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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타인종목회(다인종 및 다문화 사역) 목회자와 회중을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썼다.
두 가지 다른 문화, 즉 유교 문화와 백인(Anglo) 개신교 문화 사이의 대화와 상호 이해는 타인종목회 사역을 강화하고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나는 이 글에서는 두 가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유교-기독교 한국인 그리고 한국 사회의 종교 현황을 소개하고 논의한다. 둘째, 효자 예수, 즉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서의 예수를 조명한다. 그와 함께 논의 근거인 해천 윤성범의 토착화 신학, 유교-기독교적 해석을 소개한다. 서구의 신학은 예수를 창조주, 구속주, 구원주, 친구, 그리고 거룩하게 하시는 주님으로 해석해왔다. 유교-기독교적 토착화 신학은 예수를 효자로 해석하는 현대 기독론에 새로운 안목을 제공한다. 윤성범 교수는 한국 기독교인의 대부분이 기독교 예복을 입은 유교인이라고 말했다. 이는 중국, 일본, 홍콩, 대만 등 유교 사상의 영향이 큰 대부분의 동아시아 기독교인에게도 해당된다.
1. 유교-기독교 한국인 그리고 종교적 현황: 한국의 기독교인은 기독교 예복을 입은 유교인이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중 종교인은 44%이다. 그중 개신교 20%, 불교 17%, 가톨릭 11%, 유교 2%, 그리고 기타 2%이다. 기타 종교에는 이슬람, 원불교, 증산교, 천도교, 대종교, 대순진리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조사는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첫째, 한국은 기독교, 불교, 유교, 이슬람교, 샤머니즘 등이 공존하는 종교 다원 사회다. 둘째, 기독교는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쳐 1,000만 명 이상의 신자를 가진 한국 최대의 종교이다. 셋째, 유교는 교세가 아주 미미하다. 넷째, 한국무슬림연합회는 한국의 무슬림 신자를 약 15만 명으로 추산하는데 이들 중 12만 명은 우즈베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며, 3만 명은 유학생과 사업인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이 통계에서는 유교 인구가 2%에 지나지 않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유교적인 나라라는 것이다. (주 1. Martina Deuchler, The Confucian Transformation of Korea: A Study of Society and Ideolog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2))
한국인은 여전히 유교적 사고방식을 갖고 유교적 행동양식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종교가 없다고 답한 56%의 한국인 대부분은 유교적 가치를 갖고 행동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답한 기독교적 가치와 관습을 고수하는 사람들 역시 유교적 가치와 관습에 매우 호의적이다. 이는 "한국 기독교인은 기독교 예복을 입은 유교인이다."라고 한 신학자의 말을 확증한다.
2. 효자 예수: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 예수
효도의 원칙과 규범을 제시한 동양의 유명한 경전이 <효경(孝经)>이다. "인간은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를 능가한다. 사람의 모든 행위 중에서 효도보다 큰 것은 없다. 효도(偭孝??? 孝道?)를 실천할 때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데 있어서 그분을 하늘의 동반자로 삼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나는 이 본문을 양성평등적 용어로 다시 쓴다. 왜냐하면 이 책은 B.C. 350년에서 200년 사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회적 상황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를 능가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 중에서 효도보다 더 큰 것은 없다. 효도(孝道)를 행할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데 있어서 그와 그녀를 하늘의 동반자로 만드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
해천 윤성범 교수는 자신의 저서, <동서양의 윤리>에서 한국적 토착화 신학, 즉 유교-기독교 신학 관점에서 효자 예수라는 새로운 해석학적 틀을 제공했다. (동서양의 윤리, 윤성범, 기독교 서회, 1973)
윤성범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그녀를 천국의 동반자로 삼는다’는 것을 좁은 의미에서 조상 제사나 조상 숭배에 대한 언급으로 받아들이지만, 나는 그것이 유대-기독교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천국이나 하나님 옆에 둘 정도로 존경하는 것과 같은 더 넓은 해석을 정당화할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본다. 비록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나님과 동일시되지 않지만, 유대-기독교에서 천국과 하나님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다. 이 해석은 효도의 수직적 차원을 궁극과 명확하게 연관시키는 효경의 또 다른 구절에 의해 뒷받침된다. “아버지(그리고 어머니)와 아들(그리고 딸)의 도(道)는 천성(天性)이다."
<효경>은 효도의 온전한 차원을 분명하게 이렇게 밝힌다.
머리카락과 피부가 있는 우리의 몸이 부모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입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계발하고, 도를 실천하여 후세를 위해 우리의 이름을 영속시키고 부모에게 영광을 돌린다. 이것이 효도의 끝이다. 그러므로 부모를 섬기는 일에서 시작된 효도는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서 완성된다. 한편으로 효도는 부모를 행복하게 하고 부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자신의 인격을 완전히 계발하고, 참된 도(道)를 실천하며, 그리하여 부모로 하여금 효도의 완전한 완성을 알게 하는 것이다.
효도를 단순히 부모를 잘 대접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효도의 본질은 부모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것, 그리고 효도의 최고 차원인 하늘에 계신 아버지(어머니)의 뜻을 섬기는 것이다.
예수의 생은 효도의 궁극적 차원을 보여준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효도의 참된 연합을 놓칠 수 있다. 예수의 모범을 통해 우리는 효도의 길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형태, 즉 인간 부모에게 바치는 효도와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효도가 있으며, 궁극에 이르러 연합함을 알 수 있다.
복음서 누가복음 2:41-51은 이 문제에 대한 아주 훌륭한 사례다.
누가복음은 열두 살 소년 예수가 효도의 두 가지 차원인 부모에 대한 효도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효도로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좁은 의미에서 볼 때, 어린 예수는 부모에게 불효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부모로 하여금 근심 걱정하며 사흘 동안이나 예수를 찾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넓은 의미에서 볼 때, 그는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 궁극적 효도임을 알았기에 하늘 아버지의 뜻에 겸손히 순종했다.
마무리하자면, 첫째 한국 기독교인은 기독교 예복을 입은 유교인이다. 자신을 유교인이라 답한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통계에 나타나지만, 마르티나 도이흘러(Martina Deuchler) 교수가 주장한 것처럼, 한국은 여전히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 중 가장 유교적인 국가다. 또한 기독교 가치와 관습을 고수하는 기독교인들 역시 유교 가치와 관습에 매우 호의적이다. 둘째, 한국의 토착화 신학, 즉 유교-기독교적 신학은 새로운 해석학적 틀을 제공하며, 예수를 효자로 해석한다. 비록 예수는 사흘 동안 부모 요셉과 마리아에게 걱정을 끼치는 불효를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효도를 실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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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선 목사는 한국 감리교신학대학교와 에모리대학교 캔들러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M.Div) 학위를 받고, 보스턴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 박사는 (트라우마 전문) 영성 지도자이며 국제영성지도자협회 회원이다. 연합감리교뉴스에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이메일 tkim@umnews.org 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받아 보기를 원하시면, 무료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