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세 순례길 마지막 여정은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 에보(Eveux)에 위치한 라투레트(La Tourette) 수도원이다. 라투레트를 발견한 것은 건축에 대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서였다. 자료를 찾아보니 유럽 현대 건축의 대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고, 2016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걸작이라고 하지 않는가? 수도원과 현대 건축의 조합이라니!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다시 호기심이 발동했다. 직접 가 봐야 해. 직접 보고, 걷고, 느껴야 해. 그렇게 해서 나는 리옹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수도원 사랑은 각별하다. 목회 시작하던 해부터 매년 버몬트 산속에 있는 베네딕틴 수도원을 정기적으로 찾아갔고, 수도사들의 사역에 깊이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 수도원에서 ‘침묵기도’와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개신교인으로 평생 살아온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영성 훈련이었고, 그래서 매우 흥미로웠다.
이형규 목사가 중세 순례길의 마지막 여정으로, 유럽 현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자 201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라투레트(La Tourette) 수도원을 찾았다. 사진 제공, 이형규 목사. 그 이후로 매년 1월, 일주일간 수도원에서 체류하며 영적 에너지를 축적하는 나만의 의례(ritual)를 만들었다. 수도원은 인터넷과 전화 연결이 안 되는 곳이어서 어쩔 수 없이 소셜미디어도 금식(!)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자연, 그리고 나 자신과 독대하는 ‘의도된 고독’(Solitude)을 훈련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2,000년의 시간 동안 전승된 가톨릭 영성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라르브레슬(L’Arbresle)이라는 기차역에 도착하여 수도원까지는 약 30분 정도 경사진 언덕을 걸어야 한다. 유럽에서는 걷는 것 자체가 여행이다. 걸어야 보이고 느껴진다. 천천히 걷다 보면 도시의 구조, 지역민들의 소박한 집들, 언덕 위 혹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마을의 전경이 마음의 필름에 고스란히 새겨지는 법!
‘라투레트’ 수도원은 1953년 설계를 시작해 3년이 지난 1956년에야 비로소 첫 삽을 뜰 수 있었고, 1960년 10월 19일에야 완공되었다.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오랫동안 모색해 온 교육, 예배, 그리고 공동체 생활을 가능케 하는 기념비적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50명의 신학생, 20명의 교수진, 10명의 도우미가 한 곳에 모여 살면서 공부와 기도, 봉사와 전도의 삶을 사는 터전이 마련되었다. 교육과정은 신학 4년, 철학 3년 등 총 7년의 과정이었다.
그런 종합 기능의 건물이 오늘날의 수도원 기능만 남게 된 것은 1968년 프랑스 “68혁명”의 영향으로 신학생 교육을 일반 대학으로 넘기도록 결정한 이후부터다.
1968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기 시작하여 1975년에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교육기관의 기능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라투레트(La Tourette) 수도원 전경. 사진 제공, 이형규 목사. 이 건물은 철근과 시멘트 재질을 활용하여 정사각형, 직사각형, 원통형, 삼각뿔 형태를 모티브로 건축되었다. 전체가 하나로 조화롭게 배치되지 않은 것이 의아했는데 금방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사방팔방에서 보는 각도에 따라 각각 다른 모양의 형태가 눈에 들어오도록 의도된 것이다. 건물 내부를 걸어 다녀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에서 보아도 전망(view)이 모두 다르다. 철저히 의도된, 하지만 예술적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걸작품이다.
사각, 원통, 삼각뿔 등 다양한 형태의 구조를 보면서 나는 바실리 칸딘스키나 파울 클레의 그림을 떠올렸다. 이 건축가는 파울 클레의 ‘형태의 유희’에서 영감을 얻은 게 아닐까? 클레와는 같은 스위스 출신이고 르코르뷔지에는 건축가로 명성을 날리기 전 화가이면서 조각가이자 작가였다. 동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로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 분명해, 혼자 상상하면서 즐거워했다.
20세기 대가 건축가의 생애 마지막 작품 속을 거닐면서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1,000년의 역사를 지닌 도미니코 수도회와 20세기 건축가의 만남 – 그 접촉점은 무엇일까?
가톨릭은 그림과 조각, 성물과 가구, 온갖 장식물과 향료로 본당을 채우는 전통을 오래 간직해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예술 작품과 공예품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자 하는 정성으로 그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수도원은 혁명적이라 할 만큼 그런 전통의 대척점에 서 있다. 그 모든 전통적 요소를 배제하고, 오로지 빛과 어두움, 그리고 현대적인 철제 십자가로 거대한 본당을 채웠다.
천장과 벽, 벽 사이의 공간을 채운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자연 채광이 주된 조명이고, 장식품으로는 기도회 때 제단 위에 켜지는 낮은 촛대 두 개가 전부이다. 한마디로 단순함(Simplicity), 최소주의(Minimalism), 공백감(Emptiness)으로 가톨릭의 오랜 전통을 대체한 것이다. 어떻게 이토록 파격적인 예배당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사실 르코르뷔지에는 종교생활에 회의적이었던 개신교인이었다. 그러다 1950년, 프랑스 도미니코회 사제이자 성미술(L'Art Sacré) 운동을 주도한 예술가 마리 알랭 쿠튀리에(Marie-Alain Couturier, 1897~1954) 신부의 제안으로 도미니코 수도회와 인연을 맺었다. 르코르뷔지에가 어떻게 도미니코 수도회 지도자들을 설득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그의 아방가르드적인 정신과 미학적 확신, 그리고 예술가적 집념의 결과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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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방문객인 건축가나 사진작가들과는 달리, 영성 훈련을 위해서 찾아온 이 개신교 목사는 하루에 세 번 있는 수도사들의 기도회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숙소와 본당, 식당으로 연결되는 긴 복도를 반복적으로 걸으면서 해결되지 않은 질문을 계속 던졌다. 그 ‘접촉점’은 무엇일까? 이 공간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아주 특별한 느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루에 예닐곱 번 긴 회랑을 걷는데 시간에 따라,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의 방향에 따라, 그리고 나의 시선에 따라 같은 공간이 주는 느낌이 다른 것이 아닌가? ‘익숙함’과 ‘새로움’이 교차하는 것이다. 경이롭고 신비했다. 건물 외부에서도 공간 내부에서도, 반복되는 듯 진화하는 느낌을 발산하는 이 건축물은 치명적으로 매력적이다.
이 독특한 경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순간 영감 한 조각이 머리를 툭 치고 지나갔다. 르코르뷔지에가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 Lectio Divina)에서 힌트를 얻은 게 아닐까? 성서를 읽는 ‘독자’가 아니라 성서 ‘본문’이 주체가 되어 말하도록 하는 독서법. 같은 본문으로부터 새로운 질문과 메시지를 찾아내려는 가톨릭 영성 훈련 말이다. 한마디로 ‘익숙함’과 ‘새로움’의 대화 말이다.
만약 내 가정이 맞는다면, 이 대가는 거룩한 독서에 숨어 있는 가톨릭 영성을 ‘공간’으로 재현해 낸 것이다. 그것을 나는 ‘신학의 공간화’(The Spatialization of theology) 혹은 ‘영성의 공간화’(The Spatialization of spirituality)라고 정의해 본다.
어쩌면 이 20세기 건축의 대가는, 중세 스콜라 신학의 산물인 ‘고딕 건축’에 대한 도전장으로 이렇게 파격적인 작품을 구현했을지도 모른다. 넓은 창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하는 많은 빛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중세와 달리, 적은 빛의 효율성과 어둠과의 대비(contrast)로 경외감을 극대화한 것이다. 권위적이고 장식적 건축을 거부하고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건축 철학이 신학적 통찰과 결합하여 탄생한 걸작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수도원 경험을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공간의 아름다움에 취한 시간이었다고!
아름다움에 취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건축적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다. 기도회 때마다 드리는 수도사들의 챈트(chant)와 대성전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울림 때문이다. 5초 이상의 공명이 흐르는 그 성당에는 악기나 정교한 화성으로 구성된 음악은 용납되기 어렵다. 리듬이 복잡하면 선율이 뒤엉켜 혼돈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예배당에서는 오직 단성성가(plain chant)가 최상의 선택이다.
여덟 명의 수도사들이 노래로 드리는 기도는 감히 천상의 소리라고 말하겠다. 통일성(unity)을 위해서 단선율을 고집한 중세 음악의 전통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영적, 신학적 의미에서 그렇다. 노래로 기도하는 수도사들의 아카펠라 챈트가 공간의 반향음과 더불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느낌은 수십 명의 합창단원과 관현악단이 뿜어내는 앙상블과는 전혀 다른 종류, 다른 차원의 예술이다.
아! 그곳은 단순성(simplicity)과 비움(emptiness)의 완벽한 모델이다. 완전한 비움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미학을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한 공간이다.
라투레트 본당에 앉아서 현대 교회의 예배를 생각해 보았다. 전통적인 가톨릭 성당과 크게 다르지 않게 오늘 우리 개신교도 현수막, 제단보, 장식품, 악기, 음향기기로 본당을 채우고 있다. ‘소리’(Sound)가 ‘침묵’(Silence)을 압도하는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예배에 주력하고 있다. 비약해서 말하면 ‘비움’보다 ‘채움’에 더 집중하는 예배를 지향하는 것 같다.
이런 시대에 라투레트 건물과 예배는 넌지시 이렇게 제안하는 것 같다.
“빈 공간에서 침묵해 보라고. 그 침묵 속에 들리는 하나님의 고요한 속삭임을 경험해 보라”고 말이다.
수도원 방문의 소중한 기억 중 하나는 젊은 수도사 도미니크와의 대담이다. 수도사이면서 파리의 한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젊은 사제로부터 도미니코 수도회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세상과 멀리 떨어져서 고독하게(monos= be alone) 수행하는 베네딕트 수도회(monastery)와는 달리, 도미니코 수도회는 세상 속에 들어가서 설교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고, 그래서 이들의 설교를 ‘convent’라고 명명한다는 것이다. Convent는 ‘Con’(together)과 ‘Vent’(coming)의 합성어로 도미니코 수도회의 공식 명칭은 ‘Order of Preachers’이다.
개인 소유가 금지되며, 수도회의 파송을 받아 순회해야 하고, 세상에 들어가 설교하고 자선 기부를 받는 일을 평생 해야 하는 독신 수도사의 삶이 과연 어떻게 다음 세대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질문을 던졌다. 라투레트와 도미니코 수도회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최근에 도미니코 수도회에 들어오는 젊은 형제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부름을 받은 소명에 따라 열심히 일할 뿐, 나머지는 하나님의 영역이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아!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사적인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역에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바친 인생을 살고 있는 저 수도사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가? 부끄러움과 반성, 감사와 새로운 다짐으로 수도원을 나섰다.
솔직하게 말한다. 수도원에서 나는 거룩한 속삭임을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두 개의 중요한 화두—‘비움’과 ‘세상 속으로’—를 얻었다. 그리고 이 두 주제가 교회의 미래를 염려하는 마음에 잔잔히 속삭이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다가왔다. 나의 비전 대신 하나님의 비전을 받아들이고, 이 세상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자취를 추적해 보라고. 그리고 교회의 미래는 ‘하나님의 몫’이라는 메시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또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회의와 절망 대신 하나님의 비전과 자취를 좇아 세상 속으로 한 발, 또 한 발 내디디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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