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두 교황’과 연합감리교회 총회

(편집자 주: 이 글은 연합감리교뉴스의 <영화와 설교> 시리즈로, 영화 “두 교황”에 대한 현혜원 목사의 글입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영화 <두 교황
<The Two Pop)>의 한 장면. 사진 출처, imdb.com현혜원 목사가 시카고 제일 ”템플” 연합감리교회에서 기도하고 있다. 사진 제공, 현혜원 목사.

시편 133:1-3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2019년 개봉한 실제 두 인물에 대한 영화 <두 교황>은 깨알같이 소소한 유머가 곳곳에 숨어 있는 유쾌한 영화입니다. 따뜻한 미소나 혹은 크게 터지는 웃음을 지으며 보는 영화가 요즘은 흔하지 않은데, 이 영화는 따뜻한 미소와 빵 터지는 웃음을 함께 선사합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따뜻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한켠에 벽난로를 켜둔 듯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영화입니다. 좋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목처럼 두 교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가톨릭교회 역사상 두 번째로 교황 자리를 생전에 퇴위한 베네딕토 16세와 그의 뒤를 이은 차기 교황이자 현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둘은 추기경 시절부터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신학적 견해와 입장 차가 극명했기에 생겨난 와전된 소문일지도 모르지만요.

영화에서도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한 후 다음 추기경을 뽑는 콘클라베(conclave: 교황 선종 시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들이 모여 다음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회의)를 위해 전 세계의 추기경이 로마에 모였을 때, 당시에는 추기경이었던 베네딕토 16세가 화장실에서 만난 프란치스코 추기경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듣고, “어떤 찬송가를 흥얼거리고 있으신가요?”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노래를 흥얼거리던 프란치스코 추기경이 “오! 이 노래는 아바(Abba)의 댄싱퀸입니다!”라고 대답하지요. 속된 노래를 흥얼거리는 베르골리오 추기경(프란치스코 추기경)을 뜨악한 표정으로 보던 베네딕토 16세는 인사도 없이 자리를 떠나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쓸데없이 웅장하게 편집된 아바의 댄싱퀸을 배경으로, 베네딕토 16세가 선출된 2005년 콘클라베의 현장을 재치 있게 보여줍니다.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었을 때 세계는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메이저 미디어는 물론이고 세상 모든 미디어가 일제히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수장이 된 소식을 톱뉴스, 긴급 속보로 다루었습니다. 큰일이기는 했습니다. 평생 독재정권에 대항하고 가난한 자들과 핍박받는 자들을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해온 남미의 추기경이 교황이 되었으니까요.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고하게 보수적이고 변하지 않기로 유명한 교황청을 점차 바꾸기를 기대했습니다. 저 또한 가톨릭교회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가 교황이 된 소식을 기쁘고 흥분된 마음으로 지켜본 것을 기억합니다.

뉴스 등에서 읽은 단편적인 정보 외에는 두 분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는데, 몇몇 조각 정보만으로도 두 교황은 많이 달라 보입니다. 베네딕토 16세는 평생 신학교에서 가르친 학자이자,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곡을 피아노로, 수준급으로 연주할 수 있는 연주자이며, 추기경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라틴어로 일상 대화가 가능하다죠. 그리고 프라다(다른 말로 하면 비싼 럭셔리 브랜드) 구두를 즐겨 신는, 더없이 선하고 순수하고 자기에 엄격한 분이지만 낯을 가려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교황이었습니다. 그런 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생 길에서 사람들과 함께 거친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시고, 축구를 좋아해 자신이 사는 산로렌소 축구팀 회원 카드를 가졌고, 일주일에 3번은 사람들과 기꺼이 탱고를 추고, 늘 기차나 버스로 이동하는, 도움이 필요한 곳에 항상 나타나는, 그런 교황이었습니다.

영화는 이런 개인적인 차이와 더불어 신학적 견해의 다름도 보여줍니다. 베네딕토 16세가 이른 은퇴를 권하는 베르골리오 추기경(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을 로마로 불러 나누는 날이 선 대화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베네딕토 16세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와 함께 늘 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며 둘 사이의 큰 견해차를 드러냅니다. 둘의 대화는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어색하게 끝나고 맙니다. 영화 <두 교황>은 흥겹고 유쾌한 개그 코드 가운데 이런 날카로운 신학적, 혹은 정치적 대립점을 적절히 배치해 놓았습니다.

라이프스타일도, 신학도, 삶의 경험도 너무나 다른 두 교황. 그러나 영화에서 그 둘은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삶에 깃든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경외하게 됩니다. 그토록 다르나, 고통스러운 결정과 실수, 잘못을 서로에게 고해하며 나누고 용서합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삶과 신학에 다른 모양으로 깃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깊이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영화는 결론을 향해 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렇게 만 가지 모습이 모두 다름에도 둘은 딱 하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축구였습니다.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와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추기경은 모두 축구를 잘하는 나라 출신이고, 실제로 축구 광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2014년 월드컵 결승에서 두 나라가 맞붙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두 교황이 자국의 대표팀을 지지하며 함께 축구를 보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실제로는 중립을 지키기 위해 두 분 다 축구 경기를 보지 않으셨다고 하네요.

동전에 양면이 있듯 세상 모든 일에도 양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라는 한 동전에 내포된 신학적 가치의 양면을 대표합니다. 혹은 진보와 보수라는, 조금은 진부한 두 단어에 모두 담기지 않는 거대한 생각과 의견의 차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연합감리교회 또한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습니다.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교단 탈퇴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어쩌면 가장 익숙한 단어로 단어장에 새롭게 등장할 용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처음으로 연합감리교회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총회(General Conference)에 봉사자로 참여했는데, 어떻게 회의가 진행되는지, 총대들의 역할은 무엇인지, 회의를 진행하고 인도하는 감독들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실제로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총회 일정 중 어떤 안건이 가결되었을 때 플로어 일부에서 박수와 환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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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이 가결된 것에 대한 기쁨을 드러내는 행동이었는데, 박수 소리를 들은, 이번에 총감독회 감독회장으로 선출된 트레이시 말론 감독이 엄중한 목소리로 “제발 다른 이들을 존중하십시오. 이 결의로 인해 상처받을 이들을 위해 박수나 함성 등을 자제하십시오”라고 하셨습니다. 장내는 순식간에 잠잠해졌고, 그 이후 모든 과정은 박수나 함성 같은 격정적인 반응 없이 조용하게 치러졌습니다.

총회의 모든 과정이 의미 깊었지만, 저 개인적으로 말론 감독의 말은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민주적 절차로 결의된 내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받을 이들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자제’는 어쩌면 타인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하나의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신학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은 모든 이에게 조건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연합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음도 믿습니다. ‘연합’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심지어 사랑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이 사랑을 재치 있게 보여줍니다.

영화 마지막에서 한 소파에 앉아 축구 중계를 보는 두 교황의 모습을 배경으로 옆 방에서 타고 있던 촛불이 서서히 꺼집니다. 그리고 초의 연기가 하늘로 하늘거리며 춤을 추듯 올라가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는 마치 이토록 다른 둘이 연합하고 동거함이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그 연합과 동거를 엎드려 봉헌하니 하나님께서 기쁘게 흠향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사랑은 여러 모양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품으려는 노력도 사랑인 듯합니다. 두 교황이 그토록 날카롭게 신학적 대립점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황으로서, 추기경으로서 해온 실수와 잘못, 미숙함 탓에 고통받던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함으로써 둘은 대립점을 넘어서는 우정과 사랑을 서로에게 품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상투적이기까지 한 이 표현은, 우리가 노력할 때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연합하고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우리를 보며 감탄하실 하나님을 상상해 보면, 차이와 분열이 어쩌면 그렇게 힘든, 넘지 못할 산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이메일 tkim@umnews.org 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받아 보기를 원하시면, 무료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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