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에서는 매일 정치적 공방이 벌어진다. 예산안과 세금, 의료보험과 이민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연방의회에서는 이례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정치적 쟁점이 아니라 성경 해석이 논쟁의 중심에 선 것이다.
논쟁의 무대는 국회의사당(Capitol Hill), 논쟁의 본문은 마태복음 25장 31-46절이다.
이 본문에서 예수는 최후의 심판을 말씀하시며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다."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오랫동안 이 말씀은 가난한 사람을 돌보고, 병든 이를 찾으며, 낯선 이를 환대하라는 그리스도인의 대표적 실천 윤리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서는 또 다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말씀은 개인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명령인가. 아니면 국가와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공적 책임이자 가치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성경공부의 주제에 머물지 않는다. 의료복지, 이민정책, 난민 보호, 사회복지 예산, 정부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논쟁은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며 미국 정치와 교회를 동시에 흔들고 있다.
이번 논쟁은 민주당 소속인 라파엘 워녹(Raphael Warnock) 연방상원의원이 "나는 마태복음 25장 그리스도인(Matthew 25 Christian)이다."라고 소개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조지아주의 에벤에셀 침례교회 담임목사이기도 한 워녹 의원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공화당이 추진하는 대규모 의료복지(Medicaid) 예산 삭감을 비판하며, "어떻게 긴 기도를 드리고 함께 손을 잡아 기도한 뒤, 수조 달러 규모의 의료복지 예산을 삭감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예수께서 가장 작은 자를 돌보라고 명하셨다면, 사회의 가장 취약한 이들을 위한 정책 역시 그 신앙의 연장선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발언은 곧 공화당 소속의 마이크 존슨(Mike Johnson) 하원의장의 반론을 불러왔다.
독실한 남침례교 신자인 존슨 의장은 워녹 의원을 자신의 집무실로 초청해 약 30분간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정치적 견해뿐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는 관점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워녹 의원에 따르면, 존슨 의장은 "마태복음 25장은 개인에게 주어진 말씀이지 국가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라고 설명했고, 이에 워녹 의원은 "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모든 민족(all nations)'을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맞섰다.
두 사람의 대화는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설전이라기보다, 같은 성경을 읽는 두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다.
존슨 의장은 이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입장을 더욱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는 마태복음 25장이 예수께서 각 개인의 제자도를 가르치신 말씀일 뿐, 정부 정책의 설계도(blueprint)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자발적인 사랑과 자선의 영역이며, 이를 국가가 강제하는 정책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해석은 일부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텍사스의 남침례교 목회자인 로버트 제프리스(Robert Jeffress)는 마태복음 25장의 "지극히 작은 자"는 일반적인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환난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특정한 유대인 전도자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했다. 또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신약학자인 주디스 건드리(Judith Gundry) 역시 본문의 직접적인 문맥은 박해받는 제자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워녹 의원과 많은 주류 개신교 지도자 및 흑인교회 지도자들은 마태복음 25장을 단순한 개인의 자선 활동을 넘어 사회 전체가 가장 약한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묻는 예수의 심판 선언으로 이해한다.
마태복음 25장을 둘러싼 이러한 논의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미국 교회 안에서 이어져 온 오래된 질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해석의 차이는 단순한 성경 해석을 넘어 정치철학과 국가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변화가 사회를 바꾼다고 보는 전통과 사회 구조 및 제도가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보는 전통이 이 본문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시 맞닿은 셈이다.
프린스턴신학교의 미국교회사 교수 히스 카터(Heath Carter)는 이번 논쟁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고 분석한다.
그는 미국 기독교 안에는 오래전부터 "개인의 영혼 구원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전통과, "사회 구조와 제도의 죄까지 함께 개혁해야 한다"는 전통이 공존해 왔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흐름은 20세기 초 '사회복음(Social Gospel)' 운동으로 발전했고, 훗날 시민권리 운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오늘날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마태복음 25장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으로만 볼 수 없다. 이는 미국 교회가 오랫동안 씨름해 온 질문, 곧 복음은 개인의 구원만을 말하는가, 아니면 사회 전체의 정의와 공동선을 함께 요구하는가라는 오래된 신학적 질문이 다시 정치의 한복판으로 떠오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워싱턴에서 마태복음 25장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세계 교회에서도 성경 해석과 관련한 또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미국 태생의 첫 교황인 레오 14세는 지난해 11월, 대통령의 이민 정책에 관한 질문을 받은 자리에서 마태복음 25장을 인용하며, "성경은 매우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세상 끝날에 우리는 '나그네를 어떻게 대접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말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미국 독립선언 250주년을 맞은 7월 4일, 레오 14세는 지중해의 작은 섬 람페두사(Lampedusa)를 찾았다. 이곳은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다 목숨을 잃은 수많은 난민과 이주민의 아픔이 서린 장소다.
교황의 이 방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였다.
람페두사는 지난 10여 년간 유럽 난민 문제를 상징하는 장소다.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바다를 건너던 수많은 사람이 섬에 닿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공동묘지에 묻혔다. 교황은 먼저 이들의 묘지를 찾아 기도한 뒤 유가족과 자원봉사자들을 만났으며, 이어 미사를 집전했다.
그의 강론 본문은 마태복음 25장이 아니라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였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떤 이념이나 논리를 앞세우기보다 먼저 그 곁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교황은 이어 "우리는 이웃처럼 행동할 때 비로소 이웃이 됩니다."라며, 복음의 핵심은 누구를 이웃으로 인정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의 이웃이 되어 줄 것인가에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미국의 역사를 형성해 온 이민자들의 역할을 언급하며 "이민자를 환영하고 보호하며 돕는 일은 단순한 자선 행위가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존엄을 인정하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민자들의 희망과 희생, 그리고 그들의 기여는 미국 역사 초기부터 이 나라의 일부였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메시지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정책과 대비되며 정치적 해석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교황은 특정 정당을 언급하기보다, 미국 독립 250주년이 단순한 축하의 날이 아니라 시민들이 서로에게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도전 앞에서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이처럼 워싱턴에서는 마태복음 25장을, 바티칸에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두 논쟁은 결국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미국 정치권에서 시작된 마태복음 25장 논쟁이 세계 교회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 논쟁이 단순히 이민 정책이나 복지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을 넘어 복음이 오늘날 공공 영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마태복음 25장 논쟁은 한인 연합감리교회 목회자들에게도 낯선 질문이 아니다.
연합감리교뉴스는 이번 논쟁과 관련해 김정호 목사, 정화영 목사, 김진양 목사의 견해를 들었다. 세 사람의 강조점은 저마다 달랐지만, 복음을 특정 정당이나 정치 이념의 논리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인식을 보였다.
이들은 복음의 본질을 정치적 이념보다 더 앞세워야 한다며, “복음은 정치를 초월하지만,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라고 입을 모았다.
뉴욕 후러싱제일 연합감리교회 담임인 김정호 목사는 이번 논쟁을 보며 가장 먼저 민주주의의 가치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김정호 목사는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는 신앙이 없어서가 아니라, 같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조차 공공정책에 이를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전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따르려는 사람들조차 성경의 가르침을 오늘의 공적인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습니다."
김 목사는 연합감리교회가 지난 수십 년간 겪어 온 갈등을 예로 들며, 서로 다른 신학적 확신을 제도적 강제로 해결하려 했던 과정이 교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회고했다.
"우리는 점점 신학적 확신(theological conviction)과 제도적 강제(institutional coercion)를 구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어야 해결될 문제를 제도와 행정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경험이 오늘날 정치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죄는 단순히 권력을 남용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권력만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데 있습니다."
김 목사는 정부가 질서를 세우고 약자를 보호하며 공동체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하며,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이해 역시 균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의 역할 확대가 곧 사랑의 확대로 이어진다고 보는 진보적 낙관론도,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잃어버릴 수 있는 보수적 유혹도 모두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목회 현장에서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제도의 비효율과 의존성 문제 역시 함께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긍휼 없는 책임은 냉혹해지고, 책임 없는 긍휼은 의존을 만듭니다… 복음은 긍휼과 책임을 함께 요구합니다."
김 목사는 이것이야말로 존 웨슬리가 강조했던 균형이라고 말했다.
웨슬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의료사역과 구제사역을 펼쳤지만, 동시에 근면과 절제, 노동의 존엄, 책임 있는 청지기 정신도 함께 가르쳤다.
북일리노이 연회 프레리노스 지방 감리사인 정화영 목사는 "개인과 사회를 나누는 질문 자체가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납니다."라며 이번 논쟁의 출발점이 된 질문 자체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 안에서 개인영성과 사회영성은 애초부터 분리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예수가 가르치고 실천한 삶에서 개인영성과 사회영성은 언제나 하나였습니다."
정 목사는 이같이 말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가난한 사람을 외면할 수 없고, 성전에서 예배드리면서 정의를 실천하지 않는 것을 성경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이해는 존 웨슬리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며, 정 목사는 “웨슬리는 1739년 「찬송가와 성스러운 시에 대한 서론(Preface to Hymns and Sacred Poems)」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회 종교(Social Religion)이며, 사회 영성(social spirituality)’이라고 선언했습니다.”라며, 이 한 문장이 웨슬리 신학의 핵심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복음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으며,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이웃과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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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목사는 따라서 미국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마태복음 25장은 개인에게 적용되는가, 국가에도 적용되는가"라는 논쟁은 복음을 지나치게 개인화한 현대 기독교 세계관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복음과 구원이 개인화되어 버린 오늘날의 기독교 세계관이 이러한 질문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목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언제나 공동체적이며, 개인과 사회를 분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부 평화·정의 및 중동 지역 담당인 김진양 목사는 마태복음 25장에서 사용된 헬라어 "너희"가 2인칭 복수형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예수께서는 각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해 말씀하고 계십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마태복음의 직접적인 문맥에서 그 공동체는 무엇보다 제자공동체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를 오늘날의 국가와 곧바로 동일시하는 것은 성경 해석 측면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 목사는 연합감리교회의 사회원칙이 교회가 가장 작은 자들과 연대해야 할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국가를 포함한 모든 공동체 역시 약자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질문받는다고 말했다.
"마태복음 25장은 가장 작은 자와의 연대를 소홀히 한 공동체를 향한 예수님의 최후 심판이며, 동시에 국가를 포함한 모든 공동체를 약자와의 연대로 초대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목사는 이같이 말하며, 마태복음 25장을 개인의 선행을 권면하는 본문으로만 읽기에는 예수의 메시지가 훨씬 더 크고 깊다고 강조했다.
최후의 심판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공동체의 삶을 향해서도 선포되고 있으며, 제자 공동체는 세상 속에서 가장 작은 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정호 목사는 마태복음 25장이 정치적 논쟁의 도구가 아니라, 교회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하고, 본질인 그리스도의 제자 삼는 일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을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마태복음 25장은 어느 정당의 정책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넘어,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작은 자들을 실제로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예수의 말씀이다.
인터뷰에 응해준 김정호 목사, 정화영 목사, 김진양 목사께 감사드린다. 또한 이 기사를 위해 다음 두 보도를 참고했음을 밝힌다.
- The Bible verses dividing Washington: How Matthew 25 became a political litmus test, Religion News Service
- On July 4th, Pope Leo asks United States, Europe: Who is your neighb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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