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게 갈채를

박충구 교수(감신대 은퇴교수, 생명과 평화 연구소 소장)  박충구 박사(전 감신대 기독교윤리학 교수, 생명과평화연구소 소장), 제공, 박충구 박사.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많은 이를 크게 놀라게 했다. 대다수 한국 국민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마치 자기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많은 문학 평론가 역시 한강의 쾌거에 감격하여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내로라하는 한국 작가들이 많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언어의 벽을 넘지 못해 그동안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지 못했다. 아시아에서는 1913년 인도의 타고르가 제일 먼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그 후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와 오에 겐자부로(1994)가 수상했으며, 2012년에는 중국의 모옌이 수상했다. 그동안 노벨문학상은 총 121명에게 수여되었지만, 아시아에서는 한강 작가를 포함하여 5명이 수상했다. 그중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는 한강이 유일하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그간 한국 음악과 영화가 세계 무대에서 정상급으로 높이 평가받아 온 맥락에서 본다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간 한국인들은 만일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연륜이 깊은 남성 작가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다소 의외의 사건으로 떨떠름하게 받아들여지는 정황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일부의 견해다. 한국 사회에서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마음이 상한 사람들은 그간 한강을 역사관이 비뚤어진 좌파 지식인이라는 편견을 유포해 오던 이들이었다. 돌이켜보건대 한국 지식인 사회와 종교 영역에서 이런 유의 편견은 오래 묵은 진부한 것이다.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서도 거친 폄훼의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한강 작가에 대한 극우 지식인의 평가

박근혜 정권 시절, 한강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비판적 혹은 견해를 달리한 문화·예술인을 억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밀리에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려 포함되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은 요주의 인물로 취급되어 방송 출연이 금지되거나 정부의 각종 지원을 받지 못하는 등 다양한 불이익을 받았다. 이들은 자유롭게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없도록 공식 혹은 비공식적인 제약을 받았다.

한강 작가가 2016년 노벨문학상에 준하는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때, 대통령이 축전을 보내야 한다는 주변의 권고를 박근혜 대통령은 무시했다. 그런가 하면 경기도 교육청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청소년 유해 도서로 분류하여 폐기까지 하였다. 문학적 작품성에는 눈 감은 채 부도덕하고 선정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는 단세포적 이유였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에 반가움보다는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인 이들은 평소 정치적으로 극우적 행태를 보이며 그가 누구든지 일단 좌파로 간주하면 인간 이하로 취급한 이들이었다.

가장 먼저 냉소적 반응을 보인 사람은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김규나였다. 그녀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터무니없는 것이라며 차라리 중국 작가가 수상했어야 했다. 한강은 국가 권력이 죄 없는 광주 시민을 학살했고, 무고한 제주 양민을 학살했다고 소설마다 담아냈다.”라고 비판하면서 “이런 작가에게 상을 준 노벨상 심사위원들도 대한민국의 존재를 부정한 셈”이라고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언론인 손상대도 나서서 “한강은 역사를 왜곡하고 노벨상을 받았다. 한국 역사에 무지한 스웨덴 한림원이 잘못한 것이다.”라며 김규나를 편들었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5·18과 4·3에 대하여 면밀한 조사 끝에 국가 권력의 오용 결과라고 공식적으로 판단하고 사죄한 동시에 배상해 온 역사적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 한다.

심지어 전 월간조선 편집장 조갑제는 “한강은 위험한 소설가”라고 단정적으로 낙인을 찍으며 “한국전을 대리전이라고 인식하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한강 작가의 역사관은 위험하다”라고 방송에서 주장했다.

전직 안기부 직원인 정치인 이동복은 “작가 한강의 젖내 나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반박한다”라는 글을 재차 SNS에 올리면서 “한반도에서 대리전쟁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주장은 종북적 사고”라고 단정 짓고 “대다수 한국 국민은 북한의 핵 도발을 기필코 저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쟁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념적 공포를 조장해 공상적 피해 상황을 전제하고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정당화하려 드는 이들과 달리 전쟁과 폭력이 없는 평화 상태를 염원하는 작가의 소망은 무가치해 보인 것이다.

한강 작가 자신과 그녀의 작품에 대한 더 노골적이고도 무례한 비판은 극우적인 개신교 목사들에게서 쏟아져 나왔다.

전 총신대 총장을 지낸 정성구는 독재자 이승만을 예찬하고 독재자 박정희의 치적을 자랑하면서, “그들이 이룬 한강의 기적을 작가 한강이 망쳤다.”고 선언했다. 그는 심지어 근래 세계적으로 호평 받는 “한국 영화 대부분이 마르크스주의와 좌파 사상에 물들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사상을 저주하며, 평등만을 주장하면서 가진 자를 저주하고, 국가의 공권력을 비웃는 작품들”이라고 폄하했다.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 역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좌익사상 일변도의 세상이 광풍처럼 닥칠 것 같아 걱정”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들의 언동을 보면 한국 개신교 일부가 이 시대의 보편 지성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게토에서 얼마나 비상식적인 이념적 편견과 도덕적 편견을 유통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외진 극우의 막다른 골목에서 자기만 옳고 세상은 모두 틀렸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격이다. 한국 개신교 일부 목사들은 이렇듯 심각한 비지성적 가치판단의 오류를 신도들에게 유포하고 있다.

 

작가 한강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

한강의 소설을 번역해 영어권에 출간한 이들이 없었다면 한강의 소설은 세계인들에게 읽히지 못했을 것이다.

한강 소설의 국제화는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문화의 힘은 언어의 벽을 넘어야 제대로 펼쳐지는 법이다. 한강의 소설을 번역한 페이지 애니야 모리스는 “한강의 작품은 한 세대의 한국 작가들이 더욱 진실하고 대담하게 주제를 다루도록 영감을 주었다… 한강은 검열과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에 몇 번이고 용감하게 맞서왔으며, 매번 더욱 강하고 흔들림 없는 작품으로 자신을 침묵시키려는 시도에서 벗어났다.”라고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밝혔다.

영국에서 <희랍어 시간>을 번역 출간한 출판사 헤이미시 해밀턴의 출판 디렉터 사이먼 프로서는 “한강은 탁월한 아름다움과 명확성으로 쓴 글을 통해 잔인한 행위와 사랑의 행위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종(種)인 인간이 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고통스러운 질문에 단호하게 직면한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영국에서 출판하는 데 관여한 영국 소설가 맥스 포터는 “한강은 특별한 휴머니티의 작가이자 필수적인 목소리이며 그의 작품은 우리 모두에게 선물”이라며 “그가 노벨위원회의 인정을 받아 너무나 기쁘다.”라며 극찬했다.

세계 언론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하여 아시아 여성 최초의 사건임을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지는 “그의 소설, 단편소설, 에세이 등은 가부장제, 폭력, 슬픔, 인간성이라는 주제를 다양하게 탐구했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지난해 인터뷰한 기사를 링크했는데, 한강 작가를 두고 “그에게 글쓰기는 일종의 순수한 충동이다. 작가에게 ‘폭력의 편재성(omnipresence)’이라는 문제는 어린 시절부터의 고민거리였다.”라고 평가했다.

한강이 한국 문화 속에 깊이 내재한 가부장제적 폭력성을 드러낸 것이나, 국가 폭력에 의해 무고한 시민이 무수히 죽임을 당한 제주 4·3이나 광주 5·18의 참극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소설의 주제로 삼은 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노벨문학상을 심사한 스웨덴 한림원의 수상자 선정 이유를 주목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썼다.”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한강은 육체와 영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보다 더 명확하게 한강의 작품 세계를 요약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문학적 지성을 거부하는 편견적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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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문학성은 이미 그녀가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하던 대학생 시절부터 두드러졌다. 그녀는 1993년 잡지 『문학과 사회』에 다수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고, 1995년에는 단편소설집 <여수의 사랑>으로 산문 데뷔를 했다. 그리고 연이어 여러 산문 작품을 발표했다. 2007년 한강은 가부장제적 문화와 폭력 속에서 타아(他我)가 되어가는 영혜를 그린 소설 <채식주의자>로 국제 문단에 데뷔했다. 특히 2014년에 발표한 소설 <소년이 온다>와 2021년에 발표된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반도에서 국가 권력에 의해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루었다.

이런 작품들 속에서 한강은 인간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모든 폭력의 잔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스웨덴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장 안데르스 올손은 “한강 작가의 작품은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의 이중적 노출, 동양적 사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고통의 대응이 특징”이라고 하였다.

54세인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서 매우 젊은 편에 속하지만, 그간 그녀가 수상한 내용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국내외적으로 탁월한 작가로 인정받아 왔는지 알 수 있다.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한국소설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맨부커 국제상, 말라파르테 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인촌상, 용아문화대상, 김만중 문학상, 메디치 외국문학상, 삼성호암상에 이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의 극우 인사들은 문학도 이념 정치에 의해 검열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역사를 읽을 때도 이념적 이유만 있다면 사람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죽여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제주 4·3이나, 광주 5·18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어떤 이는 국가 폭력에 비참하게 희생된 이들을 애도하는데, 어떤 이는 애도조차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국가 폭력을 편드는 잔인성을 내재한 이들이 자유 대한민국을 외치는 아이러니도 넘쳐난다. 나는 이런 태도를 일종의 무서운 정치적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동료 인간을 인간 이하로, 심지어 박멸 대상으로 취급하는 잔인함을 낳는 편견이다. 작가 한강은 이런 검열과 폭력을 일상화하는 비인간성을 그녀의 문학 작품 속에서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일부는 자유를 지키겠다며 마치 대심문관이라도 된 듯 그녀의 문학을 검열하려 든다. 이들은 2017년, 당시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미국인을 안심시키려 “미국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아닙니다. 남의 나라,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하루 2만 명씩 죽을 것”이라고 막말했던 사실에 대해 한강이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라고 썼다고 눈을 부라린다. “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 실행된 이념적 대리전“이었다는 한강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녀의 역사관이 비뚤어졌다고 비난한다. 천박한 이념에 사로잡혀 외눈박이처럼 원근도 분별하지 못하는 눈으로 지성과 문학의 세계를 자의(恣意)로 재단하며 대심문관 노릇을 하는 이들이 극우적 지식인이다.

 

작가 한강에게 갈채를!

한 전직 여성 아나운서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이렇게 썼다. “끔찍한 것은 끔찍하다. 의미 있는 것을 의미 있다고,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이야기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다.” 이념적 편견을 앞세워 사람을 무차별 학살하기도 했던 사회에서 진실을 그대로 말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그 용기를 한강은 지니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그녀의 소설들이 서점가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온 세계가 한글로 쓰인 그녀의 소설을 자기네 말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이미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세계가 한국어가 원문인 한강의 소설을 읽으며 인간됨에 대하여 스스로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생전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모국어로 읽는다. 우리는 그녀가 쓴 소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언어적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한강의 소설이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데에는 다양한 숙고가 있었으리라 짐작하지만 나는 작가 한강의 산문적 글쓰기의 정밀함과 아름다움 속에 동료 인간을 하위 존재라 여기는 편견적 인간들의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한반도에서 지속되어 온 이념 전쟁의 가학적 폭력성과 그 비인간성을 여실히 폭로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 주제는 동료 인간에 의해 살해당하는 인간의 비참함에 대한 깊은 연민과 동정, 그리고 분노를 넘어서 폭력성이 없는 순수한 평화에 대한 깊은 열망이 없이는 다룰 수 없는 것이다. 다시 한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Thomas E. Kim) 목사에게 이메일 tkim@umnews.org  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받아 보기를 원하시면, 무료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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