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과 냄새나는 예수님

(편집자 주: 이 글은 연합감리교뉴스의 <영화와 설교> 시리즈로, 영화 <기생충>에 대한 현혜원 목사의 글입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현혜원 목사가 시카고 제일 ”템플” 연합감리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현혜원 목사.현혜원 목사가 시카고 제일 ”템플” 연합감리교회에서 예배 중 기도하고 있다. 사진 제공, 현혜원 목사. 

제가 섬기는 교회에는 제가 참 좋아하는 교인이 한 분 계십니다. 그녀는 참 특별합니다. 몇 해 전 중국에서 이민을 와서 시카고에 도착한 첫 주에 무턱대고 교회에 찾아오셨어요. 하나님에 대해 알고 싶다면서요. 헌법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다고 하지만 종교 활동이 크게 제약된 나라에서 나고 자란 그분에게 유일신이라는 개념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지만, 그녀는 하나님이 몹시도 갈급한 영혼이었습니다. 제가 사드린 중국어 성경을 읽으며 성경 공부와 예배에 참석하고, 열심히 기도하며, 하루가 다르게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셨습니다. 지금은 주일 예배 안내 위원도 하시고 친교 준비도 돕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자 센터에서 주말마다 봉사도 하십니다.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일 뿐만 아니라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항상 환하게 웃으며 삶을 긍정할 줄 아는, 정말 멋진 분이세요.

그런 그녀가 얼마 전 인상을 찌푸린 채 절 찾아오셨습니다. 자기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하면서요.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교회에 노숙자들 좀 안 오게 해줘”였습니다. 내심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가 노숙자가 교회 문턱을 넘지 않게 해달라고 할 줄은 몰랐거든요. 노숙자 센터에서 봉사하며 노숙자에게 옷을 나누어주거나 따뜻한 차를 대접하는 분이고, 주말이면 누구보다 더 일찍 노숙자 센터에 도착하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분인데, 그런 분이 교회에 노숙자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할 줄이야.

이유가 무엇이냐고 여쭤보았어요. 그분이 말한 이유는, ‘냄새와 소리’였습니다. 노숙자들이 여러 개의 비닐봉지에 소지품을 넣은 채 예배 시간에 들어오는데 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거슬리고, 무엇보다 냄새가 위화감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노숙자들이 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는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습니다. 미국의 많은 대도시가 그렇듯 시카고도 노숙자들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도시 모든 모퉁이마다 노숙자가 있고, 지금은 남쪽 국경에서 넘어온 이민자까지 넘쳐납니다. 추운 겨울이나 요즘처럼 날씨가 더울 때면 많은 노숙자가 예배당으로 오십니다. 예배를 드리러 오는 분도 있지만 대개는 견딜 수 없는 더위, 혹은 추위를 피해 지친 몸을 잠시라도 쉬고 싶어서 옵니다. 그들에게 예배당은 예배 시간만이라도 잠을 청하거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인 것이죠.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모든 이에게 열려 있습니다. 예전엔 아예 예배당을 밤새 열어 노숙자가 쉬고 갈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짐이 너무 많은 분은 로비에 짐을 맡기고 예배에 참석하도록 편의를 봐 드리는 정도입니다. 예배 후 친교실에 준비된 과자나 설탕 따위를 모두 쓸어 가더라도 그냥 두곤 합니다. 우리는 남은 과자를 다시 내놓으면 되지만 그분들에게는 다음 한 주를 살아갈 일용할 양식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노숙자 중 아예 교회 멤버가 되어 정기적으로 예배에 오시고 성경 공부에 참석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하이 프로필 변호사나 기업 CEO가 노숙자와 함께 앉아 성경 공부를 하고 친교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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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회는 이러한 사랑의 마음을, 누구든 환대하는 태도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이 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이 넉넉한 마음을 가진 교회도 여전히 냄새와 같이 ‘일차적이고 감각적인 문제’에서는 멈칫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씁쓸했습니다. 노숙자 센터에서 나는 소리와 냄새는 괜찮지만, 같은 소리와 냄새가 하나님의 예배당에는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 아팠습니다.

2019년 개봉해 칸과 아카데미 등 메이저 영화제를 휩쓸며 화제에 오른, 한국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도 냄새는 ‘너와 나’를 구별하는 아주 중요한 기제로 활용됩니다. 지하 단칸방에 사는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은 속임수를 써서 박 사장(이선균 분)의 집에 모두 취업합니다. 기택은 박 사장의 운전기사로, 아내 충숙은 입주 가정부로, 두 자녀인 기정과 기우는 박 사장 두 자녀의 가정교사로 말이죠. 넷은 가족이지만 박 사장 가족은 그들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우연히 함께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믿을 뿐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마치 기생충처럼 박 사장의 거대한 저택에 ‘기생’하게 됩니다. 그래봤자 그들이 얻을 수 있는 혜택이라고는 소소한 것들입니다. 주인 내외가 눈치채지 못할 범위에서 냉장고의 비싼 음식을 털어먹거나, 술을 마시는 정도랄까요.

그런데 박 사장 가족의 후각이 너무 발달했습니다. 자꾸만 서로 연관이 없어야 하는 이 네 사람에게서 같은 냄새를 맡습니다. 박 사장의 막내 아들 다송이는 자기 미술 선생님 제시카가 운전기사 기택과 같은 냄새가 난다고 하지를 않나, 아내 연교는 기택의 냄새에 고개를 돌리며 차창을 열어 환기하거나, 박 사장은 기택에게서 나는 꿉꿉한 냄새를 ‘전철 타는 분들 특유의 냄새’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혹시나 들킬까 염려되어 다른 섬유유연제나 샴푸를 써야겠다는 기택의 말에 딸 기정은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 줍니다. “그건 그냥 지하방 냄새야!” 산 위의 그림 같은 저택에 사는 이들은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을 지하방 특유의 냄새. 냄새는 박 사장의 가족과 기택의 가족 사이에 놓인 거대한 벽, 계층의 간극을 보여주는 그것입니다.

박 사장은 자신의 고용인들이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와 나는 같은 인간이지만 그래도 네가 넘지 않아야 하는 선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혹은 너와 내가 사는 세상은 선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박 사장은 기택이 몰래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아내 연교에게 “그(기택)는 절대 선은 넘지 않아. 다만 냄새가 선을 넘지···”라고 말합니다. 운전기사로서 기택은 항상 선을 지키는 편이지만 그의 냄새만은 박 사장이 정해놓은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 그의 공간으로 침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몰래 듣고 있던 기택은 미처 모르고 있던 자신에게 밴 ‘가난’의 냄새를 인지하게 됩니다. 가난의 냄새를 깨달은 순간을 연기한 송강호의 표정은 KO패를 당한 권투선수 같습니다. 외롭고, 처참합니다.

오래전이지만 제가 미국으로 유학한 해 동부에 소재한 한 신학교에서 한인 신입생들에게 나누어준 오리엔테이션 자료에 쓰인 문구가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김치 냄새 때문이니 수업에 올 때는 반드시 데오도란트를 사용하라.” 그 학교에 입학한 제 친구가 그 오리엔테이션 자료를 보여주며 냄새로 차별한다고 이야기했지요. 같이 입학한 미국 학생들에게는 데오도란트 사용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미국에 도착한 저희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의기소침한데 더욱 마음이 쪼그라들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마치 “너와 나는 달라. 냄새로라도 선을 넘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이웃이 냄새가 나거나 너와 다를 때는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 같은 이런저런 조건은 붙이지 않으셨습니다. 간명하게 “네 이웃을 네 몸을 사랑하듯 사랑하라!”고만 하셨을 뿐입니다. 그리고 2000년 전 예수님이 지금 우리 교회에 오신다면 예수님도 사실 먼지와 땀 냄새가 폴폴 날 것 같습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교인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교인이기 전에 친구로 생각하는 특별한 사람이었기에 저는 진솔하게 한 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2000년 전 예수께서 지금 우리 교회에 오신다면 예수님은 어떤 냄새를 풍기실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고약하고 구린 냄새가 나겠지!” 하며 그녀가 웃습니다. 그 고릿한 예수님과 함께 예배드릴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당연하지”라고 하더군요. 그녀가 마침내 제 의도를 이해했습니다. 솔직히 냄새가 힘들고, 간식을 몽땅 쓸어가는 모습이 괘씸하기는 하지만 좀 더 참아보겠다고 하셨어요. 저를 포함해 교회 측에서도 그 문제를 조금 더 신경 쓰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여전히 우리 교회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냄새 나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나와 다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이 주신 계명입니다. 교회에 누추하고 고릿한 냄새를 풍기는, 나와 다른 사람이 오더라도 만찬에 초대받을 수 있기를, 다 같이 환영할 수 있기를, 조금 더 넉넉한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기를, 그런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이메일 tkim@umnews.org  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받아 보기를 원하시면, 무료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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