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던 제임스 레이니가 군함을 타고 한국 인천에 도착한 것은 그가 19세 되던 1947년이었다. 분단된 한반도에서의 경험은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전통적인 방식의 성공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예일대학교에서 경제학을 마치고, 투자 은행에 취직하는 대신 예일대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 일생을 평화운동가로 헌신한 레이니 목사는 한국에 2번 더 방문하게 된다. 한 번은 선교사로, 그다음에는 외교관으로서.
인더짓트 보갈 부모의 여정도 1947년에 시작되었다. 1947년 영국령이었던 인도가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나뉘자, 보갈의 부모는 푼잡 지역을 떠나야만 했다. 그들이 인도를 떠난 지 4년 후 인더짓트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태어났다. 그가 13살 되던 해, 케냐는 독립했고, 또다시 그의 가족은 살던 곳을 떠나, 1964년 영국에 도착했다.
그의 이민 초기 당시, 영국에는 시크교 사원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교회에 가기로 했다. 이는 보갈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감리교 목회자가 되도록 이끌었으며, ‘그리스도의 열린 식탁(Open Table)’ 에 대한 비전을 통해, 종교 간 평화운동에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다 .
최근 세계감리교협의회는 두 신학자의 업적을 인정하고 보갈과 레이니에게 세계감리교 평화상을 수여하기로 했다. 보갈은 2018년 수상자이며, 레이니는 2019년 수상자이다. 레이니에 대한 시상식은 11월 21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보갈은 2020년 3월 27일 런던에서 시상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세계감리교협의회의 의장이자 남아프리카공화국 감리교의 이반 아브라함 감독은 보갈과 레이니를 다리를 놓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그는 연합감리교뉴스에 “나는 그들이 현대판 선지자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 시대의 희망을 구현하고 있다."
세계감리교 평화상은 ‘평화, 화해 그리고 정의에 커다란 기여’를 한 개인 또는 그룹에 수여 된다.
1977년 이후 수상자로는 인터내셔날해비타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인종분리정책에 맞서 싸운 넬슨 만델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보리스 트라즈코브스키, 전 마케도니아 대통령; 로마에 소재한 평신도 가톨릭 단체로 사회 복지에 헌신한 산테지디오공동체(Community of Sant'Egidio); 아르헨티나 독재 정권 속에서 사라진 어린이들을 찾기 위해 일하는 인권 단체인 블라자데마요(Plaza de Mayo)의 할머니들 등이 포함되어 있다.
에모리대학교의 명예총장이기도 한 레이니는 자신이 늘 존경해 오던 “이전 수상자들과 같은 자리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국 사람들의 평화에 대한 노력에 고개를 숙인다고 말했다. "이것은 그들이 수고하고 노력한 성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1959년 그의 아내 버타가 선교사로 파송 받아 선교사 가정으로 한국으로 이주한 후, 그는 1964년까지 서울의 연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의 많은 제자가 한국의 지도자로 성장했다.
수십 년 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레이니를 주한미국대사로 임명했고, 클린턴과 카터 전 대통령과 함께 1994년 첫 북한 핵 위기를 해소하는 데 일조했다.
레이니와 카터는 연합감리교회와 세계감리교회협의회 그리고 한국 기독교감리회가 공동주최한, 2018년 11월 조지아주 아틀란타의 카터센터에서 열린 “한반도를 위한 원탁 회담”에서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레이니는 원탁 회담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상대방을 악마화하면 평화를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평화의 장점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닌,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올 12월, 그들의 70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하게 되는 레이니 부부는 둘 다 91세다. 지금은 레이니 여사가 치매를 앓고 있지만, 레이니는 여러 면에서 자신의 아내가 자기보다 한국 사람들을 향한 애정과 헌신이 넘친다고 말했다. "그녀는 모든 사역의 동반자였다. 그녀는 불타는 투사였다."라고 연합감리교뉴스에 말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하여, 어떻게 대화할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포함한다고 레이니는 말했다. "오늘날의 문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혼돈과 적개심 그리고 원한으로 점철된 이 시기에 어떻게 적응하여, 평화를 위해 일할 수 있는가이다."
레이니는 북한과의 현재 상황이 ‘거의 벼랑 끝에 몰린 것’처럼 보이지만,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 운동은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분노를 해결하도록 돕고, 함께 수용 가능한 공통적 기반과 노력을 추가하는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난민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후원자이며, 종교 간 대화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 온 보갈 목사에게 평화와 화해는 필수 방정식이다.
"나의 모든 삶은 평화를 위해 일하고, 전쟁과 폭력 및 살해 위협에 맞서 싸우는 전 세계 사람들에 의해 고무되어 왔다."라고 자신의 평화상 수상 소감에 썼다.
양극화되고, 민족들 사이의 관계가 단절되어 가는 상황에 대해, 보갈은 “인간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도전은 우리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2000-2001년 영국 감리교회 회장으로 선출된 총회에서 그가 한 연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영감받은 ‘모든 사람을 위한 식탁’이었다. 그는 연설에서 "예수의 천재성은 공동체의 중심에 음식과 식사를 포함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갈은 오염, 빈곤 및 빈부격차를 현재 당면한 세 가지 우선순위로 꼽고, “어느 나라에 살든지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이다.”라며, 빈부격차를 없애고, 다른 사람들이 서로 잘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진보를 이루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보갈이 시작한 평화 관련 운동의 하나는 환영과 환대 그리고 안전한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풀뿌리 운동인 생츄어리 도시(City of Sanctuary)다. 그가 영국 셰필드에 거주하던 2005년, 보갈은 어떻게 난민지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논의를 위해, 사람들을 초대하고 회의를 열었다.
또한, 보갈은 모두 함께 협력하면 그 효과가 얼마나 더 커질 수 있는지 지적했다. 그는 "참석자들 모두 이에 동의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신앙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구약 성서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고, 이를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7년, 셰필드 시장은 세필드를 생츄어리 도시로 선포했다. 그는 현재 영국의 100개가 넘는 도시와 타운 및 마을이 “생츄어리 도시의 비전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대학 및 기타 여러 단체들도 이 비전을 채택했으며, 현재 보갈은 <함께하는 영국과 아일랜드 교회(Churches Together in Britain and Ireland)>라는 조직과 협력하여 개체 교회가 생츄어리 운동에 참여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제는 66세로 은퇴 목사가 된 보갈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평화를 향한 선한 영향을 주기를 원한다. 은퇴자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출장 중에 메시지를 받곤 한다는 그는 세르비아에서 연합감리교뉴스의 연락에 답하면서, 신앙을 이유로 갈등이 벌어졌던 세르비아에 대해 좀 더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크로아티아, 푼잡, 인도 등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어려운 환경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람들의 실제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평화를 위해 일하겠다는 그의 지속적인 헌신은 모든 사람을 위한 ‘열린 식탁’의 개념으로 돌아간다. “나에게 성만찬은 이 세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계시이다.”라고 보갈 목사는 설명했다.
그는 오늘날 기독교 신앙의 특징을 ‘환대, 환영, 포용의 상징인 식탁을 펴는 능력’이라고 성격지었다.
블룸은 뉴욕에서 일하는 연합감리교뉴스의 부편집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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