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하나님을 고백해야 할까요?
우리가 사용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반영하고, 관점을 형성해줍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도와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고백하는 여러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줍니다.
초기 성서 기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표현하기 위해, 인간의 경험에서 온 ‘목자, 재판관, 바위, 빛, 전사, 요새 등’의 다양한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이사야를 보면, 하나님을 해산하는 여인(이사야 42:14)과 출산하는 여인(이사야 46 : 3-4) 그리고 사랑의 어머니(이사야 49:15)의 이미지로 설명하고 있으며, 누가는 잃은 동전을 찾은 여인으로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누가복음 15 : 8-10).
연합감리교인들은 "하나님을 남성적/여성적 은유를 포함한 다양한 성서적 이미지”로 고백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의 삶 가운데 중요한 입문의 순간인 세례와 안수라는 두 중요한 예식에서 연합감리교인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와 우리의 세계적인 교단에 이 기준은 서로의 세례와 안수를 인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 외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성서와 기독교 전통 전반에 나타난 다양한 이름으로 하나님을 부르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언어가 하나님을 묘사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언어로는 결코 하나님을 묘사하거나 설명할 수 없으며,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속성을 암시할 뿐, 하나님의 무한하고 거룩한 신비를 완전히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하나님을 고백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연합감리교 목사이자 작가인 에프 벨톤 조이너는 “모세가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 3:13)라고 질문하자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 : 14)”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이것은 영원한 나의 이름이다(출 3 : 13-15)’라고 응답하신 것이 그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이 기사는 연합감리교 공보부의 사역인 Ask the UMC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이메일 (tkim@umnews.org) 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더 읽기 원하시면,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