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사모들을 위한 영성형성아카데미가 <사랑하는 나의 딸에게>라는 주제로 2024년 3월 4일(월)부터 8일(금)까지 애리조나주 투산에 소재한 리뎀투어리스트 수양관(Redemptorist Renewal Center)에서 열렸다. 연합감리교뉴스는 여기에 참가한 사람들의 후기를 시리즈로 소개하는데 오늘은 박혜련 사모의 글이다.)
저는 남편을 따라 12년 전, 백일 된 아기를 안고 미국에 왔습니다. 이후 3명의 아기가 더 태어나 이제는 4자녀를 둔 엄마가 되었습니다. 희망을 품고 온 미국이지만, 스스로 만든 방 안에 갇혀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시간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뭔가 새로 시도를 하기보단 아무 문제 없이 유학 생활이 끝나기만을 바랐습니다.
남편은 긴 유학 생활 끝에 논문을 마쳤고, 담임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저도 남편 옆에서 새로운 환경에 바쁘게 적응하고 있을 때, 영성형성아카데미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돌봐야 할 아이들이 많았고, 사역으로 바쁜 남편을 생각하니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남편 그늘에서 도움만 받고 살다 혼자 비행기를 타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다녀와야 한다는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권면해주시고 후원해 주셔서 신청은 했지만, 실제 참석을 망설이고 있을 때, 마치 꼭 참석하라는 초대처럼 경청모임 조장을 제안받았습니다.
저는 지난 12년 동안 아이들만 키우며 사역 경험도 없고, 모임을 인도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모임에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험 부족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함께 해보자고 하셨을 때, 제 머릿속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떠올랐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마리아에게 찾아온 일이 꼭 저의 상황과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사모님들을 섬기기에 부족하고 자격도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마리아처럼 선택을 받았고, 좋은 것들을 배울 기회라고 여겼습니다. 조장을 제안해 주신 것은 불안해하는 저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애리조나로 떠나는 새벽, 잠자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며 힘들 때마다 도망치고 싶었고, 어딘가 기댈 곳을 찾아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막상 이 순간이 되니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첫째 아이가 문소리에 깨어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해주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내가 아이들을 두고 꼭 가야 하나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많은 분의 기도와 도움을 받아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문고리와 책상에는 저를 기다리고 환영해 주는 예쁜 이름표와 선물이 놓여 있었습니다. 짐을 풀고 의자에 앉으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감사와 안도감, 그리고 의문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무언가에 이끌려 도착한 이곳에서 예상치 못한 환대를 받으니 기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낯선 이곳으로 왜 불러 주셨을까? 과연 내가 이 시간을 잘 마칠 수 있을까?’라는 떨리는 감정의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뾰족한 가시를 잎사귀로 삼아 자라나는 선인장이 어색하고 못난 내 모습과 닮아 보였습니다. 좁은 길을 걷다 찾은 벤치에 앉아 높은 선인장 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여기가 어디인가요?’, ‘저는 왜 여기에 있나요?’라고 주님께 묻고, 요즘 고민하던 질문도 했습니다. ‘주님, 왜 부족한 저를 주일학교 담당자로 세우셨나요?’ 그리고 잠시 후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주일학교에 속한 가정을 위해 기도하라고 너를 그곳으로 보냈단다.’ 마음속에서 들리는 이 응답으로 긴장된 마음이 가라앉고, 한 발짝씩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여정으로 들어갔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웠던 하루를 마치며 대침묵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님과 조용히 대화하며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에 저는 경청모임에서 조장 역할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 심란하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잠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평안하고 상쾌한 마음으로 눈이 떠지고, 기도하자, 주님께서 제가 걱정하는 일들을 책임져 주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기대하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가 선인장과 푸른 하늘, 그리고 맑은 새소리로 가득 찬 풍경을 바라보며,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제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저를 믿어 주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모든 자연을 누릴 수 있도록 맡겨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불어 가족들과 교회공동체도 저의 노력의 결과로 받은 것이 아닌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날부터는 강사님들에게 유익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침묵기도를 배워 하나님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분 품에 머무르는 기도를 하면서, 잠잠히 시선을 하나님께 두고, 깊은 내면에서 주님을 만나 안식을 누리는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셋째 날에는 용기를 내어 삶에서 저를 자꾸 넘어뜨리는 어려움을 나눔 시간에 이야기했습니다. 나눔을 통해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었고, 공감해 주시는 사모님들의 위로와 격려로 힘을 얻었습니다. 넷째 날 아침에는 유난히 밝은 해돋이를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힘든 세상에 혼자 내던져진 것 같은 외로움 때문에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원망과 한스러움으로 가득했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 모든 시간을 통과하고, 마침내 주님의 광채와 사랑이 담긴 밝은 해를 보게 되자,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통해 부어 주시는 치유와 자유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감격에 휩싸였습니다.
영성형성아카데미에 참여하는 5일 동안, 저는 처음으로 온전한 저 자신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저를 바라볼 수 있었고, 제 존재 자체로 존중받고 사랑받는 선물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혼자 산책을 하며 새날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었고, 아침 예배를 통해 공동체의 소중함을 경험했으며, 정성껏 차려 주신 식사와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교제를 통해 몸과 마음에 힘을 얻었습니다. 또한 귀한 강의를 들으며,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고, 기다리시며, 함께 해 주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경청모임에서 사모님들과 마음을 나누며, 그분들의 아픔과 기쁨이 내 아픔과 기쁨이 되고, 내 아픔과 기쁨이 그분들의 아픔과 기쁨이 되는 아름다운 경험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섬겨 주신 리더분들의 헌신과 환대가 제 마음을 열게 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자리로 돌아오니, 반복되는 문제 앞에서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좌절감을 느끼게 되었고, 애리조나에서 함께 보냈던 분들과의 시간이 그리워졌습니다. 하지만 다시 삶의 균형을 잡도록 도와준 것은 놀랍게도 영성형성아카데미에서의 5일간의 여정이었습니다. 거기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삶으로 살아내고 실천하며 기다리다 보면, 분명히 좋은 날에 다시 함께 웃으며 삶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치유와 회복의 날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을 5일 동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성형성아카데미를 통해 영적 순례공동체의 한 지체가 되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런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많을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관련 기사 보기
2024 ‘사모’ 영성형성아카데미, ‘사랑하는 나의 딸에게’
이 글을 쓴 박혜련 사모는 블루밍턴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Thomas E. Kim) 목사에게 이메일 tkim@umnews.org 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받아 보기를 원하시면, 무료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