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기고문은 지난 2월 6일부터 사흘간 열린 샬롬 아카데미에서 전 세계적으로 고조되는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에 관한 성경공부를 담당한 북조지아 연회 임마누엘 한인연합감리교회 이준협 목사의 글이다. 이 목사는 창세기 1:1-2:4 말씀을 가지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삶: 지구 환경과 온난화”라는 주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성서적 의미와 우리에게 맡겨진 소명이 무엇인지 함께 공부하고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1)
기억하기
한국에서 입대 후 군종 사병으로 복무할 때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똘똘이”라고 불리던 시고르자브 종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었는데, 평소 활달하고 저를 무척이나 좋아하며 잘 따르던 녀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그 녀석이 예배 시간에 교회 안으로 침투를 한 것입니다. 앞에서 예배 사회를 보던 저는 목사님과 연대 간부들 그리고 호랑이 연대장님이 있는 상황이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는데, 한술 더 떠서 송아지만 한 콜리 종인 “이쁜이”와 “튼튼이”까지 가세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저의 걱정은 기우로 끝이 났습니다. 놀랍게도 그 녀석들은 너무나 얌전하게 예배를 참관(?)하고, 축도를 마칠 때까지 앉아 있다가 초코파이까지 받아 갔습니다.
그 후 전역하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특수선교론」이란 수업 시간에 현장 리서치 발표를 하던 중 뉴욕의 대성당 미사에 동물들이 참여하는 모습이 담긴 시청각 자료를 보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집채만 한 코끼리와 기린도 끼어 있었던 모습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는 그 장면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후로 경배와 찬양 그리고 예배가 인간들만의 전유물이란 생각을 버리고, 온 피조물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전에는 우습게만 들리던, 시골로 파송 받은 선배 목사님들의 성도들이 자신의 소나 돼지가 출산할 때 안수 기도를 부탁한다는 말들이 그 이후로는 매우 심각하고 진지하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은 제게 “지구가 인간의 것”이라는 세계관을 뛰어넘어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창조 세계”라는 점을 깊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자도의 영역
영국의 복음주의자로 존경받던 존 스토트(John R.W. Stott)는 그의 말년의 저작 『제자도』에서 이렇게 강조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인간을 위해 세 가지 기본적인 관계를 세우셨다고 말한다. 첫째는 그분 자신과의 관계인데, 그것은 그분이 자신의 형상으로 그들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둘째는 서로와의 관계로 인간은 태초부터 복수였기 때문이다. 셋째는 그분이 그들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신 선한 땅과 피조물과의 관계다.”2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의 영역이 나와 하나님의 관계 그리고 나와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와 나의 관계까지 이어진다고 증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관계 회복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뿐 아니라 신음하는 창조 세계와의 화해를 포함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주요 확산 원인이 ‘지구의 온난화’라는 점을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학자들은 이 영향으로 인해 앞으로 팬데믹이 주기적으로 발생할 것이며, 그 간격 또한 점차 빨라질 것이라는 불안한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장에는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감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관용구처럼 이어집니다. 당신의 창조 세계를 만족하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성경이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완벽하고 그의 피조물에는 미흡함이 없었습니다. 창조 세계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그 아름답고 완벽한 세상을 보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대리자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인간을 세우십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이란 표현에 대해 수많은 의견이 있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① 외형적인 모양을 뜻하는 ‘형상’이란 단어와 유사하지만, 같은 것은 아니기에, 인간의 외모가 하나님을 닮았다는 뜻으로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② 존재론적 해석으로 인간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닮은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양심, 이성, 영혼, 자유의지 등 인간 본래의 자질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뜻입니다.
③ 고대 왕들은 자신이 통치하는 땅의 곳곳에 자기의 형상을 세워 놓고 자신의 통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냈습니다. 따라서 왕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이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며 하나님을 대신해 피조물을 다스린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④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에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예배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얻는 등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에서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역할을 위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기독교 신학은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성경 말씀을 착취와 정복의 뜻으로 해석하여, 자연을 철저하게 이용하고 정복할 대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서구 강대국들은 이 말씀을 자신의 식민지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교리로 이용하였지요.
하지만 본래 “다스리다”(kabash)는 히브리어 동사는 “조화로운 통치를 상징하는 왕권 행사”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마음대로 착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번성하도록 잘 돌보고 지켜줄 책임자로 인간을 세우신 것입니다.
왕이 자기 통치 영역 안의 모든 것을 보호할 의무를 지니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워진 인간 역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자연과도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곳”으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의무를 상기시켜 줍니다.
미국의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W. Brueggemann)은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1장 28절에 등장하는 5개의 짧은 명령어가 이스라엘 민족의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 주어진 희망의 약속이라고 역설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황폐한 역사를 살아가는 이스라엘이 품어야 할 희망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① 생육하라 → 더 이상 자손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② 번성하라 → 더 이상 황폐하지 않을 것이다!
③ 땅에 충만하라 → 더 이상 땅에서 유리되어 살지 않을 것이다!
④ 땅을 정복하라 → 더 이상 종속되지 않을 것이다!
⑤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 더 이상 지배받지 않을 것이다!
이 위대한 약속을 지구 온난화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우리는 어떻게 듣고 있는지요.
삶에서 적용하기
지난번 뉴욕의 후러싱제일교회에서 진행된 평화학교에서는 성경공부 시간을 통해 이 문제를 심도 있게 토론했습니다. 개인의 삶에서, 공동체의 현장에서 그리고 사회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고, 고민하며 나눈 적용점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 교회에서 1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머그잔을 준비하기
• 기후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육식 줄이기
• 무분별한 소비문화와 전력 사용 줄이기
• 기후 위기 해소를 위한 국회의 입법 활동에 동참하기
• 무엇보다 교회의 성도들에게 신앙적 관점에서 교육하기
일부 사람들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합니다. 교회가 이 문제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교회의 노력을 ‘제자도의 영역’으로 규정한다면, 제자들은 개인 삶의 영역에서, 교회 신앙공동체의 영역에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의식 있는 활동과 연대하는 사회적 성화 운동에 동참해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
창세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을 이렇게 묘사하며 가르칩니다.
“혼돈의 세상에 빛과 은총이 가득한 질서가 세워졌다. 그 가운데 혼돈의 세력보다 훨씬 강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라!”
세상의 역사를 보면, 불의와 어둠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욥기의 욥이 항의하듯이 세상은 부조리가 득세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창조의 하나님께서는 혼돈이 창조 세계의 질서를 뒤집어 놓도록 허락하지 않으시고, 어둠이 빛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은 세상의 질서를 온전히 그분의 뜻으로 만들어갑니다. 그래서 ‘창조’와 ‘구원’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을 나누시고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홍해를 가르시며 백성을 구원해 마른 땅을 밟고 건너가게 하십니다. 세상의 질서를 부여하신 하나님의 유일한 주권이 종국에는 사탄의 세력을 진멸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을 실현하시며 창조를 완성해 가실 것입니다. 아멘!
주) 1. 이 글은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 평화위원회와 후러싱제일교회가 발행한 성경공부 교재 『함께 이루어 가는 하나님 나라』 (신앙과지성사) 제2과, 〈생육하고 번성하는 삶〉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이한 것입니다.
2. 존 스토트, 『제자도』,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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