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 하신 깊은 곳

누가복음 5:1-11

주의 은총이 우리에게 임하니 우리는 꿈을 꾸는 자가 됩니다.

주의 나라에 대한 비전을 들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 만방에 확장하여야 하겠다는 결단으로 생을 드리고 헌신합니다.

주님이 초대하시는 놀랍고 거룩한 자리에 동참하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기도로 날마다 그분께 가까이 갑니다.

한인목회강화협의회(Korean Ministry Plan) 연합감리교회가 미국 안에 흩어져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에게 열어준 선교의 춤마당입니다. 물론 연합감리교회 총회라는 기구도 단순한 정체성의 기구가 아닙니다. 나름 세계교회라는 정체성과 지구촌 전체를 어우르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천이백만 교인이라고 이름하지만,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유럽, 북아메리카를 통틀어서 존재하는 놀라운 교회입니다.

그러니 우리 연합감리교회는 얼마나 다양한 언어와 인종들, 종교적인 색채와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총집합한 하나님의 실험 공동체이겠습니까?

저는 교단의 세계선교부의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곳곳에서 우주적으로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눈으로 지켜보는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재난 현장에서도, 새로운 선교의 서광이 열리는 인류의 현장에서도 주님께 날마다 영광을 돌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가 된다는 신비를, 하나님의 놀라우신 기적과 능력 외에 어떤 언어로 대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과 역사와 삶의 배경이 다른 백성들로 흩어 놓으신 바벨탑의 사건은, 배부른 인간들이 서로를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고 서로 자신이 우월하다고 키재기를 하던 인간의 교만과, 스스로 모든 것을 지배하여 보겠다고 하던 오만과 인간중심의 지배적인 논리를 더이상 하나님이 보고 두실 없었던 신화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언과 언어를 갖게 하시고,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소통의 단절을 통하여, 사람들의 교만을 치시고 흩어놓으셨습니다.

그런 중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고민하셨을 것입니다.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서로 반목하고, 서로 원수시하는 인간의 세계를 참담하게 여기신 하나님의 아픔을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구원의 실천은, 바벨탑의 신화를 강력하게 청산하시고, 오순절 다락방에서 펜테코스탈한 통합의 혁명을 이루신 것을 우리는 압니다. 홀연히 불어오는 바람처럼 성령이 임하셔서 우리를 서로 이해하는 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우리에게 기적처럼 서로서로 이해할 있는 방언과 해석의 지혜를 허락하시고, 하나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살라고 허락하신 놀라운 공동체가 바로 초대교회, 사도행전 교회입니다.

저는 바벨탑의 신화에서 오순절 성령의 사건으로, 은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오늘 교회의 모습이며 크리스 천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상당히 많은 교회는, 아직도 바벨탑의 신화에 포로가 되어서 자기들끼리만의 고독한 싸움, 신앙이 고착화되고, 믿음이 운동이 아니라 조직을 관리하는 일에 치우치고, 가진 사람이 많은 힘을 가지겠다고 갈증을 표현하는, 아주 원시적인 공동체로 남아있는 경우를 봅니다.

저는 아직 바벨탑에서 마가의 다락방으로 옮겨오지 못한 교회들이 세상에 많이 있다고 비판적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연합감리교회는 바벨탑의 신화를 거절하고, 마가의 다락방 오순절의 소통과 나눔의 언어, 서로 소유물을 나누고 자신을 공동체에 아무런 조건 없이 드리는 헌신의 사역을 이루어가는 꿈의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시아와 미국이 벽을 허물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강렬한 꿈을 배우고 있는 교회이기에 저는 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인가 하는 생각에 싱글벙글 웃으면서 맡겨진 사역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족들과 문화와 종교적인 성향들이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초현대적인 꿈을, 오순절 일치와 화해와 평화의 꿈을 이루어 가려는 미래 세대 교회의 동력을, 우리는 한목협의 모임을 통하여 다시 확인합니다.

예수님은 깊은 물에 나가서 그물을 그곳에 던지라,” (Put out into deep water and let your nets down.) 그리고 두려워 하지 마라, 지금부터 내가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련다” (Dont be afraid from now on you will fish for people) 하십니다.

이번 주제는 마침 제가 섬기는 위스콘신 연회가 주도하는 Launch Out Campaign 같아서 다시 한번 주님이 어디로 우리를 부르시는지를 묻고자 합니다.

Bishop-hee-soo-jung at Korean Ministry Plan 2018 at San Diego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CA. Photo by Thomas Kim
Photo by Thomas Kim (UMNS)

위스콘신 연회는 가난한 현실에서 갈등하는 사람들과 강력한 구조적 연대를 위해서 2 백만불을 모으고,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위해서 3백만 , 더욱 초대교회적인 교회로 모든 교회의 제자 시스템의 혁신을 위해서 2백만 불을 모으는 모금을 시작하였습니다.

교단이 동성애 논의로 흩어질 , 저는 캠페인을 통하여 하나 교회를 이끌어 보라고 주신 선물로 맞이하고 총력을 다하여 캠페인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깊은 물로 초대하십니다.

예수를 통하여 세상을 바꾸는 꿈은 바로 깊은 물로 나가는 결단과 환희라고 여깁니다. 바로 자리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첫째, 다시 하나님 나라의 혁명적인 지평을 깊이 성찰하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일꾼으로 부르시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 때문에, 제가 변화하였습니다.

예수 때문에, 날마다 이웃, 아픈 이웃을 생각하고 기도합니다.

예수 때문에, 날마다 자신이 희생하고 자신을 비우는 일이 무엇인지를 구합니다.

예수 때문에, 어디에 잡히고 구속되기보다는 해방되고 자유하고 나가 거대한 자유를 살아가는 현실을 순간순간마다 현실화합니다.

예수 때문에, 이상 자신 중심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중심의 꿈을 갖게 하셨습니다.

예수 때문에, 순간마다 찾아오는 두려움과 공포, 어려운 고난과 어둠을 강하게 물리치고 정의와 대의를 위해서 각오하고 각오하는 영적인 전투를 해내는 행복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예수 때문에, 직은 골방에서 기도하지만, 세상, 우주를 바라보는 비전너리 visionary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 때문에, 천한 사람을 아버지로 여기고, 불쌍한 사람을 자매로 여기고, 아픔 당하는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는 자비의 마음을 크게 갖도록 성령께서 사로잡으셨습니다.

예수 때문에, 변한 인간, 변한 공동체, 혁혁한 사랑을 감히 실천하면서 주머니를 비우는 사랑의 실천이 바로 존재의 호흡이 것을 감히 자랑하지 않고 어찌하겠습니까.

바로 그런 존재의 변화에 대하여 감동과 감격과 기쁨을 고백하는 우리 자신이 되는 , 바로 거기 깊은 자리, 거기 깊은 바다, 거기 깊은 영의 나라라고 말할 있습니다.

이제 무엇을 하든지 기쁨으로 합시다. 이제 무엇을 꿈꾸든지 열정으로 합시다. 이제 무엇을 향해 가든지 자기를 비우고 부인하는 무아의 실천으로 합시다. 이제 무엇을 하든지 남을 높이고 자신을 치고 낮추는 겸허의 혁신으로 합시다.

이런 영의 변화가 바로 깊은 곳으로 가라는 주님의 초대라고 여깁니다. 이런 영의 혁신이 여러분의 고백이기를 바랍니다.

둘째, 깊은 곳에 닻을 내리라는 주님의 명령은 명령입니다. 권고입니다.

얕은 물가에서 주저하지 말고 깊은 곳으로 가서 첨벙, 존재를 빠뜨리라는 초대입니다.

주님 섬기는 일이 본업이고 다른 모든 일을 부업이라고, 시무언 이용도 목사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옳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섬기고 그분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모든 것이 바로 본업이 되는 그런 결단으로 나라에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한인목회는 이제 Nexus Generation 향하여 저들과 파트너가 되는 일을 커다란 기쁨으로 여기고 비전을 나누어 왔습니다. 미래 세대를 교회의 일꾼이며 미래 세대를 지도자로 존중하면서 깊은 곳을 모색하는 일이 바로 주님이 일깨운 선교의 방향이고 이미 일을 위해서 한목협은 많은 관심과 초점을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미래 세대의 역동적인 꿈이 이제 세대 교회를 이끌어 때가 되었습니다.

한번 보세요. 미래 차세대의 꿈은 Kingdom dream이요, Cross-cultural, Cross-generational racial, Multi-racial, Multiple face community입니다.

다시 저들을 바라보세요. Pentecostal community, 바로 통합적인 공동체의 꿈이 바로 저들의 현실입니다.

한번 보세요. 저는 어떤 가지 단일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아주 다양한 얼굴, 아주 다양한 가능성, 아주 다양한 갈등, 어떤 때는 self-less deconstructive community 있다고 여깁니다.

여기 이제 깊은 꿈을 가지고 한목협이 미래 지향적인 기도와 준비를 과감하게 해나가야 같습니다.

깊은 곳은 Embrace the strangers, embrace different neighbors, embrace all Gods people입니다. (낯선 사람을 포용하고, 나와 다른 이웃을 포용하고, 하나님의 모든 사람을 포용하라는 것입니다. 편집자 )

선입견을 가지고는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없습니다. 어떤 규정화된 측정과 편견으로는 이웃을 오히려 monster(괴물) 여기고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요사이 읽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신학자, Richard Kearney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용감할 만큼 다른 이웃, 별스러운 이웃,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이웃, 고집스러운 이웃, 나와는 다른 이웃, 기준에 맞지 않는 이웃, 냄새나는 이웃, 무서운 이웃을, 하나님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당연한 사랑으로 맞을 , 교회는 권위 있는 교회가 된다고 말합니다.

어제 위스콘신에서는 Bishops Cup Soccer game 있었습니다.

거기에 참석한 팀들은 콩고, 미얀마, 히스패닉, , 라오스, 캐냐 등에서 이민자들이 새로 세운 개척 교회 공동체의 젊은 교인들이었습니다. 여기에 자매 연회인 한국의 동부연회에서 20명의 젊은 목사들이 축구단을 만들어서 왔습니다.

서로 부딪치면서 하루종일 축구를 하던 우리는, 모두 서로가 얼마나 다른 지역과 나라에서 왔고, 함께 우정을 나누는 그렇게 신나고 좋은지를 경험하였습니다. 한국에서 30-40대의 목사들은 콩고와 시에라리온에서 10 후반과 20 청년들과 뛰면서 얼싸안고, 쥐가 나서 넘어지면 달려가서 풀어주는 놀라운 합류를 경험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서 천국을 보았습니다.

목사는 강원도 산골에서 목회하지만, 오늘 처음 다른 대륙에서 검은 사나이와 천국을 꿈꾸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저는 동성애 문제로 씨름하는 교회를 보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 모두 서로서로 다른 저들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저들을 하나님이 인생에 선물한 이웃으로 여기고, 천국을 꿈꾸게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의 나라, 내가 재판장이 되지 않고, 내가 심판자가 되지 않고, 하나님이 꾸려 놓은 축구팀을 맞이하여, 한판 난장판을 벌이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있습니다.

한인 교회들의 생각이 서로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이야기 다른 이야기들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교회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동성애의 어떤 신학적인 문제보다 저들에 관한 이야기, 저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조차도 없는 정죄의 분위기라고 합니다.

실제 임보라 목사를 이단이라고 정죄한 어느 장로교의 교파는 아예 동성애 혐오증세의 한국교회를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반공 집회하듯이 교회가 동성애 반대 집회를 하는 것을 보면서 석연치 않게 이런 것이 교회인가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실제 심각한 토론을 하다 보면 서로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어요.

사람을 돌보는 일은 저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넘어서서, 교회가 해야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부정할 없는 현실이니, 저는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그런 교회가 오히려 교회답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 어느 그룹을 혐오하는 결벽증을 가지고서는 교회가 미래를 없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대화하고, 기도하고, 서로 알아보기 위해서 귀를 열고, 이야기하는 분위기는 바로 이민교회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마주하여야 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한목협은 이제 이런 다양성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고, 하나님 나라를 꿈꾸어야 하는, 그런 자리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파도가 무섭게 다가오지만, 무서운 자리를 믿음으로 과감히 다가서서, 쾌히 나라를 이끌어가는 선구적이고 용기 있는 공동체가 바로 우리이기를 바랍니다.

셋째, 깊은 곳은 쉽게 접근할 있는 곳은 아닙니다. 두려움이 가득한 곳입니다. 어둠이 가득한 곳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물고기가 있는지 없는 미지의 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거기로 가라고 하십니다. 두려움의 현실, 위험의 현실로 나가라고 합니다. 사실 신앙생활에 모험이 빠지면 뭐가 신납니까?

저희 부부가 지난 3주간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다녀왔습니다. 4000미터가 넘으니 호흡이 어렵고 숨이 찼습니다.

그런데 적응하고 도전하고 도전하고, 2013년에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2015년에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필그림을, 지난 7 초에는 지리산 4 5 완주, 그리고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5500미터 고산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거기 도전하고 머무는 용기 이외에는 다른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과학자이면서, 저는 그를 신학자라고 하는데, 예일대에서 교수하다가 지금은 은퇴해서 산타바바라 지역에 사는 Donna Haraway라는 분이 있습니다.

모든 생물은 마주한 어려운 파도와 환경을 그곳에 과감히 머물면서 서로의 관계를 발견하고 서로를 허용하는 연합과 융합을 경험하게 된다고 하는 그녀의 관찰이 저에게는 새로운 신학적 명제가 되었습니다.

깊은 , 그곳은 두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길입니다.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길입니다. 그동안 알았던 모든 공식이 통하지 않는 변혁적인 도전 앞에서 주님은 깊은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고하십니다.

이제 여러분과 내가 무외공포, 불교에서는 이것을 깨달음의 경지라고 합니다. 이상 두려움이 없는 경지, 이상 물러섬이 없는 불퇴전의 경지, 그런 경지로 여기고 함께 모험하는 그런 자리를 주님이 부르고 계신 자리라 여깁니다.

한목협과 함께 이런 모험의 자리에 함께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대로 하니 고기를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게 되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 5:1-11)

개체교회
2024년 10월 4일, 연합감리교회 북일리노이 연회는 네이퍼빌 한인연합감리교회 탈퇴파와의 교회 소유권 분쟁이 마무리되었다고 발표했다. 교회 입간판에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제공, 조나단 목사, 네이퍼빌 우리교회.

네이퍼빌 교회 소송 마무리되다

2024년 10월 4일, 연합감리교회 북일리노이 연회는 네이퍼빌 한인연합감리교회 탈퇴파와의 교회 소유권 분쟁이 마무리되었다고 발표했다.
개체교회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월 10일, 소설가 한강을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고, 그의 작품들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사진은 한강의 작품집 중 채식주의자(2007), 소년이 온다(2014) 그리고 디에센셜(2022년) 등 3편이다.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한강에게 갈채를

박충구 박사는 “산문적 글쓰기의 정밀함과 아름다움 속에 인간의 비참함에 대한 깊은 연민과 동정, 그리고 분노를 넘어서 순수한 평화에 대한 깊은 열망”이 작가 한강을 노벨문학상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신학
 <만인성도주일>이 다가오고 있다. 연합감리교인들은 장례 예배와 추모 예배를 드리며 죽은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돌보심을 간구합니다. 사진, 케이트 배리, 연합감리교뉴스.

연합감리교인들도 죽은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드립니까?

만인성도주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연합감리교회에서는 11월 1일 <만인성도일(All Saints Day)> 또는 11월 첫 주일을 <만인성도주일>로 지킵니다. 이와 관련하여 왜 연합감리교인들이 추모 예배를 드리고 죽은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는지 신학적이고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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