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나님이 낯설까? 유제성 목사의 저서 <낯선 하나님>을 받아 들고 내가 품은 첫 의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처음 미국에 왔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한인 이민 교회에서 첫 주일 예배를 마치고 가진 친교 시간이었다. 줄을 선 교인들 사이로 접시를 든 담임 목사님이 교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너무 낯선 광경이었다. 목사님은 앉아 계시고 나이 든 장로님이 대접하는 장면에 익숙했던 나는 그 광경이 낯설다 못해 충격이었다. 그러나 성경을 다시 읽고 신학을 공부하면서 목사는 섬기는 지도자이며, 몸으로 그 섬김을 실천하는 그 목사님이 정말 성경적으로 행동하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유제성 목사가 하나님이 낯설다고 표현한 까닭은 본인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오랜 관념이 실제 성경에서 다르게 묘사될 때마다 충격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제4장, ‘하나님은 왜 다윗을 격동시키셨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저자인 유제성 목사는 “우리는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의 고통을 덜어주시고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만을 기대하지만, 다윗의 삶을 통해 드러난……이 낯선 하나님은……고난과 희생을 통해 생명과 구원을 이루는 창조주의 형상을 연습하게 하신다.”(126쪽)라고 적고 있다.
하나님의 낯선 모습을 대면하면 우리는 얍복강의 야곱처럼 하나님과 씨름을 벌이게 된다. 제2장 ‘하나님은 왜 야곱을 사랑하셨는가?’에서 저자는 “누군가가 하나님을 간절히 원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이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를 변화시킬 수 있다. 아니……그의 삶을 통해 그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복을 받게 하실 수 있다.”(43쪽)라고 적고 있다. 즉 우리는 하나님과의 씨름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할 수 있고, 세상 사람들을 위한 복의 근원으로 변해가고,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이다.
니느웨로 보내심을 받은 요나는 “사막과 같은 인생의 뜨거운 땡볕 아래서 금강석처럼 단단한 하나님의 침묵과 씨름했고”(제6장, 207쪽) 이유 없이 고통당한 욥은 “온 힘을 다해 논쟁하고 씨름했다.”(제5장, 168쪽)
이런 씨름은 “도대체 왜?” 하는 물음을 가져야만, 낯선 하나님을 만나야만 할 수 있다. 성경에 쓰인 것이니 그냥 믿는다는 입장을 가진 분들은 그런 씨름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위해 해와 달을 멈추셨다고 그냥 믿으면 되지 왜 멈추셨을까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과 정반대되는 결정임에도 진심으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다는(제3장, 91쪽) 통찰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은 왜 유다를 선택하셨을까?”(제2장)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 그렇게 예정되었다고 믿는 분들은 “유다가 자신의 인생을 망친 아버지 야곱과 동생 베냐민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그 희생이, 하나님이 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행하실 사랑과 닮았기에, 하나님은 요셉이 아닌 유다를 대속자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택하신 것이다.”(68쪽)라는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과 씨름하는 사람 중에서도 유제성 목사는 전문 씨름꾼이다. 버클리 신학대학원에서 구약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세계적인 학술 시리즈인 ‘옥스퍼드 핸드북(The Oxford Handbook of Biblical Narrative)’의 요나편 집필자이다.(저자 서문, 19쪽)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도 하나님과 씨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첫째는 이야기 속에 나타난 인물 비교법이다.
유 목사는 에서와 야곱의 인물 분석(Character Study)을 통해 ‘하나님은 왜 야곱을 사랑하셨는가?’(제1장, 28-31쪽)라고 질문하며 “야곱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31쪽)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사울 왕과의 비교를 통해 “다윗은……여호수아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존중한 사람이었다. 반면, 사울은 자신의 필요와 하나님의 뜻이 일치할 때만 하나님을 섬긴 전형적인 인물이다.”(89쪽)라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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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 찾기 방법이다.
‘하나님은 왜 다윗을 격동시키셨는가’ (제6장)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을 뜻하는 히브리어 ‘킬레바보’를 문자 그대로 “여호와의 심장과 같은 심장을 가진 자”로 사역한 후에 (96쪽) 그 심장의 핵심은 “가장 귀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내어주심으로써 그 값을 친히 지불”하신 하나님처럼 “왕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희생을 감수하려 했던” 마음이라고 결론 내리고, 그 마음이 바로 다윗이 선택된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하나님은 왜 사탄에게 격동 당하셨는가’(제5장)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한결같이 신실하신 사랑’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헤세드’라고 설명한 후(137쪽) “욥은 하나님의 정의가 부재한 듯한 극한의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끝까지 지켜온”(163쪽) 사람으로 인간의 배신에도 사랑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성경 해석은 생생하게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해석 과정이다. 이것을 해석학(Hermeneutics)에서는 본문이 쓰인 당시의 상황(Context)에서 본문(Text)이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했는지를 이해한 후에 독자/청중의 상황(Rhetorical Situation)에서 재구성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성경에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되어 있으면 먹지 않으면 된다고 받아들이는 분에게는 이것은 정말 “낯선” 과정이다. 그러나 “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셨지?” 하고 물어보면, 그 당시 냉동 시설이 없는데 상하기 쉬운 음식의 하나인 돼지고기로 인한 식중독을 방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하는 설명을 시도하게 된다. 그러니까 오늘날처럼 식품 위생이 잘 발달한 시대에는 독실한 기독교인도 돼지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해석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척도라고 정리해 주셨지만 말이다. 그러나 동성애 해석에서 보듯이 해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필자가 법대에 다닐 때 “사람을 죽인 자는”이라는 법조문 하나를 놓고도 “사람”은 언제부터 사람인가, 태아도 사람인가 몸이 다 나와야 사람인가, 죽은 시체를 사람으로 오인하고 죽인 경우도 사람을 죽인 것인가 등등의 논쟁, 생명을 죽여도 사형 집행, 정당방위, 전투 행위, 안락사 같은 예외를 허용할 것인가 등등의 논쟁을 하면서 한 학기를 보냈다. 그런데 여기에 저자(Historical Criticism)와 본문(Literary Criticism)만이 아니라 독자까지 개입되면 해석은 더 복잡해진다. 독자가 받아들이는 메시지가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Reader Response Criticism). 마치 양자역학에서 입자의 위치는 관찰자가 바라보는 순간 확정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해석학도 해석자가 바라보는 순간 본문의 의미가 확정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법철학에서도 “써진 법조문이 법”이라고 하는 존 오스틴(John Austin)이나 하트 (H.L.A. Hart)의 법실증주의보다는 “개별 판사가 내린 판단이 법”이라고 하는 올리버 웬델(Oliver Wendell Homes, Jr)나 칼 르웰린(Karl Llewellyn)의 법 현실주의 입장에 더 가까운 법 해석이 될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는 요한 웨슬리가 주장하듯이 성경은 기록된 말씀과 함께 선포된 말씀으로서 이성과 전통과 경험을 통한 해석이 있어야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볼 것이다. 유제성 목사의 낯선 하나님은 바로 이렇게 성경 본문을 놓고 씨름하면서 자신이 만난 낯선 하나님에 대한 기록이다.
결국 유제성 목사가 만난, 그리고 이 책이 소개한 “낯선 하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우리의 구원과 영생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사야서에 나오는 고난의 종의 노래를 들었다. 바벨론 유배지에서 하나님을 믿고 고난과 희생을 그냥 묵묵히 견디다 보면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수동적인 희망에서(이사야 42:1-4; 49:1-6; 50:4-9)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원해서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고자 하는 그 고난의 종(이사야 52:13 – 53:12) 말이다. “이스라엘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 아래 그들만의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에게는 너무 낯설어서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시오!”라고 외치게 만든 그 고난의 종, 우리 주님이 바로 “낯선 하나님”이다.
나는 다른 이들도 이 책을 읽고 “낯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이 땅의 고난받는 이들, 차별당하는 이들, 소외된 이들을 위한 고난의 길에 기꺼이 동참하게 되기를 부활하신 주님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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