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연합감리교뉴스는 교파와 종교, 인종과 성별을 초월하여 소외된 이웃을 섬기며 헌신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심층 취재하는 <이 사람을 소개합니다>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사는 그 세 번째 순서로, 「샘물교회와 샘물의 집」에서 사역하는 박미숙 목사의 이야기를 담은 3부작의 두 번째 기사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요한복음 4:14
샘물의 집은 지금까지 약 200명의 여성이 거쳐 간 작은 공간이다. 그러나 박 목사는 숫자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어느 날 한 젊은 여성이 작은 여행 가방 하나를 들고 샘물의 집을 찾았다.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인해 텍사스에 있는 대학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머물 곳이 필요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권유로 샘물의 집에서 일주일 남짓 머무는 동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결국 아버지와 화해한 뒤 학교로 돌아갔다.
얼마 후, 박 목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그녀는 첫 체크를 받았다며 샘물의 집에 헌금하고 싶다고 전해왔다.
"거기에 머무는 동안 많이 치유받았어요. 아버지와도 화해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박 목사는 지금도 그 전화를 잊지 못한다.
또 다른 여성은 스무 살 무렵 북한에서 탈출했다. 중국과 라오스를 거쳐 미국에 온 그녀는 위튼칼리지를 통해 샘물의 집을 소개받았다. 예상보다 긴 시간 머물며 학업을 마쳤고, 마침내 경제적으로도 자립하게 됐다. 자신의 집을 마련한 그녀는 결혼식을 앞두고 박 목사에게 주례를 부탁했다.
결혼식은 그녀 자신이 마련한 집의 뒤뜰에서 열렸다.
한때 갈 곳이 없어 샘물의 집 문을 두드렸던 여성이 이제 자신의 집에서 새로운 가정을 시작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박 목사는 눈물을 흘렸다.
"정말 많이 울었어요."
박 목사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삶을 이렇게 회복시키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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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을 피해 경찰서를 찾았던 여성도 있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결혼생활이 무너지면서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었다. 영어도, 일상도 막막한 상황 속에서 시카고 여성 핫라인을 통해 샘물의 집으로 연결됐다.
머무는 동안 삶을 다시 정리한 그녀는 물리치료사 자격증을 준비하며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딸의 집에서 함께 살던 한 여성은 갑작스럽게 집을 떠나야 했다. 신문을 통해 샘물의 집을 알게 된 그녀는 약 6개월 동안 머문 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
"샘물의 집은 떠나지만, 앞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녀는 박 목사에게 그렇게 인사하고 떠났다.
신혜성 샘물의 집 이사장은 "샘물의 집은 단순히 머물 곳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에요. 그들이 직장을 찾고, 학업을 이어가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함께 걸어가는 곳입니다."라고 전했다.
샘물의 집은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는다. 북일리노이연회의 선교사역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운영은 한인교회와 개인 후원자들의 헌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샘물의 집은 입주자에게 종교도 영주권 더 나아가 어떻게 미국에 왔는지도 묻지 않는다. 한국인은 물론 다른 아시아계 여성들도 머물렀고, 무슬림 여성도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했다.
박 목사의 목회는 샘물의 집 안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병원 응급실에서 밤을 새우고, 연방 교도소를 찾아 교인을 위로하고, 법원에 동행하고, 노인아파트 신청을 돕고, 운전면허 시험장에 함께 가고, 소셜시큐리티 카드와 은행 계좌를 만드는 일까지, 그녀의 목회는 사람들의 일상 깊숙한 곳에 닿아 있었다.
"제가 안 다닌 데가 없어요."라며 박 목사는 웃으며 말했다.
"법원도 많이 갔고요. 경찰서도 갔고, 교도소도 갔고, 병원에서도 밤을 많이 새웠어요. 막 미국에 온 분들이 여기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함께 다녔지요."
그렇게 자리를 잡은 사람들 가운데는 더 큰 교회로 옮겨간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박 목사는 그것을 서운해하지 않았다.
"자리 잡으면 떠나는 거죠."
그 말에는 아쉬움보다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샘물교회 교인들은 이러한 목회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김가형 목사는 "박 목사는 가진 것을 아낌없이 사람들에게 내어놓았습니다."라며 "더 좋은 여건의 교회로 옮길 기회도 있었지만, 끝까지 자신이 세운 교회를 지켰지요."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 목사는 "과감하게 사랑하고, 기쁘게 섬기며, 용기 있게 이끈다는 연합감리교회의 비전을 삶으로 보여준 목회자"라고 박 목사를 평가했다.
교인들이 기억하는 희생은 이뿐만이 아니다.
교회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에는 충분한 사례비를 드리지 못했고, 의료보험도 마련하지 못했다. 목회자 연금도 최근에야 납부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교인들은 박 목사가 늘 같은 말을 했다고 기억했다.
"선교는 계속해야 합니다."
교인들은 박 목사가 교회 형편이 어려울수록 자신의 사례비보다 선교를 먼저 생각했다고 입을 모았다. (3편에 계속)
<이 사람을 소개합니다> 시리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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