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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세상을 사는 불완전한 존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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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목사가 2019년  한인총회 개회 예배에서  갈리리로 오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있다.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김영봉 목사가 2019년 한인총회 개회 예배에서 갈릴리로 오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있다.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나는 푸틴의 과도한 욕망으로 인해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 글을 쓰고 있다.

1990년대, 영구할 것만 같았던 냉전 체제가 급속하게 녹아내리고 소련 연방이 해체 되는 것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인류가 드디어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실제로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국지전을 배제하고는 반세기 넘는 동안, 세계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기를 사는 우리는 그사이 문명이 발전하고, 세계가 하나의 촌락처럼 밀접해지며, 소통도 더욱 빈번하게 이루어져, 더는 침략 전쟁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섣부른 기대를 하게 되었고, 잘만 하면 인류가 이 평화를 지속 가능한 것으로 정착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의 섣부른 기대와 환상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며, 인간의 권력욕은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언제든지 야만성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 시켜 주었다.

역사 속 세계 대전들이 증명하듯, 수많은 인명을 희생하며 싸워야 할 만큼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하찮은 문제 또는 오판과 착오 그리고 실수가 겹쳐서 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이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는 마음이 불안하다. 작은 국지전이 세계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전쟁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는 이 사태를 통해서 또 한 번 우리가 “불완전한 세상을 사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쟁과 더불어 나는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라는 우리 조국의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다음 날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최근,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우리는 인간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이며, 인간이 만든 제도와 시스템이 얼마나 허점투성이 인지를 목도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빌 클린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대중은 더 이상 대통령 후보에게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고, 그것이 도날드 트럼프의 당선을 통해 또 한 번 입증되었다.

이번 한국의 대선에서도 도덕적 흠결에 있어 난형난제인 두 후보가 맞붙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표를 던진 사람보다 지지하지 않는 후보를 막기 위해 표를 던진 사람이 더 많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선거 운동 역시 페어플레이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일이 되어 버렸다. 포퓰리즘과 네거티브 선동은 당연한 일처럼 되었고, 투표 과정에서 대중은 주인이 아닌 조작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결국, 우리는 계속되는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인류가 개발해 낸 가장 정의로운 제도라는 민주주의 제도 역시 인간의 탐욕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을 거듭해서 증명하였다. 이렇게 인간 탐욕의 한계가 초과하여, 민주주의 제도와 자본주의 제도의 시효를 다하게 만든 현재의 상황에 이르자, 대중의 욕망을 적절한 정도에서 만족시키며,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는 제도로서의 대안이 없어 그저 난감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각과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우러르게 만들어 준다. 불완전한 세상을 사는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우리에게 소망의 이유가 있다면,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 삶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성을 잃어버린 인간과 깨어진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다스리신다.

인류의 역사는 불완전한 인간들의 선의와 악의, 의로운 행위와 죄악, 실수와 악행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그 현실만 본다면, 우리는 희망을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새것을 기대할 수도 없지만,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하나님의 뜻이 드러날 때까지 우리가 인내하며 진리와 정의를 따라 살기 위해 힘쓸 수 있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늘을 우러르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불완전함을 치유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종말론적 희망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땅에서 간헐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절망과 낙심은 종말론적 소망을 기억하고, 그 소망을 되살리라는 하나님의 자극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할 것은 그것이 현실을 체념하거나 외면하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가 기독교 신앙을 그렇게 오역한  사례들이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종말론적 신앙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을 마음에 품고, 불완전하고, 불의하며, 때로는 불행한 현실 안에서 공동선을 위해 일하고 헌신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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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인간과 세상의 불완전함을 치유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이며, “To Make Disciples of Jesus for the Transformation of the World”라는 연합감리교회의 비전 선언문은 목회의 핵심을 잘 요약해 놓았다. 이 비전 선언문은 “세상을 변혁시키기 위해 예수의 제자를 만든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예수의 제자를 만들어 세상을 변혁시킨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후자가 더 적절한데,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 목적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것이 아니고, 마지막에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회의 초점은 한 영혼 한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제자로 삼고, 제자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믿는 이들은 자신이 처한 곳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일한다. 또한 제자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더 많은 제자를 삼아, 한 몸을 이루고, 불완전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힘쓴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혹은 하나의 지역 교회가 세상의 변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도 작다. 하지만 제자 된 그리스도인과 제자공동체인 교회가 하나둘씩 퍼져 나간다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정의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인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그리고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는 것이 세상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공헌이다.”라고 했던 스탠리 하우어워즈의 말은 진리를 전한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교회적으로 제자 됨을 위해 노력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제자는 어떤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천 년의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완제품 제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바울, 어거스틴, 프란시스, 루터, 웨슬리, 칼빈 같은 사람들도 완제품으로 살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은 제자 됨의 과정에 있는 존재다.

제자 훈련에 있어서 한국 교회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옥한흠 목사도, 미국의 대표자였던 빌 하이벨즈 목사도 자신들이 공들였던 30년의 제자 훈련이 실패였다고 자인한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빌 하이벨즈 목사는 그 자신부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실패했다는 사실을 추한 스캔들로 증명했다. 누구나 제자로서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넘어지게 되어 있다.

현역으로 섬기는 동안에 목회의 좋은 모범을 보였고, 교회를 훌륭하게 키웠던 어느 은퇴 목사님과의 대화 중에 들었던 말이 기억난다.

그 교회는 그 목사님이 은퇴한 후에 지독한 내홍(內訌)을 겪었고 분열되었다. 그분은 그 갈등과 분열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은퇴하면서 속으로 생각했어요. 제자 훈련을 충분히 했으니,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고 계속 성장하고 성숙하겠지. 그런데 웬걸요? 믿었던 교인들이 너무도 쉽게 흔들리고 넘어지고 흩어졌습니다. 그것을 보고 내가 뭘 했나 싶어서, 깊은 우울감에 빠졌더랬습니다.”

이 말씀으로 그분은 옥한흠 목사와 빌 하이벨즈가 토로했던 바와 같은 사실, 즉 제자 됨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지속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셨다.

목회는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불완전함을 극복해 나가도록 돕는 일이며, 이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목회자 혹은 교회 지도자들이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이다.

무의식중에 자의식(self-righteousness)에 빠져 스스로를 완제품 제자로 착각하는 일이 교회 지도자들에게 자주 일어난다. 그리고 그 허위의식이 교회 전체의 영적 성숙을 방해한다. 따라서 제자화를 목적으로 목회를 한다면, 먼저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매일 제자로서의 삶에 자신을 깨우도록 힘써야 한다. 또한 완제품 제자를 만드는 것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고, 매일 제자로서 자신을 깨우고 제자로 살아가도록, 교인들을 도와야 한다.

결국 기독교 신앙이란 불완전한 존재로서 숨이 다할 때까지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는 과정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났고,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 받았더라도, 그 변화는 한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완성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때에나 가능하다. 이 땅에 사는 한 아직 완전해지지 않은 옛사람, 즉 “견고한 진”(고후 10:4)이 여전히 우리에겐 남아 있다. 그것은 언제든 우리를 넘어뜨리고, 제자로서의 삶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도상에 있는 존재로서 자신의 현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매일 제자로서 살아가도록 서로를 일깨우며, 서로의 불완전함을 품고, 그 불완전함을 넘어서도록 힘써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불완전한 세상을 견디고 불완전함을 치유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싸워야 싸움이며, 싸움은 어려운 것이다. 가치 있는 싸움일수록 더 격렬한 법이지만, 그 열매 역시 더욱 달다.

우리가 매일 싸우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성령께서는 이 땅과 새 하늘 그리고 새 땅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이기게 하실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희망의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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