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아이들 앞에서 함부로 실망한 표정 짓지 마세요~”
한 10여 년 전쯤 존경하는 한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하신 말씀인데 아직도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부모들이 인내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에 아이들을 향해 실망의 눈빛을 보내면서 마치 들으라는 듯이 깊은 한숨을 쉬어 보였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는 부모님의 그 실망스런 표정을 통해 아이들이 충격을 받고 정신 좀 차렸으면 하는 바램이었겠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날 보는 저 실망스런 눈빛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말 거야!” 라고 결심이라도 한 듯이 삐뚤어지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실망의 눈빛과 한 숨만큼 파괴력 있는 무기도 없습니다.
사람은 대우받은 만큼의 사람이 되려고 애쓰며 삽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인정해 주고 대우해 주는 만큼의 사람이 되려고 사는 것이 공통된 인생의 다이나믹이며 사람 사는 맛(행복)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말도 안 되는 대우를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독생자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상상치도 못할 엄청난 대우를 해주셨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그 만큼의 대우를 받을 만한 존재들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치 일부러 ‘최악의 상황(죄인)’이었을 때를 ‘최고의 가치(그리스도의 희생)’로 대우해 주시기로 작정하신 것 같습니다.
자격없는 우리가 하나님께 ‘하나님의 자녀’로서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살려고 주님 안에서 마음을 다해 힘을 다해 살아갑니다. 그것이 기쁨의 삶이고 행복의 삶이고 하나님 나라로의 여정입니다.
이제 오늘 우리 주변에 놓여진 상황들과 맡겨주신 사람들을 바라봅시다. 그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이 변화가 목적이라면 우리는 하나님과 같은 지혜로운 방법을 써야 합니다. 실망의 눈초리와 절망의 한 숨들 보다는 힘들더라도 가능성과 소망의 눈빛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누구나 그 눈빛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으로부터 그 말도 안 되는 따뜻한 눈빛의 대우를 받아 본 사람이라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눈빛은 또한 우리의 눈빛을 변화시켜 가정과 나라와 세상을 또한 변화시킬 것입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이웃에게 함부로 실망의 눈빛을 보이지 맙시다. 예수님은 그것이 ‘살인죄’에 해당하는 것이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한숨 짓지 맙시다. 우리를 봐 주신 주님의 눈빛으로 사람들을 대해야 합니다. 그것이 모두가 함께 사는 길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