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옛사람들은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브리서 11:1-2)

우리는 예수님의 눈물이 성경 속 이야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인 디아스포라의 애틋한 삶의 표현은 기도 중에 흘리는 눈물로 나타납니다. 그 눈물은 때로는 원망을 담고, 또 때로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 되기도 합니다.
초기 한국 기독교 공동체의 경험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예수님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이들에겐 공통적으로 눈물의 회개와 참회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눈물은 사람들의 감정의 자연스러운 표현이었으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오랫동안 갈망해 온 새 해방의 경험을 의미하는 감정이었습니다.
"그는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노인을 보고도 울었습니다. 외국인을 보면 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고향을 얼마나 그리워할지 생각하며 눈물을 닦았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통곡하며 길을 걸었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생각하며 울었고, 인간 삶의 허무함을 느끼며 울었고, 인류의 죄악된 모습을 보며 울었고, 사도들의 헌신을 생각하며 울었고, 밥을 먹으면서도 울었고, 잠을 자면서도 자주 울었다고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수건으로 닦는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울음은 의미 없는 울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담긴 눈물이었죠." [1]
이는 눈물의 사도로 알려진 김종섭(1862~1940)의 회심 이야기 중 하나로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기독교가 완전히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은 비기독교 문화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들의 일상이 애통과 눈물로 가득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초기 한국교회 부흥운동을 이끈 이용도(1900-1933)는 감리교 목사로, 영성운동의 중심에 선 인물이자 눈물의 신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영성운동은 국내는 물론 만주까지 확산되었고, 성령의 역사는 초기 한국교회에서 강렬한 회개 운동을 통해 전염병처럼 번져나갔습니다.
눈물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입구이자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눈물은 잃어버린 영혼을 회복시키고 재생시키는 삶의 체험을 위한 매개체입니다.
"찬송을 부르는데 (이)용도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용도가 우는 모습을 본 회중들은 모두 울었습니다. 용도의 울음소리가 심해지자 군중들은 눈물의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부흥회 설교를 맡게 된 용도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 마음을 다잡고 새벽에 강단에 섰습니다. 그는 찬송을 불러도 울고, 기도를 해도 울었습니다. 설교를 하려고 하면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목이 메었습니다. 용도의 가슴 속에서 이상한 열기가 끓어올랐습니다[2]
"나는 죄인 중 하나이며 어리석고 비천한 노예입니다. 저는 진정한 사랑과 동정심이 거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인간을 위해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신 것처럼 할 수 없는 저는 죄인입니다[3]
이용도 목사는 눈물과 피맺힌 고백을 통해 구원받은 후, 자신의 존재에서 일어난 변화를 묘사하며, 성령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체험을 그려냅니다.
이미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맞서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이 목사는 세 번 이상 탄압과 투옥을 겪었지만, 한 선교사의 초청으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경건함과 사회 참여적 정의감으로 초기 한국 교회와 만주 교회에 깊은 영향을 미친 인물로, 진심 어린 탄식과 회개의 눈물을 통해 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눈물은 모두 말라버렸습니다. 눈물이 없는 곳에서는 이루어진 것도 없습니다. 눈물에는 살균력이 있습니다. 원망, 불평, 이기심 등은 전염성 세균과 같아서, 마음에 닿으면 자신을 죽이고 다른 사람도 죽이는 악성 세균이 됩니다. 이 모든 세균은 눈물을 통해 죽일 수 있습니다. 동정심과 뜨거운 사랑의 눈물이 쏟아질 때, 남 탓, 질투, 불행, 이기심 등 불신의 세균은 모두 죽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새 마음을 얻게 됩니다.
눈물은 말랐지만, 우리의 피(희생)는 그보다 더 말라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기력한 빈혈 환자가 되었습니다. 피가 없으면 무기력하고, 약하고, 힘이 없고, 용기가 없고, 분개하고, 생기가 없습니다. 대신, 소심하고 외롭고 절망적으로 바뀝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피를 주입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가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밝고 활기차고,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우리에게 주입해 주십시오.”[4]
이용도 목사에게 눈물은 사랑이었고, 예수님의 구속의 체험이었습니다. 이 사랑의 감정적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기 가난한 영성과 겸손을 살아낸 사도적 리더십의 특징으로 묘사됩니다. 초기 한국 교회 역사에서는 눈물이 많은 사람의 경험을 통해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강력한 모티브로 자리 잡았다고 말합니다. 또 눈물의 탄식은 우리에게 정의와 사랑을 향한 부르심과 호소의 설교가 되었습니다.
한인 디아스포라의 탄식과 눈물
한인 디아스포라의 전기적 흔적을 쓰면서 예수님의 눈물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이유는 애틋함(정)과 풀리지 않는 감정(한)의 두 얼굴을 가진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고백이 그곳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환희를 표현할 때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억압과 차별, 사회적 고립에 마주했을 때 흘리는 눈물은 회한과 슬픔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향했던 초기 이민자로서 한인 디아스포라들은 강한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들을 더 나은 삶을 실현하고자 더 큰 뜻을 품고 떠난 순례자들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식민지 통치의 경제적, 사회적 현실과 가난 때문에 생존을 위해 사랑하는 고향을 떠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 심어진 기독교 신앙은 새로운 땅으로 나아가는 근본적인 힘과 용기가 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낯선 땅은 광야였고, 그들에게 주어진 새 언약이 없었다면 그 땅을 따라갈 수 없었을 것임을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땅으로 밀려난 초기 이민자들의 모습은 성경 속 인물들과 유사하며, 바울이 말하는 것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그는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하신 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수 있도록 모든 소망 가운데서 바라고 믿었습니다: "네 자손이 네 뒤를 이으리라." (로마서 4:16-18)
아브라함에게 그 길은 광야였고, 불확실한 땅을 걸으며 온갖 도전에 직면했지만, 그 과정에서 그를 강하게 한 것은 바로 믿음을 실천하며, 소망하고, 인내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광야의 거친 길에서 눈물은 그들에게 양식이 되었고, 회복탄력성의 증거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민중신학은 실제 눈물을 개인적인 감정 세계의 표현에 국한시키지 않고, 집단적 정체성과 해방의 모티브로 제시하며, 새로운 내일의 메시아적 희망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이는 민중 공동체가 삶의 주체가 되어 더 이상 억압적인 체제나 사회 제도의 유령에게 희생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서서, 사회적 복음의 고백을 통해 강한 집단 무의식을 동력으로 사회 변화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운동입니다. 민중 의식은 민중의 저변을 넓고 깊게 파고드는 의식 체계였으며, 언제든지 기회가 주어진다면, 민중이 주인이 되는 정의로운 세상, 즉 민중의 세상을 창조할 혁명적 힘이 내재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평생을 갈망하고 희망했던 나라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민중의 의식과 기도는 고난과 역경을 강한 회복력으로 극복하는 사회 혁신의 힘으로 발현됐습니다. 이는 조직적이거나 문헌 또는 경전 중심의 운동이라고 할 수 없지만, 마음에서 마음으로, 경험에서 경험으로, 기도에서 기도로 중첩된 공동체 의식이 사회 변화의 거대한 바람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서 눈물은 공동체의 대표적인 문학적 표현이자 삶의 변화를 드러내는 은밀한 통합의 감정입니다.

식민주의와 근대 서구화의 강력한 억압으로 고국에서 떠난 한인 디아스포라는 생존과 굶주림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준 미래지향적 용기와 깨달음을 원동력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고요한 동방의 땅이라 자부했던 대한민국은 외세의 침략과 전쟁이라는 제국주의적 현상에 흔들렸습니다. 고립된 반도 국가로 근대화의 바람을 늦게 받아들이면서 선진 문물에 압도되어 국토를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바로 이러한 현실이 한인 디아스포라의 특징이자 정체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초기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문화적 계몽과 변혁을 동시에 수용하는 현상이 초기 한국 기독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개방과 새로운 시작의 복음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절박한 기회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초기 한인 디아스포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바탕으로 흩어진 수동적인 디아스포라였지만, 신앙 운동과 교회는 그들의 옷깃을 여미고 그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눈물은 또한 슬픔과 탄식을 표현합니다. 예루살렘을 내려다보며 슬픈 마음으로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셨다고 전해지는 예수님의 애가는 실체적 진실의 표현이며, 오직 정의와 진리를 드러내며 세계 구조의 변화를 예고하는 정직한 매듭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의 애가가 기도와 신앙 속에서 메시아적 희망과 기대를 강하게 드러내며,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신자들을 향한 직접적인 표현이자 신학적 담론이라고 믿습니다. 여기서 식민주의와 전쟁, 제국주의의 폭압, 서구 자본주의의 독점이 가난한 한인 디아스포라에 어떻게 현실이 되었으며, 예수에 대한 신앙 정신이 그들 사이에서 어떻게 새로운 담론을 창출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며, 가는 곳마다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신학교육을 열정적으로 추진하며, 신앙 중심의 디아스포라로 자리매김하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들의 눈물이 결단과 미래 도전의 매개체가 되었으며, 고난받는 종으로서 공동체와 함께 자신을 다지고 기도 운동을 전개했다는 것입니다. 해방의 모티브로서 예수의 눈물은 한인 디아스포라에 친근한 신학적 담론을 형성합니다. 우리는 이 모티브가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과 갈등을 바라보며 능동적인 평화의 담론을 통해 평화의 모티브로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평화의 실현을 위해 흩어져 있지만, 복음, 평화, 화해, 그리고 중재자의 자기 형성은 계속된다고 믿습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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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덕주, 한국 기독교인의 개종 이야기, 서울, 천망사, 1990, 59-60쪽
[2] 이용도 목사 평전, 서울, 예수살기, 1995, 29쪽
[3] 이용도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예수 3권, 11쪽
[4] 1927년 일기, 12, 6, 38-39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