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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선 목사, 제공, 오정선 목사.](https://admin.umnews.org/-/media/umc-media/2024/08/20/03/45/pastor-oh-jungsun.jpg?h=643&w=537&hash=D7D50052FB00958C25BCF0DE84FF4E6C)
나는 동양의 유교가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 등으로 몸살을 앓고 신음하며 고통받고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 (로마서 8:19-21), 특히 하나님의 창조물을 보호해야 할 거룩한 책임을 갖고 살아가는 인류에게 영적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교의 영적 자원이란 역동적이고 유기체적 세계관, 기(氣)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생명의 영속성 존중, 고통받는 사람을 살피는 사려 깊은 마음, 정의롭고 환경이 보전(保全)되는 사회를 건설하려는 중단 없는 노력, 도덕 윤리 교육의 강조 그리고 상호 연결을 중시하며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생명에 대한 인식과 감사함을 말한다.
린 화이트(Lynn White)는 1967년에 ‘생태 위기의 역사적 뿌리들(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이라는 짧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에서 화이트는 전통 기독교 교리가 자연 세계는 비성스러우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인간에 의해 지배되는 단지 죽은 물질 정도로 간주하게끔 만든 주된 요인을 제공하였으므로 오늘 인류가 당면하는 생태 위기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여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까지 서구 문명의 발전을 지탱해 온 기독교로는 인류가 당면한 생태계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결책으로 새로운 종교적 영적 자원을 찾든지 아니면 새로운 안목으로 기독교를 다시 볼 것을 제안했다.
나는 한민족 고유의 선교(仙敎) 선도(仙道) 선학(仙學)의 가르침이며, 유교의 주요 원리인 천지인 합일(天地人合一)에 기초한 새로운 인간-우주적(Anthropo-cosmic) 세계관이 이전 세대가 경험하지 못했던 절박한 생태 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현 인류에게 종교적 영적 깨우침을 제공한다고 본다. 나는 1996년에 하버드 대학교에 열린 ‘유교와 생태계 학회(Confucianism and Ecology Conference)’에 참석했다. 그 학회에서 발표된 여러 논문, 세계 각국에서 온 논문 발표자들과의 열띤 논의 그리고 숙고를 통해서 유교의 고유한 영적 자원이 생태계 논의에 새로운 안목과 영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계몽주의 정신을 넘어서
![두루알리미 광고 박스 이미지](https://admin.umnews.org/-/media/umc-media/2020/06/23/16/14/duruallimi-graphic-capture--text-box.png?h=306.519&w=552.259&hash=879B3ECD84C72F8CB122A6C05B06A8CA)
계몽주의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일 뿐 아니라 경제적 번성, 정치적 안정, 사회적 발전을 위한 유일한 힘(권력)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일부 서구 학자들이 진보, 이성 그리고 개인주의에 기초한 계몽주의 정신에 도전해 왔지만 계몽주의는 여전히 온 세계의 지적 영적 지도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몽주의의 어두운 면을 생각해 보자. 끝없는 산업기술 발전을 상징하는 ‘해방된 프로메테우스(Unbound Prometheus)’라는 말은 산업혁명 최전성기에 인간의 천재성이 이룩한 찬란한 업적을 의미한다. 낭만주의 운동의 적극적 저항과 인간학자들의 예리한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탐구하고 알고 정복하여 결국에는 굴복시키는 파우스트적 추진력에 기초한 계몽주의는 현대 서구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존속되어 왔다. 동아시아 국가들 역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이 이데올로기를 국가 발전에 꼭 필요한 원리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계몽주의가 견인해 온 역사를 보면 우리는 소위 이성의 시대라는 이미지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현대 서구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게 된다. 현대 서구의 패권 강화라는 상황에서 오늘날의 진보는 불평등, 이성, 자기 이익, 개인 욕망 등을 적극 옹호한다. 하지만 진보의 기치 아래 적어도 세 대 이상의 자동차와 세 개 이상의 차고를 소유하고 고임금을 받으면서 개인, 표현, 종교, 여행의 자유를 누리는 소위 아메리칸드림은 지구촌을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표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계몽주의 정신은 합리성을 강조하는 그리스 철학, 땅을 정복하는 성서의 인간 이미지, 그리고 소위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기초하여 발전했다.
그러므로 사회 붕괴와 생태계 파괴, 그리고 위기와 파국을 걱정하는 공동체의 시급한 당면 과제는 현대 서구 사회의 소수 지배자와 문화 엘리트들로 하여금 공동체적 영적 모험의 여정에 참여해 그들이 지금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중시해 온 계몽주의의 유산에 대해 재숙고하도록 인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원론적/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
계몽주의 정신은 이원론적/이분법적 사고에 기초한다. 그런 이유로 세계와 사물을 인식하는 기본 틀을 물질-정신, 몸-영혼, 성스러움-비속함, 인간-자연, 창조주-피조물로 나누어 이해한다. 이 도식을 초월하여, 대지의 성스러움, 존재의 연속성, 인간 공동체와 자연의 상호 호혜적 관계, 인간과 하늘(天)의 상호 관계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사유의 틀을 현대 철학, 종교 그리고 신학 차원에서 비판적 안목으로 재조명해야 한다. 여기서 유교는 새로운 안목과 영성을 제공한다.
성서 해석: 땅을 정복하라(창세기 1장 28절)
전통 기독교는 땅을 정복하라는 성서를 문자적으로 그리고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했다. 그로 인해 인간은(기독교인들) 하나님의 창조의 경이로움과 축복에 감사하는 삶을 살지 않고 오히려 땅과 자연을 무분별하게 개발하고 정복하면서 자연을 파괴해 결국 공해와 생태계 위기를 초래하는 데 이르렀다. 앞서 언급한 린 화이트와 같은 목사, 신학자들의 주장이다.
생태 중심적 기독교의 성서 해석은 전통 기독교의 성서 해석과 다르다. 이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로 대표되는 생태 중심적(Eco- centric) 자연관으로 땅과 자연을 인간에 의해 정복 개발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인간 중심적 생태관과 달리 인간과 다른 모든 피조물을 동등하다고 본다.
나는 땅을 정복하라는 성서 구절을 땅을,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돌보라는(care) 의미로 해석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을 땅과 하나님의 피조물을 관리하는 청지기(steward)로 보는 것이 생태계 파괴를 막고 생태계 보전(保全)을 위한 성서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신 황금률
그러면 계몽주의를 무조건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린 화이트(Lynn White)의 말대로 새로운 영적 자원을 찾아내야 하는가? 나는 유교의 신황금률, 즉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내가 원치 않는 바를 남에게 시키지 말라(論語, 12:2)”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는 기독교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장 12절).
우리는 인간 중심적 고전적 성서 해석을 “내가 원치 않는 바를 남에게 시키지 말라.” (논어, 12:2)라는 신 황금률(a new Golden Rule)로 대치해야 한다. 그리고 부정문으로 되어 있는 신 황금률을 다음의 긍정문으로 바꾸어야 한다. “내가 일어서고자 하면 남도 일어서게 해주고, 내가 이루고자 하면 남도 이루게 하는 것이다.”(논어 옹야편 28) 사려 깊고 늘 반추하는 정신, 공공적이고 비판적인 자각에 기초한 공동체가 갖고 있는 포용성은 철학적 이상이며 윤리의 종교적 목표이다.
유교에서 생태론적 사고와 행동의 근거를 찾는다
11세기 중국 북송(北宋)의 성리학자 장재(張載)가 쓴 <서명(西銘)>은 만물의 내적 연결성을 진술하고 더 나아가서 내적 연결성을 인지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라고 촉구한다.
하늘은 아버지이고 땅은 어머니이다. 나는 여기서 미미한 존재로 그 가운데에 살아 있다. 그러므로 나는 천지의 기운을 내 몸으로 여기고 또한 천지를 주재하는 이치를 내 본성으로 여긴다. 모든 사람이 내 형제이고 만물이 내 동반자이다.
천지의 기운과 천지를 주재하는 이치가 우주의 본성이기 때문에 만인을 우리 삶의 동반자로 여기라고 가르친다. 또한 만물이 우리의 동반자라는 영적 가르침에 근거해서 생태계의 보전(保全)과 위기 해결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장자의 서명은 유교 생태론의 가장 근본적 개념이고 윤리적 행동을 위한 유교의 처방이다.
미미하기 그지없는 존재인 한 개체를 온 우주와 연결하는 친밀함에서 장재의 심오한 영적, 도덕적 생태학을 발견한다. 이 인간적 이상이 유교의 독특하면서 미래적인 영성이다. 이는 간섭하지 말 것을 주장하는 도교의 이상과 다르며, 집착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 불교의 영성과 다르다. 하지만 인간이 우주와 한 몸을 이룬다는 개념은 지배 계층뿐 아니라 일반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원리이다. 또한 존재의 모든 양상이 기로 이루어져 있기에 인간의 삶이란 우주 과정을 구성하는 피와 생기의 연속적 흐름의 일부분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적 본래 자연(기독교 용어로 피조물), 즉 바위, 나무, 동물, 물, 공기, 대지와 존재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요약하면 이 짧은 글에서 나는 생태계와 생태계 보전(保全)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갖고 씨름하며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에게 린 화이트(Lynn White)의 테제를 소개하였다. 첫째, 우리는 계몽주의의 어두운 유산을 인지하고 극복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이원론적/이분법적 사고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셋째, 땅을 정복하라(창세기 1장 28절)라는 성서를 생태학적 안목으로 재해석할 것을 권유했다. 넷째, 논어의 신 황금률을 긍정문으로 재구성하였다. 마지막으로 장재의 <서명>이 표방하는 유교의 영성을 하나의 생태론적 사고와 행동의 근거로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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