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단한 성찬으로의 부름

 


주요 포인트

  • 초기 감리교인들은 예배 때마다 성만찬에 참예하는 것을 중요한 관행으로 여겼다.
  • 3세기가 지난 지금, 많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살아 임재하심을 우리 안에 느낄 수 있는 성만찬의 능력을 잊어버리고, 성만찬을 한 달에 한 번 행하는 것으로 강등시켰다.
  • 교단 분열의 시기에, 부단한 성만찬은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며 치유로 이끌어 줄 수 있다.

Chase Crickenberger. Photo courtesy of the author사진 제공, 크리큰버거 목사.

우리 교단이 기초를 세울 시점에 성만찬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초기 감리교 운동의 모든 표준은 개인이 가능한 한 자주 성찬을 실천하는 쪽으로 설정되었고, 이 주님의 만찬은 요한과 찰스 웨슬리 운동의 구심점이었다.

웨슬리 형제는 당시 성례전을 존중하지 않았던 캘빈주의적인 영국 국교회에 대해 다양하고, 주목할 만한 방법으로 대응했다. 존 웨슬리는 이것을 영국 국교회가 가진 영적인 안일함의 징후이자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대다수의 캘빈주의자가 성찬식을 단순한 상징주의로 축소시켰던 반면에, 요한과 찰스는 가능한 한 자주 성만찬을 받으면 영혼 소생의 능력을 경험하고, 믿지 않는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앞으로 개종시킬 수 있다고 영국 남부 지역의 시골 마을을 누비며 담대히 외쳤다. 가능한 한 자주 성찬식을 받는 것은 초기 감리교인들에게 선택이(option) 아닌 하나님께 대한 의무(duty)였다.

불가피한 분열에 직면한 교단 그리고 그 교단의 벼랑 끝자락에 서 있는 젊은 목회자로서 필자는 주님의 식탁에서 벌어지는 성만찬의 거룩한 신비(the Holy Mystery)를 다시 한번 살펴볼 것을 요청한다. 또한 부단한 성찬식을 의무로 다시 되돌리는 것이 어떻게 두 간격 사이에 새로운 다리를 놓을 수 있으며, 우리의 다음 총회(General Conference)가 언제 열리게 되든 그 결과로 인해 받을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지도 검토해볼 것을 요청한다.

요한 웨슬리는 자신의 설교 “꾸준한 성찬식의 의무(The Duty of Constant Communion)”에 이렇게 기록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성찬식을 자주 거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혼 구원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며, 더욱이 놀라운 일은 이것이 흔히 일어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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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설교에서 웨슬리는 오늘날 우리가 목회자들이나 평신도들에게서 자주 듣는 “우리가 만약 성찬식을 매 주일 시행한다면, 그 반복 때문에 오히려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와 같은 가장 흔한 비판을 예견했다.

그리고 그 비판에 대해 웨슬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명령에 따를 것을 상기시켰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너희가 할 수 있는 한 자주(as often as you can)”가 아닌 “너희가 (예배에) 참여할 때마다(as often as you do it)” 그리고 우리 자신의 영적인 만족(fulfillment)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의 거룩함을 추구하려는 목적을 위해 성찬식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요한과 찰스 웨슬리는 사회적 성화(social Holiness)와 개인적 성화(personal holiness)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부단하게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힘입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수단은 성찬식이며, 따라서 성찬식에 지속적으로 참예해야 한다고 여겼다. 특히 두 형제는 규칙적으로(with regularity) 성찬을 실천하는 것이 아주 강력한 영적인 힘을 갖는다고 확신했다. 비록 비신앙인이 성찬식의 중요한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실천을 통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만나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될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하게 할 것이 있다. 나는 초기 감리교 운동을 완전히 복구하자거나 요한과 찰스 웨슬리의 모든 관행을(all of the practices) 복원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초기 산업혁명으로부터 거의 300여 년 전 그들이 살던 시대에 기록된 것들이 모두 우리 시대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웨슬리의 설교 “부단한 성찬식의 의무(The Duty of Constant Communion)”의 내용은 마치 한 달에 한 번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이 표준화되어 버린 오늘날의 교회를 위해 쓰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우리가 성찬과 관련한 현대 연합감리교회의 신학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우리는 성찬식(Holy Communion)을 성례전(Sacrament)으로 받아들이고, “열린 식탁(Open Table)”을 용감하게 실천하며 헌신하는 교단 중의 하나이다. 주간 모임에 참석했을 때, 감사례(Eucharist)에 참여하는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회 구성원들이 외면당하던 시절에 비하면, 요한과 찰스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은 열린 식탁을 통해 얼마나 심오한 진화를 이루어 냈는가?

현대 연합감리교 성례 신학을 보면, 우리는 초기 감리교 운동의 원시적인 형태로부터 출발해, 웨슬리의 심오한 선행적 은총을 방지해주시는 은혜로까지 이해할 만큼 절대적인 수준에 이를 만큼 발전했다. 단지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과 감사례(Eucharist)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성찬을 뛰어너머 모든 사람을 성찬으로 초대한 것이다.

현대의 성례전 신학은 요한과 찰스는 담대하게 당시의 계급차별주의자들과 캘빈주의적인 영국 사회와 매우 대담하게 선포했던 그리스도의 육체적 현존(real physical presence of Christ)과 보편적 속죄의 선행적 은총(universally atoning prevenient grace)을 제도화한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대다수 교회 회중 속에서 감사례는 여전히 매달 첫 주일에 실천되는 것으로 강등되었고, 한 달 중 그 주의 예배 참석 인원이 최저치인 경우가 많다. 나는 이것이 나를 포함한 목회자들이 성찬식의 중요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감리교인들은 어떤 사람들의 인간성이 사악한지(sinful) 아닌지에 대해 논쟁하느라 너무 분주해, 우리의 믿음, 교단, 세례식, 인종, 민족성, 성별 그리고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공동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실천에 마음을 기울여야 함을 망각하고 있다. 주님의 식탁이 주님의 것이 듯이 교회도 우리의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것이다.

불가피한 상황으로 여기며, 만일 우리가 마치 우리의 것이었던 적이 없었던 교단과 교회 그리고 설교단에서 누가 배제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려 했던 48년의 노력을 끝내고 치유를 원한다면, 우리는 성찬식을 월례 행사로 치르는 죄(the sin of monthly communion)를 중단하고, 주님의 식탁에 오직 “거룩한 신비(the Holy Mystery)”로만 이룰 수 있는 “일치(the unity)”를 추구해야 한다.

요한 웨슬리가 그의 설교에서 상기 시켜 준 “너희가 할 수 있을 때마다(as often as you can)”가 아닌 “너희가 이 예식을 행할 때마다(to do this as often as you do it)”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명령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날마다든 매주든과 상관없이 부단한 성찬식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선택 사항이 아니다. 분열에 직면한 우리에게 있어 부단한 성찬식은 전통주의자나 진보주의자 스펙트럼 그 어느 쪽에 속하는가와는 상관없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우리의 신학적 공동체적 영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결국 한 달에 한 번 교단 차원에서 시행하는 성찬식은 은총이 무엇인지를 점점 잊어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지속적으로 제한해가는 것이다.

크리큰버거 목사는 테네시주 낙스빌에 있는 파운틴시티 연합감리교회의 제자사역부 담당 목사이며, 홀스톤 연회의 준회원 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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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우 목사는 자신의 50년의 목회와 신앙 여정을 고백하며, 신앙의 어버이와 같은 연합감리교회를 통해 받은 사랑이 크기에 성소수자 이슈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연합감리교인으로 남겠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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