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원한 연합감리교인이다

장철우 목사, 제공 장철우 목사.장철우 목사, 제공 장철우 목사.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교단의 동성애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이 문제에 오랫동안 생각해 오던 것을 대답했다.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으나 동성애 대한 문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거의 20여 년 고민해 왔던 문제였고, 세계 전체가 큰 문젯거리로 논의해 왔다. 마침내 내가 속한 연합감리교회에서는 장정 ¶ 2553가 2019년 발효된 이후, 미국 내 30,500개 교회의 약 25%에 해당하는 7,700개 교회가 이 규정을 통해 연합감리교회를 탈퇴했다. 한인 교회 중에서도 40여 교회가 글로벌감리교회로 간 것으로 안다. 

양극화의 대립이 되면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극단의 양극화로 가기 전에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에 치중했다면 갈라지는 현상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친구는 나에게 재차 물었다.

“나는 떠나는데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나는 떠날 수 없고, 감리교인으로서 영원토록 이 교단에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힘 있게 대답했다.

동성애 문제보다 더한 문제가 앞으로 생긴다 해도 나는 끝까지 감리교인으로서 남아 있을 것이고 내 자녀들에게 감리교인의 긍지와 전통을 이어가라고 유언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부모가 큰 잘못을 했다고 나는 당신의 자식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50여 년 전 미국을 향하여 떠날 때, 오로지 연합감리교회를 바라보며 조국 대한민국을 떠났다.

감리교회라는 어머니 품과 같고, 나를 키워줄 아버지와 같이 믿었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50여 년을 살아오며 연합감리교회 목사로서 50여 년 목회하며 뉴욕에서 은퇴하였다.

내 생각과 믿음은 옳다고 믿는다.

나는 1972년 시카고에 도착하여, 1974년 11월 교인 몇 명과 더불어 교회를 개척하였다. 시카고 교외 힌스데일(Hinsdale)에 있는 커버넌트 교회(Covenant Church)의 관리인으로 일을 하고 있었기에 바로 그 교회 사택에서 교회 개척이 시작됐다.

당시 존 윈즈(John Wins)라는 인품이 훌륭한 목사님이 있었는데, 그분은 내가 교회를 개척한 것을 알고 자기 교단으로 오면 교회 건물과 선교후원금도 주고 여러 가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나를 설득했다. 제안은 고마웠지만, 나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즉시 거절했다.

1971년 한국에서 감리교 목사로 안수받았고, 찰스 모리스(Charles D. Morris, 한국명 모리시) 선교사님으로부터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나의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온 4대째 감리교인이고, 나의 당숙인 류형기 감독을 포함한 8명의 목사를 배출한 집안 출신인 나의 자긍심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한 달 후 라그란지(LaGrange)에 있는 감리교회로부터 교회에 딸린 아담한 예배실(Chapel)을 빌릴 수 있었다. 1976년 7월에는 북일리노이 연회에서 라그란지한인제일 연합감리교회(LaGrange First Korean UMC)로 정식 인준(charter)을 받았고, 나는 정회원 목사로 연회에 전입할 수 있었다.

폴 워쉬본 감독. 워시본 감독은 장철우 목사의 영적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장 목사는 워시본 감독의 이름 따서 자신의 영어 이름으로 지었다. 사진은 장 목사가 워쉬본 감독에게서 받은 것이다. 제공, 장철우 목사.폴 워쉬본 감독. 워시본 감독은 장철우 목사의 영적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장 목사는 워시본 감독의 이름 따서 자신의 영어 이름으로 지었다. 사진은 장 목사가 워쉬본 감독에게서 받은 것이다. 제공, 장철우 목사. 

그때 감독님이 폴 워시본(Paul Washburn)이다.

내가 연합감리교회 북일리노이 연회의 정회원 목사로 전입할 때 어려움이 없지 않았으나, 워시본 감독님은 어버이 같은 마음으로 나를 품어주었고, 정회원 목사가 되도록 돌봐주셨다.

나는 지금도 당시 그분이 하신 말씀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고, 지금도 내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나에게 힘이 되고 있다.

"장 목사님, 당신이 기독교대한감리회로부터 연합감리교회 정회원 목사로 전입한 것과 라그란지교회가 연회에 정식 등록하고 인준받은 것은 하늘나라에서 기뻐하고, 천사들이 찬양으로 축하할 것이요."

이 얼마나 힘이 되고 고무해 주는 말이었던가.

나의 학력은 서울에 있는 감신대 졸업이 전부였기에, 학사학위는 미국 내 연합감리교회 기준에는 못 미치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걱정했더니, 워시본 감독님은 “하나님도 목사님의 학력을 이유로 거절하지 않고 받아줄 것입니다. 목사님은 이미 인수받은 목사가 아닙니까? 감독으로서 장 목사님을 기꺼이 정회원으로 받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감독님에게 “목회학석사(Mater of Divinity) 과정을 공부하고 졸업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고, 그로부터 8년 후 목회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연합감리교회는 나를 자식처럼 받아준 것이다.

1982년 일이다. 교회 성장과 부흥으로 장년, 유년, 청년 등 150명이 넘는 교인들을 최대 100명밖에 수용할 수 없는 작은 예배실이 너무 비좁았다.

당시 북일리노이 연회의 감독님은 제시 드윗(Jesse R. DeWitt)이었고, 우리 교회가 속한 지역의 감리사는 리드 목사님이었다.

리드 감리사님은 드윗 감독님에게 우리 교회가 건물이 좁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해결 방안을 상의하였다.

제시 R. 드윗(Jesse R. DeWitt) 감독, 사진, 마이크 두보스, 연합감리교뉴스. 제시 R. 드윗(Jesse R. DeWitt) 감독, 사진, 마이크 두보스, 연합감리교뉴스.  

한 달 만에 북일리노이 연회는 빌라팍(Villa Park)에 있는 애스베리 연합감리교회(Asbury UMC) 건물을 우리가 원하면 양도할 수 있다고 전해왔다. 그때 애스베리교회는 20여 명이 출석하던 백인 교회로 유지가 어려웠다.

마침내 1982년 추수감사절에 우리는 그 교회를 넘겨 받았는데, 1에이커 땅에 벽돌로 잘 지어진 멋진 예배당은 물론이고, 사택을 비롯한 모든 자산과 예금 잔고와 재정 장부로부터 매우 양호한 상태로 관리해 온 부엌의 집기까지 일체 인수하였다.  

애스베리 연합감리교회 백인 교인들이 교회를 우리에게 인수인계하면서 요청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00여 년 전 우리 부모들이 프랜시스 애스베리(Francis Asbury) 감독님을 기리며 이 교회를 이름을 애스베리 교회라고 이름 지었는데, 당신들이 이 이름을 영구히 보존해 주겠습니까?”

드윗 감독님도 똑같이 이를 요청했다.

나는 우리 교회의 교인들과 회의를 거쳐 꼭 ‘애스베리’라는 이름을 보존하겠다는 약속을 감독님과 감리사, 그리고 애스베리 교회 대표들에게 전하고, 인수 절차를 끝냈다.

그 후로도 교회는 계속 부흥했고, 교회 옆에 있던 가정집 2채를 구입하고, 1988년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육관을 건축하였다.

나는 워쉬본 감독님과 드윗 감독님, 그리고 애스베리 교인들을 잊을 수 없다. 나에게는 그들이 곧 연합감리교회이고, 오늘까지 나를 감리교인으로 붙들어주고 있는 믿음의 어버이들이다.

1989년 나는 뉴욕 연회의 햄스테드 한인연합감리교회(Korean UMC, Hampstead)로 파송을 받았다.

그 교회는 분쟁으로 5년 동안 세상 법정에서 다툼을 벌이고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990년 12월, 교회 건물을 포기하고 집 없는 고아 신세가 되었다.

나는 기도하던 중 감독님을 찾아갔고, 연회의 배려로 마침내 플레인뷰 연합감리교회(Plainview UMC)로 파송을 받아, 영어 회중과 한국어 회중 두 회중을 섬기던 중, 다음 해 한국인 회중이 교회의 전 재산을 인수하여, 뉴욕감리교회(Plainview Korean UMC)가 되었고, 지금까지 대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담임 10년 후, 동북부지역선교감리사로 섬기다가, 2000년 그레이스 한인연합감리교회(Grace Korean UMC)에 파송받아 5년 동안 섬긴 후, 65세의 나이에 뉴욕한인교회(Korean Methodist & Institute, Manhattan, NY)로 파송을 받았다.

이 교회는 1921년 4월 18일 창립된 유서 깊은 교회다.

임종순 목사가 장로교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고, 뉴욕에 들렀을 당시, 콜롬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 학생이던 조병옥과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결혼할 때 들러리를 섰던 앤지 그레이엄 킴버랜드(Angie Graham Kimberland ) 여사와 같이 교회를 창립했다.

장로교 소속이었던 임 목사는 장로교에 허입을 물색했으나, 자신이 속한 교단에서 조차 한국인 목사와 한국인 교회를 받아주려 하지 않았고, 다른 교단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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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한국에 감리교 선교사로 나갔던 조오지 허버 존스(George Heber Johns, 한국명 조원시) 목사님이 건강을 돌보며 뉴욕에 머무르던 중 선교부를 섬기고 있었다. 그 존스 선교사님 사모님과 킴버랜드 여사, 그리고 학생이던 조병옥, 하와이에서 온 안정수 그 외 몇 분이 감리교 선교본부를 찾아 교단 가입을 요청했다.

그들의 첫 번 대답이 “어서 오시오, 환영합니다. 무엇이 필요합니까? 교회 건물입니까? 재정 지원입니까? (Welcome, Congratulation, What do you need, church building, or financial support?)”라고 했으니, 당시 창립 교인들의 기분이 어땠을까? 이것이 바로 연합감리교회이고 연합감리교회 정신이다.

나는 2012년 7월 기나긴 목회 생활을 뒤로하고 은퇴하였다.

부모와 같은 연합감리교회의 은급부(Wespath)는 나의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내주고 있다. 이제 나의 나이 90을 바라보며, 내가 섬기다 은퇴한 뉴욕한인교회에 출석하며 믿음을 지키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뉴욕에 독립운동을 한 애국자들이 이 교회를 거쳐갔기에, 그분들의 발자취를 찾아 그분들이 남겨놓은 애국정신과 흔적을 찾으며, 남은 삶을 보람 있게 살고 있다.

무엇보다 나의 고향과 같고, 부모 같은 연합감리교회의 은퇴 목사로서 자긍심과 보람을 갖고 있다. 언젠가 우리 교단이 가지고 있는 동성애 이슈도 나와 같은 연합감리교회의 청지기를 통하여 잘 해결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다시 한번 연합감리교회 은퇴 목사로서 영원한 감리교인이라는 사실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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