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글은 연합감리교뉴스의 <영화와 설교> 시리즈로, 현혜원 목사의 영화 “리빙(Living)”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살날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영국 영화 <리빙>은 일본 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가 만든 1952년 작 <이키루(Ikiru-산다는 뜻)>의 리메이크 작품으로 각본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가 썼고, 감독은 올리버 허머너스입니다.
이 영화는 <나를 보내지 마>와 <남아 있는 나날>의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각본을 쓴 것만으로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데, 거기에 제 또래라면 모두 알 유명한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한물간 팝스타를 연기한 빌 나이가 주인공이기까지 합니다. 참고로 빌 나이는 이 영화로 LA 영화비평가협회로부터 2022년 최우수 남자 배우로 뽑혔고,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런던의 구청 과장 윌리엄스 씨(빌 나이)는 몇십 년째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업무만 반복해 오고 있습니다. 친구도 없고 즐길 줄도 모르는 그는 동료들로부터 ‘좀비 씨’라고 불리지요.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그를 참으로 잘 표현해 주는 별명입니다.
윌리엄스 씨는 ‘능숙하게' 관료적입니다. 귀찮은 일이 넘어오면 무조건 다른 부서로 넘기거나 책상 구석으로 밀어버립니다. 좀비 씨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대동소이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책상에는 서류가 쌓여만 가고, 일은 좀처럼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위암으로 살날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습니다. 마감 기한이 있는 삶은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아주 긴 세월을 살았으나 제대로 삶을 살아본 경험이 없는 그는 남은 6개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당최 알 수가 없습니다.
사는 게 어떤 거더라?
일련의 경험과 만남을 통해 그는 삶에 대해 변화된 생각을 가지게 되고, 그동안 구석에 처박아 둔 프로젝트 중 하나인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놀이터를 세우는 프로젝트에 착수합니다. 구청의 누구도 맡고 싶어 하지 않은 일을 찾아내어 시작한 것입니다.
남은 6개월간 그는 직접 장소를 답사하고, 지역 사람들을 만나보고, 다른 관련 부서의 과장들을 압박해서 프로젝트가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합니다. 6개월간의 그는 바쁘고, 활기찹니다. 병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완성된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봅니다. 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에너지가 가득한 놀이터를 바라보며 숨을 거두지요. 그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난한 마을에 놀이터를 선물함으로써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새 희망을 주었습니다. 마지막 6개월, 그는 참으로 살아 있었습니다.
숨을 쉰다고 모두 살아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메건 헤이즈는 저서 <행복을 부르는 지구 언어>에서 세계 곳곳의 아름다운 언어를 소개합니다. 그중 그리스어 ‘메라키(μεράκι)’는 ‘작은 것에도 영혼을 쏟아붓는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조지타운 대학에서 신학과 종교학을 가르치는 조민아 박사는 메라키가 문자적으로 ‘우리 자신의 본질’을 의미하지만, 실제 쓰이는 의미는 ‘어떤 행동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그 과정 속으로 녹아드는 것’을 뜻한다고 알려줍니다. 그래서 그는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도, 반려동물의 밥을 챙겨주는 것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도 영혼을 담아 진심으로 행하면 그것이 바로 ‘메라키’라고 설명합니다.
윌리엄스 씨의 삶에서 그가 정말로 메라키한 날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6개월 동안 ‘참으로 살기’를 선택하고, 자신을 비롯해 모두가 미루기 바빴던 프로젝트에 그의 영혼을 쏟아부어 메라키를 실행합니다. 결국 그의 메라키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네의 버려진 땅을 일구고 그곳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며, 그 결과 본인의 구원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새로운 삶을 선물합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을 것 같습니다. 그의 삶의 많은 부분이, 혹은 모든 부분이 메라키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의 메라키의 초점은 바로 ‘우리’였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라는 신명기(신 6:5)의 계명을 예수님은 다시 재정의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태복음 22:37-39)
첫째가는 계명과 같은 크기로 중요한 계명은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그와 같은 마음과 진심을 담아 이웃 또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께로만 맞춰졌던 신앙의 초점을 우리의 삶을 이루는 이웃에게까지 확장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끌려와 광장에서 돌팔매질을 맞아 죽을 뻔한 여인을 옆에 두고 허리를 숙인 채 바닥에 무언가를 쓰셨을 때 그것은 예수님의 메라키였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두고 슬피 우는 마을 사람들과 그 자매를 보고 함께 눈물 흘리신 마음 역시 예수님의 메라키였습니다. 골고다에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오르신 것도 예수님의 메라키였습니다. 그리고 그 삶과 죽음으로 우리는 새 생명의 삶을 얻었습니다.
저는 가끔 ‘내가 오늘 살아 있었나?’라는 질문을 저 자신에게 던져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많은 날에 저는 제가 그날을 ‘살았’는 지를 제대로 답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숨 가쁘게 일정에 쫓기기만 할 때도 있고, 영혼을 담지 않은 대화나 제스처를 건넬 때도 많고, 무엇보다 기쁨보다는 불평으로 채우면서 살 때가 많습니다.
윌리엄스 씨의 메라키가, 예수님이 삶과 죽음으로 보여주신 메라키가 모범이 되어 오늘을 사는 우리 또한 메라키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길가의 이름 모를 들꽃의 향기를 영혼을 담아 감사하고, 산책길에 만나는 강아지의 반가운 꼬리를 보며 영혼을 담아 기뻐하고, 길에서 마주치는 노숙자를 영혼을 담아 도와주고, 교회에서 만나는 이웃을 영혼을 담아 사랑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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