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지평을 넓혀준 시칠리아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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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를 순례 중인 이형규 목사. 사진 제공, 이형규 목사.시칠리아를 순례 중인 이형규 목사. 사진 제공, 이형규 목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장 교육 프로그램은 역사의 현장을 다녀오는 것이다.

세미나를 통해 새로운 관점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도 좋지만, 과거의 흔적을 오랜 세월 간직해 온 유적지를 방문해 보는 것은 다른 어떤 것과 비교 불가능한 최고의 배움이다. 

역사가 잠든 현장의 생생한 느낌과 그 숨겨진 뒷이야기가 접속될 때 나는 심장이 요동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세상사에 대해 더 깊은 경외와 더 넓은 이해의 세계로 나를 끌고 들어간다.         

새로운 배움과 참신한 영감의 근원지로 시칠리아를 선택한 것은 전적으로 시오노 나나미 덕분이다. 오래전 읽었던 그녀의 책,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가 다시 기억의 표면으로 떠오른 까닭이다. 

시칠리아는 매우 두꺼운 역사를 가진 곳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비잔틴, 아랍, 노르만족, 스페인까지 수천 년 동안 아주 다양한 제국의 지배를 받은 지중해의 심장이다. 베네치아가 바다 위에 떠 있는 도시라면 시칠리아는 산 중턱에 매달린 도시로 구성된 섬이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13년 만에 얻은 귀한 안식월을 시칠리아에서 보내기로 결심했다.

몇 달 동안의 설렘과 기다림 끝에 오른 10여 일의 대장정. 첫 주에는 시칠리아 북동부 지역인 체팔루(Cefalù)와 타오르미나(Taormina) 그리고 시라쿠사(Siracusa)를 훑었고, 둘째 주는 아그리젠토(Agrigento)와 모디카(Modica) 그리고 시라쿠사(Siracusa) 쪽으로 도는 남쪽 해안을 택했다.

천년의 세월을 품은 좁은 산 중턱의 마을과 유서 깊은 교회당을 찾아가는 순례길은 만만치 않았다. 드넓은 대륙의 땅에서, 게다가 언제나 한적한 버몬트산 마을을 전세 내어 (!) 운전하면서 살고 있는 나는, 꼬불꼬불 좁은 길을 돌고 또 돌아 산 위로 올라가야 하는 시칠리아 여정은 가슴 쓸어내리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 후 좁은 골목길에 꽉 찬 차들 사이를 뚫고 전진해야 하는 마지막 관문은 또 얼마나 가슴 떨리던지···.

하지만 그런 고생 끝에 올라선 마을 위에서 내려다본 시칠리아는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안겼다. 아낌없이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 끝없이 푸른 지중해, 붓으로 그려놓은 듯 개성 넘치는 색색의 집들과 테라스들.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도시를, 산 중턱에 세울 수 있었는가? 신기하고 신비로웠다.

각각의 집들은 크기도 구조도 방향도 다 다른데 도시 전체의 그림은 마치 화가가 의도적으로 배치해 놓은 것처럼 조화롭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벽돌과 회반죽의 색깔마저 조금씩 다른데, 도시 전체는 하나의 색상처럼 보인다. 다양성과 통일성이 동시에 느껴지는 완벽한 조화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One in Christ)라고 한 구절이 생각난다.

‘하나’라는 말이 ‘동일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르지만 같이 어우러지다’라는 뜻이 맞다면, 시칠리아는 기독교의 사상이 잘 구현된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시칠리아의 주요 도시들이 왜 높은 산 중턱에 자리 잡았는지 알고 싶으면 역사책을 뒤져야 한다. 시칠리아는 로마 멸망 이후 중세 역사를 연 시발점이었다. 

로마 멸망 이후 비잔틴(동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칠리아는, 서기 652년부터 878년까지 시라쿠사가 함락되기까지 북아프리카에 사는 이슬람 해적인 사라센으로부터 끊임없이 습격, 약탈, 납치를 당했다.

사라센의 시칠리아 습격은 처음에는 단순한 해적질이었다. 약탈을 목적으로 파괴하고 노동이 가능한 남녀를 납치하여 알렉산드리아의 노예 시장에 팔아 이익을 남겼다. 노예 시장에 팔려 간 일부 기독교인들은 해적선의 노잡이가 되었고, 그들은 평생 노예로 살아야만 했다.

11세기 십자군 전쟁 때 여러 기사단이 잡혀간 기독교 노예를 찾아 해방시키는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이는 해적 침략과 기독교도 노예 역사가 거의 200년 이상 지속되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러므로, 9세기 신성로마제국과 비잔틴의 대립, 중세 시대 이슬람과 기독교 분쟁, 그리고 십자군 운동의 근원이 시칠리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칠리아가 왜 그렇게 다양한 민족의 지배를 당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섬을 둘러보는 동안 쉽게 찾아진다. 천혜의 지정학적 위치, 화산 지형과 최상의 기후 덕분에 풍성한 식재료와 과실, 곳곳에 위치한 항구 등 거주하기에도 무역하기에도 최고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지중해의 보석, 시칠리아를 지배한 제국들은 무역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문화와 종교를 심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시칠리아를 거쳐 간 여러 제국의 흔적, 즉 다양한 건축물과 교회들이 2500년 동안 그 자리를 굳게 지키고 서 있어 오늘날 전 세계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신전, 로마제국의 원형극장, 비잔틴 양식의 벽화와 교회, 이슬람의 모스크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리고 1693년 대지진 이후 대대적인 도시 재건 과정에서 세워진 바로크 양식의 교회들이 무겁고 두꺼운 역사의 문을 열고 관광객을 환대하고 있다. 한마디로, 유럽 문화와 문명사를 한곳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시칠리아다.

사진과 글로 습득한 역사는 쉽게 잊힌다. 하지만 직접 보고 경험한 역사는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그것이 내가 유럽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시칠리아섬을 차로 이동하면서 가장 경이로웠던 점은 산 정상이나 높은 벼랑 위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도시나 마을이다. 왜 저렇게 불편한 곳에 마을을 조성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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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자리해야 산 아래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지중해를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 건 순전히 낭만적인 여행자 관점일 뿐이다. 사실은 쉴 새 없이 쳐들어오는 해적의 약탈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자구책이었다.

거의 200년을 사라센에게 습격당한 시칠리아인들이 쾌적성과 편리함을 포기하고, 방어를 최대 목표로 삼은 도시 구조를 고안해 낸 것이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미로처럼 배치한 구조다. 집들 사이로 좁고 어두운 골목을 걷다 보면 갑자기 눈앞에 작은 빈터가 나타난다. 방금 지나온 골목과 그 빈 터 건너편으로 뚫려 있는 골목을 철문 같은 것으로 막아버리면, 쳐들어온 해적을 독 안에 든 쥐로 만들 수 있었다.

이런 도시 구조는, 암흑시대였던 중세, 그중에서도 가장 참혹했던 9세기를 버텨낸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이다. 권력은 있지만 무능하고 백성의 삶에 관심조차 없던 비잔틴제국의 통치하에서 기독교인들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이슬람 세력에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고안해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라센 해적과 관련된 유적이 또 하나 있다. 바닷가 근처 마을들은 하나같이 높은 절벽 위에 망루를 세웠다. 멀리까지 내다보며 해안가에 접근하는 해적을 감시하고 주민을 대피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런 참담하고 엄혹한 어둠의 시대를 견뎌야 했던 시칠리아 기독교도들에게 교회와 수도원은 영적 등대와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도시의 산 중턱에는 예외 없이 교회당이 서 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영적, 물리적 안식처였을 것이다. 납치되어 개종을 강요당하고 평생을 이교도의 노예로 살거나, 아니면 해적선 밑에서 노잡이로 살아야 하는 절박한 운명 앞에서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실제로 해적이 도시에 나타나면 주민들은 교회로 피신했고, 교회에 딸린 수도원들도 해적의 주요 타깃이 됨에 따라 점점 더 요새화했다.  

넘치는 관광객의 물결 속에서 나는, 2500년의 식민 역사를 견뎌낸 시칠리아인들의 고단한 역사를 생각해 보았다. 그런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선조들 덕분에 후손들이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그 유산은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팔레르모 대성당. 사진 제공, 이형규 목사.팔레르모 대성당. 사진 제공, 이형규 목사.

팔레르모(Palermo) 대성당의 주일예배와 모디카(Modica) 대성당의 저녁 기도가 떠오른다. 방문객들로 꽉 찬 예배당과 소수의 신도들만 공간을 채우는 외진 마을의 교회는 현대 유럽 교회의 자화상이다.

우리의 목회 현장인 미국 교회도 비슷하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빛과 공간을 잃어가고 있는가? 건물과 재산을 자랑하는 교회는 희망의 부재를 의미한다. 우리의 교회들은 과연 절박하고 갈급한 영혼들에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는가? 우리 모두에게 던져지는 질문이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시칠리아 여행을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유럽 최고의 매력적인 도시라고!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시칠리아 여행 핵심 팁을 묻는다면 나는 딱 세 가지만 언급하고 싶다. 절대로 큰 차를 렌트하지 말 것, 타이어를 꼼꼼히 점검한 후에 렌트할 것, Mr. Goo(구글맵)를 너무 의지하지 말 것!

똑똑한 구 씨도 유럽에서는 많이 헷갈리는 것이 확실하다. 걸어서만 올라갈 수 있는 좁은 계단 길을 계속 안내 방송해 대는 미스터 구씨 덕분에 오도 가도 못하고 갇힐 뻔한 경험이 있었다. 산길을 운전하다가 타이어가 터져버린 당황스러운 일도 겪었다. 쉽게 갈 수 있는 지름길 대신 구불구불 곡예 운전을 해야 하는 산길로 인도하는 바람에 일정에 차질을 빚은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감사하다. 깊은 산속에서 순박한 마을 청년 조슈아(Joshua)의 도움을 받았고, 견인 트럭을 기다리는 동안 시칠리아 밤하늘을 총총히 밝힌 무수한 별 무리도 볼 수 있었다. 터진 타이어 덕분에, 항공권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어 동행한 친구가 약속된 날짜에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을 생생하게 체험한 사건이다. 

2000년 역사의 흔적을 밟아보는 순례길은 내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고, 하나님의 말씀이 몸으로 체험된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벌써 또 다른 순례길 떠날 것을 꿈꾸고 있다.     

아! 다시 그리워진다. 그 지중해의 찬란한 햇빛과 이국의 향기, 그리고 온 입에 가득 찬 시칠리아의 레몬즙이···

이형규 목사는 버몬트주 존스베리에 소재한 그레이스 연합감리교회를 섬기고 있는 연합감리교회의 장로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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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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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k Your Pastor 3: 창세기 인물들은 왜 그토록 오래 살았을까?

도은배 목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몸소 보여주신 삶은 단순히 무병장수의 인생이 아닙니다. 종말론적인 삶입니다. 하루하루를 생의 마지막으로 알고 살아가는 삶입니다.”라고 말한다.
개체교회
영화 <기생충> 포스터의 일부.

영화 <기생충>과 냄새나는 예수님

현혜원 목사는 냄새 나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나와 다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이 주신 계명이라고 말하고, 누추하고 고릿한 냄새를 풍기는, 나와 달라 보이는 사람이 예수님일 수 있다며, 그 예수님(?)을 넉넉한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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