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성찬예식으로의 초대

바울이 갇혔던 감옥 앞에선 이형규 목사. 사진 제공, 이형규 목사.바울이 갇혔던 감옥 앞에선 이형규 목사. 사진 제공, 이형규 목사.

매년 10월 첫째 주일은 전 세계 교회가 참여하는 세계성찬주일이다. 세계성찬주일은 1933년 휴 토마스 커가 처음 제안하고, 세계교회협의회의 전신인 세계교회연맹(Federal Council of Churches)이 1940년 인준한 행사 중 하나로, 전 세계에 흩어진 교회가 그리스도의 한 몸이자 연합체임을 기억하며 성찬식을 나누는 뜻깊은 날이다. 

코로나로 인해 거의 1년 이상 중단되었던 대면 예배가 최근 가능해지면서, 나는 2021 세계성찬주일을 통해 새롭게 성찬식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면서 이 글을 쓴다. 이 짧은 성찰을 통해, 본질과 전통에 굳건히 서 있으면서 동시에 보다 더 의미 있고 창의적인 성찬식을 준비하고 경험하는 시초가 되기를 희망한다.

우선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성찬식을 드렸을까를 되돌아 보자.

질문은 간단하지만, 대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초대교회 기독교인(Christians in the early Church)”이라는 단어를 정의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이 말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교회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예루살렘교회나 시리아교회 또는 바울이 세운 소아시아교회를 의미하는지가 우선 분명치 않다.

일반적으로 “초대교회”하면 예루살렘에 있었던 “하나"의 교회 공동체를 상상하기 쉬운데, 이는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교회일 뿐이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기독교는 사방으로 흩어진 제자들과 사도 바울을 통해, 이집트와 시리아를 비롯해 오늘날의 터키와 그리스까지 그 교세가 확장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지역과 문화 속으로 복음이 확대된 상황에서, 과연 성찬식은 어떤 방식으로 실행되었을까?

초대교회의 성찬식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초기 문서는 <디다케(Didache)>이다.

“열두 사도의 가르침”이라고도 알려진 <디다케>는 1875년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예배 문서로 간주되지만, 연대를 1세기 중반에서 2세기 중반일 것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시기는 알지 못하고, 저자 또한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소책자는 총 14개의 짧은 단락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9장과 10장 그리고 14장에 성찬식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 문서가 유대교의 식사와 관련된 감사기도문으로 기독교의 성찬예식문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는 적어도 10장과 14장은 최초의(primitive) 성찬예식문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디다케>가 성찬예전으로 충분히 간주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9장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 이 외는 아무도 성찬(Eucharist/thanksgiving)을 먹거나 마시지 못하게 하라.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마태 7:6)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10장은 이보다 더 분명한 언어를 사용한다.

“전능하신 주인이시여, 당신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셨나이다… 당신께서, 당신의 종이신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삶으로 인도하는 ‘영적인 음식과 음료(spiritual food and drink)’를 주셨나이다. (그리하여) 무엇보다도 우리는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디다케 10.3)

마지막으로 14장은 완벽한 성찬 신학을 포함하고 있다.

“주님의 날에 다 함께 모여서, 빵을 떼고 감사를 드립시다. 당신의 희생제물이 순전해지도록 죄를 먼저 고백합시다.”(디다케 14:1)

이처럼 14장은 세례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만찬인 영적 음식와 음료 그리고 희생제물이라는 언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기념하는 식탁 기도, 즉 주님의 만찬(The Lord’s Supper)임을 충분히 드러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찬식 이야기에 1세기 고대 문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성찬예식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성찬제정사(Institution Narrative)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실 초기 기독교 전통은 “제정사” 이전에 “감사기도(The Prayer of Thanksgiving)”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가장 초기의 예전 규범서인 디다케는 바로 이 점을 명확하게 증명해준다.

“우리 아버지, 당신의 종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신 대로 당신의 종 다윗의 거룩한 포도나무에 대해 감사드리나이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디다케 9.2)

“당신의 거룩한 포도나무”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암시하는 아름다운 표현이다. 10장의 2절과 3절 그리고 4절도 모두 감사기도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미국인 회중 목회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의 오랜 한국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면, 성찬식 집례 시 목사의 기도가 대부분 <제정사>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주께서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 .”

초대교회 예배에 정통한 김 정 교수도 같은 진단을 내리고 있다. “오늘날 개신교의 성찬식은 매우 생략된 형식의 성찬기도를 드림으로써 아나포라(Anaphora =  Eucharistic Prayer)의 구조가 거의 사라지고, 예수님이 성찬을 제정하실 때의 말씀만 남은 경우가 대부분이다.”(초대교회 예배사, 김 정 지음. 199쪽)

예전(liturgy)을 전공하고, 미국인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 그런 보습이 성찬예식을 간략하게 집례하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 빠뜨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성찬식 집례 시 가능하면 성만찬의 정신과 전통을 충분히 살린 6단계 정식(full course meal)을 모두 시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나포라라는 6단계의 성찬 기도는 근본적으로 “찬양과 감사의 기도”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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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조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입(Sursum Corda), 감사례(Preface- the prayer of Thanksgiving), 제정사(Institution Narrative), 기억하며 행함( Anamnesis), 성령임재 기도(Epiclesis), 영광송(Doxology).

이 6단계의 성찬 기도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연합감리교회의 성찬식에 담겨있는 여섯 가지 핵심 주제를 아우르기 위해서이다.

성찬식의 여섯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다: 감사(Thanksgiving), 교제(Fellowship), 기억(Remembrance), 희생(Sacrifice),  성령의 역사(The Action of the Holy Spirit), 그리고 종말론(Eschatology). [This Holy Mystery: A United Methodist Understanding of Holy Communion, by Gayle Carlton Felton, p.17 참조]

초대교회의 아나포라가 “감사기도”에서부터 시작하고, “감사와 찬양”이 성찬식 전체를 꿰뚫고 있는 주제라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성찬식의 근본 의미와 여러 가지 성찬 신학의 주제가 모두 녹아있는, 풍미가 가득한 영적 만찬을 준비해보자는 제안에 대해 뜬금없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찬 감사기도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며,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 

하나님의 창조와 그리스도의 구속사에 대한 감사가 바로 그 기도 내용의 핵심이 된다. 다만, 그 감사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언어와 내용은 무궁무진하다.

연합감리교 예배서(The United Methodist Book of Worship)를 펼쳐보면, 교회력에 따라 모두 14개의 성찬예문이 제공되어 있다.(pp. 54-80) 언뜻 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이러한 비밀을 깨달은 후 나는 어떻게 하면 더 풍부한 “감사례”를 올려드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늘 새로운 기도문을 찾는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쉬운 것은 교회력에 맞는 주제를 발전시키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대강절의 기다림과 주현절의 빛 그리고 성령 강림절의 성령과 여름철의 성장 및 가을의 열매가 좋은 단초가 될 수 있다.

교회력에 맞춘 기도문을 더 살펴보면, 4세기 이집트 교회의 기도서인 사라피온 예식서(the Prayers of Sarapion)에는 다음과 같은 성찬기도문이 있다.

“그 유일하게 낳음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되지 않으신 아버지... 우리는 그 아들 곧 그 유일하게 낳음을 받으신 분에 의해 알려지신 당신을 찬양합니다. 그를 통해 당신은 모든 창조된 자연을 향하여 말해지고 해석되며 알려지게 됩니다.”(사라피온 예식서- 4세기 교회의 예배기도, 김 정 지음. 156쪽)

그와 함께, 연합감리교 예배서(The Book of Worship)에 제시된 추수감사절 성찬기도문과 어느 무명 시인의 창조 세계에 대한 감사기도문을 살펴보자.

“당신의 지정하심에(By your appointment) 따라 계절이 오고 계절이 갑니다. 당신은 땅으로부터 빵을 생산하셨고 포도 열매를 창조하셨습니다. 땅은 그 보물을 산출해내며, 당신의 손으로부터 우리는 축복에 축복을 더하게 받습니다.”(76쪽)

“이 세계에 성육신하신 당신의 현존(your incarnating presence)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사계절의 변화, 나뭇잎들과 나무와 산들의  아름다운 색상, 신선한 물, 서늘한 공기, 높은 하늘, 날아가는 새들, 뚱뚱한 호박, 싱싱한 사과… 이 세계 전체가 당신의 영광과 능력을 증거하나이다.”

사라피온 기도문이 정제된 신학적 언어로 쓰여 있다면, 다른 두 기도문은 일상의 언어로 찬양과 감사를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성찬 감사기도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또한 이 모든 기도가 각각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마음에 와닿지 않는가? 

성찬식(Eucharist)이 곧 감사기도(Thanksgiving)임을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방법이 또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성찬식에 사용할 빵을 주일 예배 전 교회에서 굽는 것이다.

어쩌다 집에서 빵을 구우면 온 가족들이 그 냄새에 취해, 맛있게 구워진 빵을 기다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교회에 문을 열었을 때, 빵 굽는 냄새가 당신을 반갑게 맞이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아, 오늘 성찬식이 있는 날이구나! 신난다!”라고 어른들 뿐 아니라 아이들도 기뻐하며 성찬식을 기다리지 않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성찬기도는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에 슬퍼하는 애가(elegy)라기보다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제공하는 기쁨의 노래(Song of Joy)에 가까워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빵과 포도주가 우리의 몸을 즐겁게 해주는 것처럼, 주님의 살과 피도 우리의 영혼을 북돋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무겁고 엄숙한, 장례식 같은 성찬식은 수난 주일만으로도 충분하며, 그 밖의 절기에는 축제 같은 성찬식이 되어야 하고, 더 풍요로운 성찬기도를 위해 목회자들이 더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을 들이면 들일수록 더 생생하게 경험되는 하나님의 임재야 말로, 성찬식이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은총의 신비(Mystery)인 이유이다.

참고 기사:

온라인 성만찬 찬반 논쟁 팽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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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우 목사는 자신의 50년의 목회와 신앙 여정을 고백하며, 신앙의 어버이와 같은 연합감리교회를 통해 받은 사랑이 크기에 성소수자 이슈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연합감리교인으로 남겠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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