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글은 도은배 목사가 교인들이 제출한 질문에 대답하는 “Ask Your Pastor” 설교 시리즈 2편이다.)
“기독교인이 문신을 해도 됩니까?” 여러분이 제게 주신 질문 중 하나인데 오늘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뉴욕타임즈 베스트 셀러의 작가였던 나디아 웨버(Nadia Bolz-Weber)는 온몸에 문신을 했습니다. 그녀의 몸에 새겨진 화려한 문신보다도 더욱 그녀를 유명하게 한 것은 나디아가 루터교 목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문신한 사람을 보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지만 기독교인들은 왠지 문신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문신에 대해 갖고 있는 불편한 느낌은 단지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문신을 한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종종 기독교인이 문신을 해도 되느냐는 질문이 등장하는 이유는 구약성서 레위기의 한 구절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을 애도한다고 하여, 너희 몸에 상처를 내거나 너희 몸에 문신을 새겨서는 안 된다.” (레위기 19:28)
이 구절을 근거로 어떤 기독교인들은 문신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이 한 구절 때문에 기독교는 문신을 반대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것입니다.
제가 몇 주일 전에 말한 올바르게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성경 본문과 성경 본문이 기록된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물고기와 어항에 비유하였습니다. 어항 속에서 함부로 물고기를 꺼내는 순간 물고기는 죽습니다. 본문을 살아있게 하는 방법은 성경 본문을 본문이 기록된 상황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일반 평신도뿐만 아니라 신학교육을 받은 목회자들도 종종 이런 오류에 빠집니다. 말씀은 오직 말씀으로 풀이한다며 여기저기서 수집한 성경 본문들을 짜깁기해서 본인들이 원하는 답을 만들어 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합니다. 이단들이 주로 하는 일입니다. 다른 시대, 다른 문화, 다른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무리하게 함께 묶어 어떤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는 민물고기를 바닷물에 넣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기록된 상황은 무엇입니까? 우선 문제가 되는 28절의 전후의 문맥을 살펴보겠습니다.
너희는 어떤 고기를 먹든지 피째로 먹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점을 치거나, 마법을 쓰지 못한다. (26절)
관자놀이의 머리를 둥글게 깎거나, 구레나룻을 밀어서는 안 된다. (27절)
이 말씀대로 하자면 기독교인은 육회는커녕 스테이크도 바짝 구워 먹어야 합니다. 무당집은 물론 재미로 길거리에서 타로점을 봐도 안 되고 함부로 수염을 밀어도 안 됩니다. 저는 육회는 안 먹지만 고기는 약간 덜 익힌 것을 좋아합니다. 구레나룻 수염은 하고 싶어도 없어서 못합니다. 도대체 개인의 선택과 취향에 해당하는 일들에 대한 이런 금지규정들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저는 목사 아들로 태어나고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 담장 안에서 보냈습니다. 동네 아이들도 목사 아들인 저와 노는 것을 불편해했습니다. 제 친구들은 대부분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제가 교회 담장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시간은 학교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항상 깨끗한 옷을 입히려고 애쓰셨습니다. 아침마다 등교하는 제 옷깃의 단추를 채워주며 늘 학교에서 모범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모두가 제가 목사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심지어 어떤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저를 일으켜 세워 주기도문을 외워 보라고 시키기도 했습니다. 식은 땀을 흘려가며 간신히 주기도문을 암송하고 자리에 앉으며 선생님이 십계명을 외워보라고 시키지 않은 것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좋든 싫든 저는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행동할 것을 강요받고 살았습니다.
저는 구약의 금지 조항들을 읽을 때마다 마치 자녀들에게 세상과는 다르게 살 것을 당부하는 부모의 모습을 봅니다. 구약의 수도 없이 많은 금지조항들은 자신이 선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애정이 어린 간섭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이 피를 먹지 말라고 했는지, 왜 수염을 깎지 말라고 했는지, 왜 맛난 삼겹살과 오징어를 먹지 말라고 하셨는지 그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을 깊이 있게 고찰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제들에 단순하게 접근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다른 집 아이들과 다르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집 아이들이 하는 일들을 못 하게 하셨습니다. 문신을 하지 말라는 28절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문신은 이방 민족들의 풍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레위기의 문신 금지 조항에 대해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죽은 사람들을 애도하기 위해 몸에 상처를 내지 말라는 대목입니다. 구약의 다른 금지 조항들과 달리 여기에서는 문신을 금지하는 특별한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문신은 신석기시대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아주 오래된 인류의 풍습이며 동서양 모든 문화권에 골고루 퍼져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문신을 하는 동기와 목적은 다양합니다. 전쟁에서의 승리, 건강과 풍요와 번영을 비는 주술적인 목적, 귀족이나 노예의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 자신을 꾸미고자 하는 미용의 목적도 있었습니다.
성경 레위기에서 문제 삼는 문신은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의미에서 했던 문신입니다. 사실 이러한 풍습은 고대나 현대나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잃으면 다양한 방식으로 그 아픔을 표현합니다. 소리 내 울기도 하고 금식을 하기도 합니다. 한순간에 자식들을 모두 잃은 욥은 옷을 찢고 머리를 밀고 잿더미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극단적으로 아픔을 표현하는 방식은 자해(self-harm)입니다. 요즘도 필리핀에서는 해마다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채찍질하며 고난의 행렬을 합니다.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자신의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습니다. 레위기는 죽은 자들을 위한 문신을 일종의 자해행위로 본 것입니다. 자해를 금하는 것은 신구약 성서에 공통으로 흐르는 정신입니다.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타인뿐 아니라 자신도 해치지 말라는 생명 존중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에 우리의 생명은 소중한 것이고 그 생명을 담고 있는 우리의 몸 역시 거룩합니다. 구약의 수많은 정결법은 몸의 거룩함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보여줍니다. 뼛속까지 유대인이었던 바울은 누구보다 율법에 대해 해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은 자신의 편지에서 몸에 대한 구약의 시각을 넘어 우리의 몸이 매우 특별한 목적과 사명이 있음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롬 12:1)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
문신을 비롯하여 구약의 수많은 율법과 금지 조항들은 오래전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특별한 백성들에게 주어진 구별된 삶에 대한 요청이고 도전이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기를 원하셨던 예수님 역시 종교 지도자들과 율법 문제로 늘 갈등을 경험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공의회를 통해 이미 오래전에 율법의 멍에를 벗고 은혜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메워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그들도 꼭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사도행전 15:10-11)
기독교인으로 문신을 하는 것이 정당한가요?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당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의 오랜 문화현상에 대해 섣불리 성서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위험합니다. 다만 레위기의 문신 금지 조항에 담긴 생명 존중과 현재 삶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는 반드시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동일한 행위도 어떤 동기와 목적에 의한 것이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문신이라는 행위 자체 보다 문신에 담긴 메시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보기에 아름다운 문신도 있고 고개를 돌리고 싶은 문신도 있습니다.
인간은 성인이 되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집니다. 문신을 하느냐 마느냐, 귀걸이를 하느냐 마느냐로 꼰대 아비인 저와 말다툼하던 세 아이가 어느덧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을 떠났습니다. 자식을 키우며 많이 배우고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성인이 되면 더 이상 자식들에게 잔소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잔소리는 거두고 사랑과 기도의 끈은 놓지 않는 것, 그것 말고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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