 있는 사도신경에 예수께서 지옥에 가셨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부끄러운 말이지만 목사인 저 자신도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불과 20여 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신앙생활 할 때, 한글 사도신경에 그런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의자에 있는 찬송가 뒷부분에 나와 있는 신앙 고백인 사도신경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두 가지 번역본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통적 버전(Traditional Version)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에큐메니컬 버전(Ecumenical Version)입니다. 이 두 버전의 사도신경은 문맥상 표현이 약간 다른 부분은 있어도 거의 동일한 내용인데 결정적 차이는 예수께서 지옥(지하 세계)에 갔다고 하는 문장이 에큐메니컬 버전에는 있다는 것입니다. 에큐메니컬 버전에서는 영어로 “He descended to the dead. (예수께서 죽은 자들에게 내려가셨다)”라고 고백하고 있으며, 가톨릭교회는 이를 “He descended into Hell. (예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라고 고백합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내용은 동일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가톨릭교회와 대부분의 주류 개신교단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부활하기 전에 저승(죽은 자들의 세계)를 방문하셨다”고 고백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던 장면을 기억해 보십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고 그의 시신은 무덤 속에 뉘어졌습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셨습니다. 그 사흘 동안 예수께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냥 무덤 속에 누워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고 계셨을까요? 하늘에 올라가셨다가 부활을 위해 다시 무덤으로 돌아오셨을까요? 아니면 그동안 바빠서 하지 못하셨던 세계를 여행 다녀오신 걸까요?
초기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죽은 자들의 세계에 다녀오셨다고 믿었습니다. 거기에는 나름 몇 가지 성서적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의 흔적을 우리는 에베소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엡 4:8-9)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선한 자나 악한 자나 모두 땅 아래 낮은 곳, 스올(Sheol)이라고 하는 지하 세계로 간다고 믿었습니다. 구약의 스올은 이후에 그리스어로 쓰인 신약성서에 하데스(Hades)로 번역이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스올은 악한 자와 선한 자의 공간이 따로 구별된 곳으로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이러한 내세관을 잘 반영합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스올을 일반적인 의미에서 죽은 자들의 세계로 이해했고, 최후의 심판 이후에 영원히 형벌 받을 장소인 지옥인 게헨나(Gehenna)와는 엄밀하게 구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예수께서 돌아가신 이후에 가셨다고 불리는 곳은 죄인들이 영원히 형벌을 받을 지옥이 아니라, 죽은 자들이 최후의 심판 이전에 일시적으로 머무는 무덤 속, 지하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왜 초기 기독교인들은 왜 예수께서 스올을 방문하셨다고 믿었을까요? 복음서는 예수께서 죽음 이후에 어디에 가셨다고는 증언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우리가 복음서에 발견할 수 있는 스올과 관련 있는 유일한 보고는 예수께서 사망하신 순간에 무덤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살아났다고 하는 진술인데 이것이 예수께서 스올에 방문하셨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께서 스올을 방문하셨다고 믿었던 이유는 역사적, 성서적 기반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희망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가졌던 소망의 정체를 베드로전서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3:18-20, 4:6)
초기 기독교인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이 사망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께서 스올에 가셨다고 담대하게 고백합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에게 공평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그들의 소망과 확신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예수를 믿으며 늘 고민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예수를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치는데 이 세상에는 복음을 접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고, 예수의 이름을 들어 보지도 못하고 사망한 이들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이 질문은 저뿐 아니라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보았을 겁니다.
저는 제가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고 성장했기에 목사가 되었지만, 만일 제가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전혀 다른 종교를 갖고 살아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잘못 태어난 죄로 영원히 형벌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저의 모국인 한국은 5천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고작 2백여 년 남짓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 4800년 역사 속에 살아간 우리의 선조들은 전부 저주받은 백성입니까?
이러한 고민은 저와 여러분만의 고민이 아니라 2000년 전 초대 기독교인들의 고민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께서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도 기회를 주시기 위해 스올을 방문하셨다고 담대하게 선포한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은 이후에 준비되지 않은 영혼들의 정화를 위한 중간 지대인 가톨릭교회의 연옥 사상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가톨릭교회의 연옥 사상을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이보다 더 위대한 신앙 유산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웨슬리의 선행은총(prevenient grace)론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알기 전부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가 알기 이전부터 이미 일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선행은총론은 우리 감리교 신앙의 위대한 유산이요 종교적, 문화적 다원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매이지 않으시며,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도신경에 고백 된 초대교회의 신앙, 예수께서 음부에 가셔서 복음을 전하셨다는 믿음의 고백을 통해 배우는 것입니다.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갔다고 합니다. 과연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천국에는 수많은 방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커다란 방문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천사가 발소리조차 내지 말고 조용히 지나가라고 경고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하냐고 물으니, 천사가 답합니다. 그 방은 침례교인들의 방인데 그들은 오직 자신들만 천국에 와 있는 줄로 믿기에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그리 옹졸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색깔이 다르다고 판단하고 정죄하실 분이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고, 부르지 않았다고 누군가를 영원히 형벌 받을 지옥에 보낼 만큼 속 좁은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들은 자나 들을 기회를 갖지 못한 자나 그 모두를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그들을 지옥까지 가셔서 구출해 오실 분입니다.
아마도 여러분 중에는 예수를 믿지 않고 세상을 떠난 부모나, 아직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친구, 혹은 종교가 다르지만 너무나 선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 하루하루 사는 게 고달프고 바빠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자녀 때문에 근심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제가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은 아주 단순합니다.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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