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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용의 제자가 본, 인간의 성정체성과 우리의 한계와 위기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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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목사. 사진 제공, 임찬순 목사.임찬순 목사. 사진 제공, 임찬순 목사. 

2023년 10월 초 시카고에서 열린 한인 특별총회에 다녀오면서, 2016년 같은 장소에서 열린 모임과 그 후 연합감리교회 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찬찬히 되돌아봤다. 반짝이는 젊은 얼굴들, 낯선 얼굴들을 만나면서, 세월의 무게를 실감하는 한편 희망찬 미래를 소망하며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위기의 시간에 선 긴장, 어느 한 방향으로만 향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채로. 그렇지만, 신앙의 길을 걷는 자로서 하늘을 향한 낙관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의 성(性, 姓 Human Sexuality)을 두고 일어난 논의는 화합할 수 없는 극점을 향해 달리다가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동성애에 대한 찬반을 동시에 담아낼 수는 없었기에, 하나의 교회(One Church Model)를 향한 꿈은 깨어졌고, 연합감리교회의 그 위대한 전통은 봉합할 수 없는 상처를 낸 채 교단 분열의 길을 가게 되었다. 연합감리교회 안에서 한인들은 비판적 소수를 점하고 있다고 해도, 소수의 자리를 넘을 수 없는 한인 공동체의 쪼개짐은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아쉬움을 갖게 한다. 이런 결과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넘을 수 없는 한계요, 운명인가 보다.

사실 오늘의 이 문제는 그냥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의 것은 아니다. 인간의 성적 특성 자체가 하늘의 것으로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택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에 속한다는 각성의 길을 극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출현하고 있다. 여기에는 넘어설 수 없는 초월의 영역을 설정했던 전통적인 신학의 담론의 기반주의(Foundationalism)를 해체해야 한다는 해체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 좌파적 마르크스주의가 연대해서 동성애를 통해 전통적 담론들을 일거에 해체하려는 전체주의적인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의 반발과 웅성거림에서 이런 흐름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 느껴지는데, 그런 그들은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싸움을 포기하고 자기 진영을 이탈하는 이상한 전쟁이 진행되었다. 그들 역시 신앙의 굳건한 전사들이었고, 우리의 형제요 자매였다는 사실에 마음이 천 갈래로 찢기는 듯한 비통함을 느낀다. 포용과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우리 교단은 우리와 오랜 세월 함께했던 형제와 자매들이 교단을 떠나는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닐까 되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과연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고 미래를 위한 것이었나를 다시 묻게 되는 것이다. 

1. 나ㅡ성적 자기성의 초라함

남녀는 신비한 우주다. 성은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얻은 것이라고 믿었다. 성서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했는데, 남녀였다는 신비한 언명을 계시했다. 즉 남녀, 음양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이라는 성서적 테제는 우리 한국인의 사유와 문화 속에 깊이 녹아들어 있었다. 즉 성적 특성은 땅에 속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 결정할 수 없다는 해석과 언명이 가능하게 된다. 아닌가?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닫지는 말자. 나는 동성애를 바라보는 인간의 성(性 Human Sexuality)에 대한 담론을 근본개혁적으로 확대하고 깊게 해서 신학의 기본 문법을 다시 정립하고 싶었다.

나는 한국 신학의 담론을 지구촌적 기독교를 위한 기본 언어로 설정하고 싶다는 꿈을 꾼 이정용의 제자이다(Jung Younglian). 나는 워싱턴 포스트에 “100년 안에 동아시아 전체를 조선이 기독교복음화할 것”(proselyting the whole East to Christianity, Washington Post 1912년 12월 2일) 라고 한 이승만의 예언을 재천명하면서 우리 선배들이 쏟아온 생경한 신학적 언어들을 재해석함으로써 창조적 신학 담론을 새롭게 구성해내고 싶었다. 구한말 한민족의 나라를 상실한 종말론적 상황을 경험하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꿈꿨던 우리 한민족 선배들의 계시적 언어들을 다시 붙잡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종말론적 아포칼립스(apocalypse), 즉 묵시적 언명이다.

우리들이 성적 존재라는 사실은 하늘의 신성의 초월과 몸성의 내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최근의 인간의 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우주와 역사의 자리에서 초월과 내재를 구유하면서 존재하는 인간의 성(거룩함, 聖 Holiness or Sacredness)이 성(性, Sexuality)으로 환원되는 느낌을 갖게 된다. 한국 교회와 한국 이민교회는 우리의 신앙 언어를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인간의 성을 문제 삼는 미국연합감리교회를 향해서 인간의 성(聖)을 제대로 온몸으로 증언하는 진정한 감리교도가 되어야 하는 시대적 요구 앞에 실존적으로 서서 유다른 길을 걸었어야 했다.

내 안에는 동성애 담론에 깊이 들어가고 싶지 않은 저어함이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었다. 먼저는 이 담론은 우리의 문제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나의 문제가 아니라, 서구 기독교의 종말론적 정점에서 쏟아져 나온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고, 이런 문제에 섣불리 발을 들였다가는 진지한 고민도 하지 못한 채 전형화된 틀의 이름을 뒤집어쓰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내 속에 있는 여러 생각과 신앙의 고백, 삶의 분투들이 도매금으로 재단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내 속마음의 고갱이는 쉽게 보여지고 드러낼 수 없다는 인식과 신비에 대한 내 나름의 집착이기도 하다.

나는 내 페이스북 계정에 가끔 글을 올리는데, 한글로 올려도 구글 번역기를 돌려 꼭 보는 미국인 친구 목사가 있다. 페이스북으로만 만나지만 말이다. 내가 미국에 와서 공부한 초기 시절이었다. 그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데 내가 잘 알아듣지는 못했었나 보다. 그렇지만 동양적 예의를 갖춘 신학도인 나는 정중하게 끝까지 들어주었을 것이다. 나중에 자기가 에이즈 문제와 동성애 문제를 제기했는데, 다른 미국 신학생들도 피하고 들어주려 하지도 않는데 나는 자기의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줘 고마웠다고 했다. 30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내가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인내하면서 끝까지 들어준 것만은 분명했을 듯하다. 그것이 그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자리한 것이다. 그녀는 동성애자는 아니고 첫 남편과 사별하고 재혼해서 지금은 목회를 하고 있다.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 외에 어떤 다른 길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성적 소수자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본 경험이 내게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지난주에 심방을 하면서, 자기 딸이 동성애자인데,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아버지의 고백을 들으면서도 안타깝기만 했다.

인간의 성 담론은 진지한 들어줌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학적인 문제를 넘어서 인간 실존의 문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과학적 학문 담론을 통해 해결되기보다는 목회자의 마음으로 품어줄 때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2. 좁은 길ㅡ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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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종교는 우리 내면 속 영적 에너지의 레벨이 생존이냐 발전이냐의 결과를 미리 결정하는 바로미터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성 담론에서 보수의 길은 마르크스주의의 언어를 빌린다면, 반동의 길이고 시작하기도 전에 진 싸움인지도 모른다. 목숨 걸고 모든 지적 담론과 연대하면서 우주와 역사를 혁명적으로 뒤집으려고 전방위적인 싸움을 거는 이들을 향해 고작 교단의 생존과 한국 교회 교인들의 현실적 기반에 기대서 싸움을 전개한다면 이미 진 싸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는 우리의 신학적 기반에 대한 총체적 성찰을 전개하면서 회개하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성 담론에서 한국 이민교회의 존재 의미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는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40년 전에는 동성애의 찬성의 길이 좁은 길이었다면, 지금은 동성애 찬성의 길이 오히려 넓은 길로 바뀌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좁은 길은 주님이 제시하신 래디컬한 길이다.  좁은 길은 주관적 느낌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인 실재의 문제와 깊이 맞물려 있다. 그러하기에 전형적인 편 가름의 길이 아니라, 실존적이고 창조적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화의 길을 좁은 길이라고 이름하고 싶다. 그런 까닭에 한인 연합감리교회와 한인 목회자들은 동성애 찬반의 한 진영에 속해 자기들에게 유리한 담론을 찾는 소극적이고 정치적이고 자기 기반에 근거해서 유리한 소리를 내는 차원을 넘어서서 지구촌적 기독교의 도래 앞에 우리의 신앙 고백과 신학의 언어를 다시 가다듬고 정초하는 길을 걸었어야 한다. 즉 GMC로 가느냐, UMC에 남느냐가 아니라 창조적 길을 모색했어야 한다.  

3. 현실적 모색ㅡ그리스도적 해체와 구성

인간의 성 담론이 보수와 진보를 조화시킬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담론의 성격 자체가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or)의 선택을 강요하는 논리의 장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의 전제로 접근했다면, 제시해서 실천할 수 있는 길은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을 강요하는 맥락 속에서는 남느냐 나가느냐의 길밖에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묶여 있다는 양면긍정의 사유(both/and thinking)로 신학적 논의를 펼칠 수 있었다면 창조적인 길은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인교회는 우리 속에서 시작하지도 않았던 인간의 성 논의를 쓰나미, 폭풍이라고 정의했다. 그것은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외부에서 불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쓰나미라고 태풍이라고 불렀기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분열의 결과를 맞이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나름의 고민과 창조적 길을 모색했어야 한다. 우리 입장이 미국 연합감리교회 내에서는 보수적 담론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비약으로 이끄는 신앙의 길을 걸었어야 한다.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들어와 있는 세계교단 속에서 우리는 위축되지 않고 창조적이고 새로운 목소리를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미국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분들의 고뇌에 공감해 동성애 찬성의 목소리에 대한 고민과 비판을 더욱더 성숙하게 발화했어야 했다. 즉 어떤 입장을 취하건, 자기 개혁과 갱신의 길을 가는 방향으로 함께 머리와 몸을 맞댔어야 했다. (2부에서 계속)

임찬순 목사는 서울대 철학과와 한국학 중앙연구원 한국학 대학원에서 철학과 종교학을 공부했다. 벨기에 루뱅대학 연수 , 미국 뉴저지 드루대학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M. Div.) 박사(Ph. D) 마쳤다. 현재는 중앙텍사스 연회의 알링턴에 있는 언약교회(UMC of the Covenant) 섬기고 있다. 재미 신학자 이정용 박사의 제자로 '정용리안'으로 불렸으며, 역서로 줄리아 칭의 <유교와 기독교>, 이정용의 <삼위일체의 동양적 사유> 마지막 강의를 편집하고 소개하는 <역과 모퉁이의 신학> 있고, 목회의 현장을 담담하게 담아낸 시집 <바람의 노래, 목자의 노래> 있다.

관련 시리즈 보기

이정용의 제자가 본, 인간의 성정체성과 우리의 한계와 위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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