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목사는 미국 원주민들과 함께 사역하며 노예제도 폐지를 원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수십 년 후, 감리교회의 감독 중 한 사람은 노예 소유주였고, 목회자 중 한 사람은 미국 역사상 가장 잔혹한 원주민 대학살의 책임자 가운데 하나였다.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7월 1일 생방송으로 중계된 교단의 타운홀 모임에서 연합감리교회의 역사가들과 다른 지도자들은 교단의 복잡하고 때로는 인종차별과 억압에 관한 기록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목표는 이것이다. 연합감리교인들이 과거의 죄악에서 돌이켜, 인종차별이라는 죄악에 대한 교단 차원의 대처를 돕는 것이다.
이 타운홀 모임을 주관한 에린 호킨스는 연합감리교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적인 관점에서 우리 역사의 중요한 변화의 시점들에 교회가 어떻게 반응했었는지를 살펴보는 기회를 마련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언제 우리가 그 도전들에 제대로 대응했으며, 언제 미흡하게 대처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합감리교회 인종관계위원회 위원장인 호킨스는 코로나-19시기를 고려하여 다섯 지역에서 화상으로 열릴 타운홀 모임 준비를 주관했다. 이 모임을 위해 총감독회, 사회부, 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및 기타 연합감리교회 기관이 협력했다.
이번에 진행된 화상 타운홀 모임은 경찰의 손에 살해된 조지 플로이드, 브레온나 테일러 그리고 다른 흑인들의 죽음에 의해 유발된 교단 차원의 인종차별 극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교회 지도자들은 의도적으로 이 타운홀 모임을 미국인들이 평등을 강조한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독립기념일 직전에 하기로 정했다.
“조지 플로이드가 자신의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게 들리는데 우리가 ‘자유로운 나라’라고 노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고 타운홀 모임 개회사에서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디렉터인 게리 헨더슨 목사는 말했다. “브레온나 테일러가 살해되어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 추구’를 기념할 수 있는가?”
패널 토의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연합감리교회가 처음 시작된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종에 관한 떳떳하지 못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했다.
“흑인들은 처음에 감리교회의 확고한 노예제도 반대 입장에 자부심을 느끼고 거기에 매료되었지만, 그들은 너무도 빨리 감리교회의 타협과 공모에 눈물을 흘리고 고통을 경험해야 했다.”라고 패널 참가자의 한 사람인 윌리엄 바비 매클레인 목사는 말했다.
그는 워싱턴에 있는 연합감리교 신학교인 웨슬리신학교에서 설교 및 예배학을 가르치는 메리 엘리자베스 석좌 교수다. 그는 또한 흑인들의 평등을 위해 일해온 <교회 갱신을 위한 흑인 감리교인들>이라는 단체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매클레인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초기부터 감리교회의 지도자들이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블랙 해리” 호지어라는 설교자는 신생 미국 전역에 은혜의 복음을 평이한 말로 전파하는 데 일조한 사람이다.
그러나 심지어 그 초창기 시절에 마저 백인 우월주의는 흔적을 남겼다.
호지어는 자신의 백인 동료들이 집 안에서 자는 동안 마차나 헛간에서 잠을 자야 했다고 감리교회 역사보존위원회 총무인 알프레드 티 데이 3세 목사는 말했다.
남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북부에서도 백인이 우월하다는 전제가 있었다고 데이 교수는 언급했다. 그는 1780년 매사추세츠주의 애틀보로에서 발견된 묘비를 읽었는데, 거기에는 시저라는 이름을 가진 죽은 노예가 천국에서는 “흑인에서 백인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선언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그는 1939년에 중앙연회를 만들게 된 이유를 포함한 또 다른 차별의 예를 나열했다.
중앙연회는 인종 분리를 교회의 공식적인 정책으로 채택한 것으로, 이는 1968년까지 존속했다.
“우리 역사를 보면 자부심과 수치심을 느낀다.”라고 데이 교수는 말했다. “감리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예정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독특하고 차별 없는 메시지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새 찬송가 15장의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서 말하는 그 사랑은 편애하지 않는 사랑이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많은 백인이 처음 원주민들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감리교회로 이끌었던 그 핵심 신학을 삶으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점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클라호마 선교연회의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리사 델링거 목사는 특히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심지어 학살을 자행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의 신학을 사용했는지 이야기했다.
그녀는 미국을 “새 예루살렘”이라고 부르는 일반적인 표현이 많은 정착민으로 하여금 원주민들을 구약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사람들처럼 정복의 대상으로 보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186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기독교 선교사들은 조직적으로 많게는 십만 명에 달하는 원주민 자녀들을 가족에게서 멀리 떨어진 정부나 교회에서 운영하는 기숙학교로 보냈다. 이런 학교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자신들의 원주민 언어를 사용한다고 처벌을 받았으며, 소지품을 압수당하고, 어떤 경우에는 학대를 당하기도 했다. 그 학교 중 일부는 감리교 학교였다.
칙카소 부족에 속한 멕시코계 미국인인 델링거 목사는 “원주민들은 다양하다.”라고 말했다.
“원주민들에게 단일화되었던 경험은 결코 긍정적인 경험이 아니었고, 고향에서 쫓겨나 이 땅이 자신의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타향에서 나그네가 되었다고 느끼게 했다.”
과거의 죄를 성찰하는 시간과 더불어 패널 참가자들은 더 나은 미래를 어떻게 전개해 나갈 것인가에 대하여 시청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델링거와 맥클레인은 대다수가 백인인 교회에 다인종 교회를 만드는 일은 유색인종에게만 맡겨진 일이 아니라고 충고했다.
“우리가 인종 통합을 이야기할 때 내가 가진 가장 우려하는 것은 누가 그 일을 하도록 초대받았는가이다.” 델링거는 말을 이어갔다. “백인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 초점인 그 자리에 참석을 요청받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에모리대학교의 캔들러신학교에서 미국 종교사를 가르치는 앨리슨 콜리스 그린 교수는 인종차별 없는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설명했다.
“만약 교인의 상당수가 백인인 인종차별이 없는 교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면, 그곳은 백인이 아닌 사람들의 목소리를 위한 현실적인 공간이 만들어진 교회다.”라고 그린은 말했다.
그녀는 백인 교인들도 다른 백인 친구들, 특히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인종차별 근절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타운홀 모임은 교단이 주도한 사역인 <인종차별 근절: 자유를 향한 전진>의 가장 최근 행사다.
총감독회는 <인종차별 근절: 자유를 향한 전진> 사역을 미국 노예제도의 종식을 기념하는 6월 19일 준틴쓰(Juneteenth)에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채 지나기 전, 감독들과 다른 연합감리교인들은 망설임 없이 “통곡과 회개의 성찬 및 결단 예배”를 드렸다.
호킨스는 비록 타운홀 모임이 미국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 것이기는 하지만, 이 다국적 교단의 교회들이 자신들의 상황 속에서 편견과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는 일에 헌신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종관계위원회는 다음 타운홀 모임에서 세대 간 장벽을 뛰어넘는 운동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희망한다. 호킨스는 교단 기관 전반에 걸쳐 정의 옹호 사역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일반적인 행사를 계속해서 조직하고 자료를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총회 차원에서 기울인 이런 노력이 개체 교회 차원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라고 그녀는 연합감리교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왜냐하면, 개체 교회야말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맥클레인은 개인적이고 제도적인 인종차별은 여전히 교회가 씨름해야 할 문제들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인종차별을 버티고 있는 그 기둥들을 무너뜨리고 해체하기까지 우리는 역사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고통을 느끼는 쪽에 서 있게 될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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