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일, 한국에서는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2년 후인 2021년 3월 1일, 미국 뉴욕에서 1921년 3월 2일 뉴욕 맨해튼 타운홀에서 대한독립을 외쳤던 미주 3.1운동의 100주년을 기념한다.
1919년 3월 1일 조국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을 기념하며, 또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울려 퍼졌던 만세 함성은 같은 해 4월 미 동부 최초의 한인 교회인 뉴욕한인교회를 낳는 계기가 되었다. 2021년은 미주 3.1운동과 뉴욕한인교회 모두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뉴욕한인교회는 2월 28일(주일)에 삼일절기념주일 예배를, 3월 1일(월)에는 애국지사 및 무명지사의 묘를 참배할 예정이다. 이어서 4월 18일(주일)에는 새 건축 입당 및 창립 100주년 기념 예배를 드릴 계획이다.
1970년대 시작된 뉴욕한인교회 재건축 논의는 2014년 교회총회에서 의결되었지만, 재건축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로 인해, 예상했던 18개월을 훌쩍 뛰어넘어 햇수로 7년이 걸렸다.
100주년 행사를 앞둔 뉴욕한인교회의 이용보 담임목사와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파란만장했던 과정을 들어본다.
이용보 목사님, 뉴욕한인교회의 창립 10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연합감리교뉴스 독자들을 위해 뉴욕한인교회의 역사를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미 동부 최초의 한인교회인 뉴욕한인교회는 삼일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1921년 3월 2일 뉴욕 웨스트 43가에 위치한 맨해튼 타운홀에서 서재필 박사와 한인 동포 100여 명과 친한파 미국인 등 1,300여 명이 함께 모여서 삼일독립만세운동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대회를 마치고 약 두 달 후인 1921년 4월 18일 임종순 목사와 조병옥 박사, 이용설과 안정수 등 신앙의 선배들이 이후 미주 민족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될 뉴욕한인교회를 창립했습니다.
뉴욕한인교회의 영어 명칭은 Korean Methodist Church and Institute입니다. 교회 이름에 Institute라는 단어가 첨가된 이유는 ‘뉴욕한인교회가 예수의 몸인 성전이면서 동시에 뉴욕 한인 사회에 국가적, 사회적 봉사를 해야 한다는 사명’ 때문입니다. 그렇게 뉴욕한인교회는 위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아래로는 조국의 독립과 동포 사회를 섬겨야 한다는 존재 목적을 가지고 633W 115th St.에 위치한 현 성전을 100년간 지켜왔습니다.
뉴욕한인교회는 동포들에게는 고향과 같은 포근한 보금자리이자 쉼터가 되었고, 정치 망명가들에게는 조국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유학생들에게는 조국 독립이라는 꿈과 비전을 키우는 산실을 담당해왔습니다.
성전 신축을 시작한 시기와 동기 그리고 교회의 완공은 언제인가요. 건축 과정에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말씀해주세요.
뉴욕한인교회는 50여 년 전인 1970년대부터 성전 신축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고, 교인들은 성전 신축을 위해 헌신적으로 헌금하며, 참여하고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이민 사회의 흐름과 선교적인 목적을 위해 성전을 옮기자는 의견과 역사의 현장인 현 성전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을 두고 논의하며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옛 교회 건물을 예배당으로 계속 사용하기에는 공간적인 제약과 노후화로 인한 안전 문제가 겹쳐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수년간 예배를 주변 학교 건물에서 드렸습니다.
2014년 교회총회를 통해 현 위치의 역사적 의미를 높이 평가하고, 경제와 예술의 중심지인 맨해튼에 소재한 뉴욕한인교회를 재건축하기로 결의했고, 2015년 8월 16일 건축 회사와 계약을 맺고 공사를 시작한 이래 광야를 지나는 듯한 7년의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4월 18일 입당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래 1년 6개월로 예정되어 있던 공사가 햇수로 7년이 지난 2021년에야 마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예상치 못한 난관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컬럼비아 대학교와의 문제였습니다. 우리 교회를 제외한 블락 전체가 컬럼비아 대학교 소유지라, 컬럼비아 대학교는 이 지역을 허물고 고층 빌딩을 세우기 위해 지난 몇 년간 뉴욕한인교회에 성전을 학교에 팔고 다른 곳으로 이전하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뉴욕한인교회는 재건축을 결의했고, 이를 위해 인접한 컬럼비아 대학교의 개발동의서(Access Agreement)를 받아야 했습니다. 맨해튼에는 많은 건물이 서로 붙어 있어 건물을 새로 지으려면 옆 건물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개발동의서입니다. 컬럼비아 대학교는 그 댓가로 교회에 10만 불을 요구했고, 뉴욕한인교회는 그 돈을 지불했습니다. 그럼에도 컬럼비아 대학교는 돈만 받고 개발동의서에 서명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뉴욕한인교회는 컬럼비아 대학교가 서명을 해주지 않으면 그 대학교 앞 거리에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통보를 하자 컬럼비아 대학교는 개발동의서에 서명을 해줬고, 그제서야 교회는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느라 1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뉴욕한인교회를 거점으로 독립운동과 동포 사회를 위해 봉사했던 기관들 및 현재 활동중인 기관들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도산안창호 기념관)(3)재미조선문화회
(4)근화회
(5)조국광복사업추진회
(6)뉴욕재만동포옹호회
(7)미주동부대한인부인회
(2)뉴욕한인교민단
(3)북미유학생총회
(4)대한인동지회
(5)흥사단
(6)친한회(The League of the Friends of Korea)
(2)우라키(Rocky)
(3)삼일신보
(4)The Free Korea
4. 현재 활동 중인 단체
(1)뉴욕한국학교
(2)뉴욕한인회
(3)KAFSC(뉴욕가정상담소)
(4)KCS(뉴욕한인봉사센터)
둘째는 뉴욕시가 뉴욕한인교회 건물을 역사적 건물(Landmark)로 지정한 것입니다. 역사적 건물로 지정이 되면 그 건물을 증·개축하는 데 어려움이 큽니다. 이로 인해 교회당 전면을 현 상태 그대로 보존한 채 개축하겠다는 변경안을 제출하고 시와 협상을 했고, 건축 허가를 받는 데 9개월이 걸렸습니다.
셋째는 작년 3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19로 인해, 불가피하게 다시 몇 개월 공사를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넷째는 교회 재건축 논의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그간 적립한 건축 헌금으로 융자 없이 공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에 말한 세 가지 난관들을 해결하는 데만 2년의 세월이 흘렀고, 총 햇수로 7년이 지나는 사이 뉴욕시의 건축 비용이 급격히 상승했고, 교회는 부족한 건축 예산을 교단의 연합감리교개발기금(United Methodist Development Fund, 이하 UMDF)으로부터 융자받아야 했습니다.
지난 50년간, 모든 고비마다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선배 목사님들과 교인들 그리고 건축위원들의 눈물과 기도, 땀과 헌신으로 인해 드디어 공사 완료와 함께 입당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뉴욕한인교회 독립운동기념관에 관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교회 건축만으로도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독립운동기념관까지 하였으니힘 들었겠습니다.
교회를 본부 삼아 창립된 7개의 독립단체를 포함해 민족의 교회이자 한인 사회의 어머니 교회인 뉴욕한인교회를 주요 근거지로 활동했거나 교인들이 주축을 이뤄 조국 해방에 공헌한 기관은 17개에 달합니다.
그 밖에도 뉴욕한인교회는 대한민국 영사관 업무를 비롯한 크고 작은 교회와 동포들의 쉼터 역할을 담당해왔습니다.
이처럼 뉴욕한인교회는 선조들이 지나온 역사의 발자취를 간직하며, 젊은 신앙으로 무장한 인재를 또한 양성해왔습니다.
이러한 단체들과 다양한 역사적 활동에 기여한 뉴욕한인교회는 지난 2012년 대한민국 보훈처로부터 독립운동 거점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인정받았고, 그 후 보훈처와의 긴밀한 협의를 거쳐, 보훈처의 재정적 보조를 통해 독립기념관을 설치하기로 했고, 내년 2022년 봄 개관을 목표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뉴욕한인교회 독립기념관은 비영리 재단인 한미디아스포라 (Korean American Diaspora Foundation, Inc., 이하 KADF)를 통해 운영됩니다. KADF는 독립기념관과 한국학교를 포함해 예술과 학술 그리고 사회 전반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뉴욕한인교회 독립기념관은 주중에는 상시 개방될 예정이며, 기념관을 넘어 민족의 독립운동사와 코리안 어메리칸으로서 민족성과 정체성을 키우는 곳이 될 것입니다.
몇 해 전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으로 잘 알려진 황기환, 염세우 애국지사와 뉴욕한인교회의 관계를 설명해주세요.
<미스터 션사인>으로 잘 알려진 황기환 애국지사와 염세우 애국지사는 뉴욕한인교회 교인이셨습니다. 황기환 애국지사는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오신 후, 뉴욕한인교회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조국 독립을 보지 못한 채 40대 초반에 심장마비로 소천하셨습니다.
뉴욕한인교회는 차세대 양성을 위해 삼일절 장학생을 모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학금은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수여하나요? 그리고 기금은 어떻게 마련하는지요.
지난 100여 년간 대학교 근처에 위치한 뉴욕한인교회는 많은 유학생이 오고 가는 정거장 역할을 감당하며, 젊은 청년들의 꿈과 비전이 자라도록 도왔습니다. 교회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뜻있는 교인들이 기금을 모아 젊은 인재를 양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뉴욕한인교회의 삼일절 장학금을 만들었고, 뉴욕한인교회 재단이사회와 장학위원회가 예수님의 가치관에 맞는 평화와 정의의 선한 목적을 위해, 앞으로 매년 교회의 외부 청년들에게 지속해서 수여할 수 있도록 기금을 관리해 나갈 것입니다.
기타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지요.
뉴욕한인교회는 2021년 4월 18일, 설립 100주년을 맞이합니다. 1970년대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뉴욕한인교회의 사명이 되어 버린 교회 재건축이라는 목표를 100주년이 되는 해에 마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또한 16분의 선배 목사님들과 수많은 성도님의 눈물과 땀 그리고 헌신에 다시 한번 위로와 감사를 드리며, 미 동부 지역 최초의 한인교회이자 민족의 교회이며, 어머니 교회인 동시에 역사적인 교회로 계속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며 건강하게 쓰임 받기를 기도하며 노력하겠습니다.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 이 시기에 뉴욕한인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상에 진정한 희망이 되기를 소원하며,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격려를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의 가족 소개를 부탁합니다.
아내 김명래와 두 아들(폴과 죠수아) 그리고 어머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내 김명래는 현재 한인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전국연합회 총무로 섬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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