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아시안을 향한 혐오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한인/아시안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코로나19 이야기를 UM News의 의뢰로 먼저 영문으로 쓴 것을 번역했음을 밝힌다. 영문 기사는 Enforced COVID-19 isolation recalls days in prison을 클릭하면 된다.
거의 40년 전, 나는 뒤쪽의 창은 덮개로 가려져 있어 밖을 볼 수 없고, 앞쪽은 교도관이 감시할 수 있도록 구멍이 나 있는 0.75평의 조그만 독방에 갇혀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나에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매일 아침 나는 5시쯤 일어나 팔굽혀펴기를 하고, 조그만 방을 청소한 후, 책을 읽으며 아침 배식을 기다렸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나에게 허락된 30분의 운동 시간을 위해 교도관이 데리러 올 때까지 다시 책을 읽었다. 교도소의 마당에는 그와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갇혀 있던 독방과 마당을 오갈 때, 또는 접견을 위해 나설 때도, 나는 도중에 마주친 누구에게도 눈인사조차 나눌 수 없었다.
그들에게 아마도 나는 다른 재소자들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운동이 끝나면, 나는 독방으로 돌아갔다.
30분의 운동 시간은 누구도 만날 수 없었고,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는 계절의 변화를 보고 느낄 수 있었으며, 0.75평 너머를 바라볼 수 있었다. 흙을 밟고 만지기도 하고, 구름 낀 하늘도 보며, 내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한 달에 딱 한 장의 봉합엽서를 가족들에게 보낼 수 있었던 나는 되도록 작은 글씨로 봉합엽서의 짜투리까지 빼곡하게 채웠다. 나에게는 한 달에 한번,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딱 10분간의 면회가 허락되었다.
이 지점에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내가 어디에 그리고 왜 수감 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할지 모르겠다. 전두환 독재정권이 다스리던 1983년의 한국에서 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출판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2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어 있었다.
나는 2020년 미국에서 다시 내가 감옥에 있을 때처럼 느끼며, 행동한다.
나는 5시 30분에 일어난다.
나는 나의 작은 아파트의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 후,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약 50분 정도 걸으며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 감옥에서보다는 제법 긴 시간이다. 그러고는 서둘러 7시가 되기 전에 아파트로 돌아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기사를 쓰거나 뉴스거리를 살펴본다. 특히, 연합감리교회에 속한 한인 교회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체크한다.
나의 작은 아파트는 12걸음이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갈 수 있는 크기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 이 작은 공간에서 나의 재택근무에 가장 큰 적은 바로 고립, 분리 그리고 인간적 접촉의 결여다.
나는 아날로그 세대다.
한국의 감옥에서 작은 독방에 갇혀있었을 때도 외로움은 느꼈지만, 나는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조국의 민주화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의 나는 자유가 있음에도 또다시 미국의 작은 아파트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그때와 정반대로 지금의 나는 이 사태가 언제쯤 끝날지 알 수 없으며,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사회적 거리두기뿐인 현실에 기가 죽어 있다.
우리는 나의 안전과 타인의 안전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두려움과 실망감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인사하고 농담도 주고받는다. 그러나 요즘 나는 밖으로 나갈 때면, 매우 소심하게 행동하고, 거리에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괜히 불안하다. 그래서 때로는 건너지 않아야 할 길도 건너곤 한다. 나는 무려 33년 동안 살아온 이 땅에서 안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글을 더 진행하기 전에, 몇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
나는 외로움을 느끼지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자녀들과 통화하고, 형제와 친구들과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그들이 건강하고 안전하다는 소식을 들을 수만 있으면 그깟 외로움은 견딜 수 있다.
나는 내 사무실을 좋아하고, 직장 동료들과 우정을 나누고, 동역하는 것을 좋아한다. 비록 그들을 만날 수 없고, 직장으로 출근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줌(Zoom)을 통해 때로는 버퍼링으로 그들의 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회의를 하더라도,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한다.
작은 원베드룸 아파트에서 24시간을 지내는 것은 힘들고 때로는 지겹다. 그러나 이것도 나는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감당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이런 시간을 이겨내야 하는 시기이다.
그렇지만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3월 26일 NBC 뉴스는 지난 한 주 동안 미국에서 아시안들을 향한 혐오 범죄가 650건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나의 아시안 형제자매들도 코로나19를 두려워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런데 왜 모든 사람이 느끼는 두려움에 불필요한 두려움과 좌절을 더 해서 느껴야 하는가? 왜 우리는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가? 우리 모두의 적인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해, 우리 모두 단합해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 바이러스에 인종과 국적이 있는가?
이 나라가 영적으로 너무 작아져 버린 것은 아닌가? 우리가 코로나19보다 작은가? 여러분은 코로나19보다 하찮은 존재인가? 미국이 코로나19보다도 형편없는가?
연합감리교회 총회인종관계위원회는 지난 3월 22일 성명서에서, “우리는 특별히 우리 가운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범해지는 실질적인 인종차별적 언사와 생각 그리고 행동에 가담하지 않으며, 그들을 위해 변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부르심에 합당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아시안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크리스천들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야곱 그리고 요셉이 이민자였으며, 예수님과 그의 가족이 난민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우리가 코로나19보다 크고 강한 존재라고 믿는다.
미국과 미국 사람들은 보다 나은 나라가 되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나라에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선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최근 나는 뉴욕의 후러싱제일 연합감리교회(담임 김정호 목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이민자들의 교회인 이 교회의 교인들이 코로나19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의 공동체를 돕기 위한 방편으로 재사용이 가능한 마스크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협력하고 있는가에 관한 내용이었다.
“우리의 작은 나눔의 실천이 탄력을 받아 지속해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사랑으로 대유행 병을 이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 우리는 처음으로 소독된 마스크를 노인들의 생활공간인 사파이어 재활원과 푸러싱 노인 아파트에 전달했다.”
우리는 코로나19의 위협의 한복판에서도 우리 주위의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나는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믿는 기독교의 성경에 따르면 예수께서 우리 사이의 담을 허무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에베소서 2:14, 개역개정)
나는 하나님께서 코로나19뿐 아니라, 우리의 외국인 혐오증과 인종차별의 병도 함께 고쳐주시길 기도한다.
여러분 가운데 나에게 외출 자제령이 수감 생활만큼 힘든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대답은 “어느 면에서는”이다.
나는 2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수감된 지 8개월 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났고, 후에 특별사면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후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고 민주적인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민주화 공로자로 인정받았다.
나는 매우 낙관적이다. 나는 이 따분하고 지겨운 외출 자제령과 재택근무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우리가 모두 합력하여 코로나19를 이겨냈다고 서로를 인정하며 칭찬하는 날이 곧 올 것이라 믿는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라기 4:2, 개역개정)
나는 여러분과 내가 외출 자제령에서 벗어나,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밖으로 뛰어나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두려움과 망설임 없이 서로를 얼싸안고, 부둥켜안을 수 있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한다.
평화/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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