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세상의 빛이었던 연합감리교인들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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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개월간 연합감리교인들은 전설적인 미국프로풋볼(NFL) 코치이자 사랑받는 현대 기독교 음악가였던 교단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 감독과 바이블(Bible)이라는 이름의 목사를 추모해왔다.

이 기사는 2021년 말에 소천하신 4분과 2022년에 소천하신 40분을 기억하며, 소천하신 날짜순으로 작성된 추모의 글이다.

 

다엘 T. 웨이스트 목사(Rev. DarEll T. Weist)

The Rev. Darell T. Weist. Photo courtesy of the United Methodist Commission on Archives and History.사진, 다엘 웨이스트 목사. 연합감리교회 역사보존위원회 제공.

목회자와 선교사로 헌신했던 연합감리교회의 역사학자이자 아동문학 작가인 다엘 웨이스트(DarEll T. Weist) 목사는 2021년 12월 10일 심장마비로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서 81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웨이스트 목사는 노스다코타에 위치한 복음주의연합형제교회(Evangelical United Brethren Church)에서 성장했다. 웨이스트 목사의 친구들은 1968년 복음주의연합형제교회와 감리교회가 통합하여 연합감리교회로 출범할 때부터 그가 “뼛속까지 연합감리교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웨이스트 목사는 시에라리온(Sierra Leone)의 한 신학교에서 선교사로 사역했으며, 중서부를 비롯한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목사로 섬겼다.

연합감리교회의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던 웨이스트 목사는 연합감리교회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가 소천하기 전까지 맡았던 캘리포니아-태평양 연회(California-Pacific Conference)의 역사학자 지위를 회복시키고, 개체 교회 역사학자들을 훈련하기 위한 연합감리교회 역사보존위원회(United Methodist Commission on Archives and History) 과정을 신설했다. 이렇게 그는 장기 휴면 상태였던 연회의 감리교역사학회(Methodist Historical Society)를 부활시켰다.

서부 지역총회 역사보존위원회의 위원장을 역임했던 웨이스트 목사는 교단 역사보존위원회의 회원이 되었으며, 총회가 승인한 교단의 소중한 자산인 유적지에 관한 기관의 상임위원회 의장을 맡기도 했다.

웨이스트 목사와 함께 사역했던 기관의 은퇴한 총무인 알프레드 데이 목사(Rev. Alfred T. Day III)는 “역사보존위원회의 회원으로서, 그의 강한 추진력은 미국 밖에 위치한 유적지들에 대한 관심도 고양시켰습니다.”라고 말하며, “그의 또 다른 측면은 그가 복음주의연합형제교회의 매우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우리가 그 유산을 잊지 않도록 항상 역사에 복음주의연합형제교회를 포함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조니 이삭슨 미 상원의원(U.S. Sen. Johnny Isakson)

U.S. Sen. Johnny Isakson. Photo by U.S. Senate Photographic Studio-Renee Bouchard courtesy of Wikimedia Commons.사진, 조니 이삭슨 미 상원의원. U.S. Senate Photographic Studio-Renee Bouchard, 위키미디어 커먼스 제공.

조니 이삭슨(Johnny Isakson) 전 미 상원의원은 정치색이 다른 양당에서 선출된 정당의 지도부들과 협력하여 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많은 연합감리교인은 그를 마리에타(Marietta) 시온연합감리교회(Zion United Methodist Church)의 주일학교에서 30년간 6학년을 담당하여 지도했던 신실한 성도이자 조지아 공화당원으로 기억한다.

이삭슨은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다 2021년 12월 19일 76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이삭슨은 조지아주 공군 방위군(Georgia Air National Guard)에서 복무한 후, 부동산 중개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설립한 소규모 사업체인 노스사이드부동산(Northside Realty)의 첫 번째 콥 카운티(Cobb County) 사무소를 열고, 22년간 그 회사의 사장으로 근무했다.

1974년 조지아주 공화당에 입당한 이삭슨은 조지아 입법부에서 17년, 조지아 교육위원회에서 3년간 의장을 역임했다. 1999년 자신의 3선 하원의원의 첫걸음을 뗀 후 그는 2004년 상원의원에 당선되어 2019년 12월 은퇴하기까지 상원에서 의원직을 수행했다.

의회에서, 이삭슨은 초당적 교육법인 아동낙오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의 제정을 도왔을 뿐 아니라 이후 이 법안의 개정에도 공헌했으며, 재향군인들의 복지와 이민 정책 및 보건의료를 위해서도 일했다.

이삭슨은 또한 킹 목사가 시무했던 애틀랜타 에벤에셀침례교회(Ebenezer Baptist Church)에서 매년 주최한 마틴루터 킹 주니어의 날(Martin Luther King Jr. Day) 기념행사에 정기적으로 참석한 몇 안 되는 공화당원 중 한 명이었다.

또한 다양한 일로 바쁜 와중에도 그는 모교회인 시온산연합감리교회(Mt. Zion United Methodist Church)에 계속해서 헌신했다.

전임 부목사였던 캐시 랩코(Cassie Rapko) 목사는 이삭슨이 상원의 업무로 인해 매 주일을 마리에타에서 보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그가 시온산연합감리교회의 예배당 뒤편에 앉아 예배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시온산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인 하든 호퍼(Harden Hopper) 목사는 그가 또 다른 방식으로 회중을 섬겼다고 말했다.

“시온산 성도들이 캠퍼스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할 때, 조니는 교회와 인접한 부동산을 취득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유명 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조니가 성도들에게 보여줬던 겸손한 태도는 자기 자신을 드려 섬기는 훌륭한 본보기로 기억됩니다.”

 

잭 데일 미들턴(Jack Dale Middleton)

Jack Dale Middleton. Photo courtesy of the New York Conference.사진, 잭 데일 미들턴. 뉴욕 연회 제공.

잭 데일 미들턴(Jack Dale Middleton)은 오클라호마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 시절에 제인 스튜어트 앨런 감독(Bishop Jane Stewart Allen)이 컨버터블 차 뒤쪽에 앉아 신입생 총무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그가 자신의 82세 생일날인 2021년 12월 22일 플로리다 폼파노(Pompano)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60년 2개월 1주 동안 계속되었다.

그의 아내(지금의 제인 미들턴(Jane Middleton))가 연합감리교회의 안수받은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의 아내와 함께 오클라호마에서 코네티컷으로 이사하여, 그녀가 예일신학대학원(Yale Divinity School)에 다닐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제인 미들턴이 다양한 목회지를 섬기다 감독으로 피선된 후, 그들은 미국 동부를 그들의 고향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녀가 사역하는 동안 잭 미들턴은 처음에는 하트포드 가톨릭 대교구(Catholic Archdiocese of Hartford)에서, 나중에는 도시의 에실룸힐이웃조직(Asylum Hill Neighborhood Organization)에서 빈민 구호를 위한 도시 계획 및 조직을 위해 힘썼다.

잭 미들턴은 또 볼리비아 코차밤바(Cochabamba)에 있는 12개에 달하는 선교팀에서 자원봉사 했으며, 뉴욕 연회의 아프리카대학교(Africa University) 장학금 모금 프로젝트와 목회자 연금 기금 마련 방안도 주도했다.

이러한 섬김에 못지않게, 자동차에 대한 그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으며, 친구들은 그를 언제 만나도 반가운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함께 식사할 때면, 그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이야기로 우리를 즐겁게 했습니다. 하지만 잭은 함께했던 특별한 시간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릴 만큼 진지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정말로 놀라운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라고 현 뉴욕 연회 총감독회 회장, 토마스 J. 비커튼(Thomas J. Bickerton) 감독은 말했다.

 

윌버 쵸이 감독(Bishop Wilbur Choy)

Bishop Wilbur Choy. Photo by Mike DuBose, UM News.사진, 윌버 왕 얀 쵸이 감독. 마이크두보스, 연합감리교뉴스.

반세기 전, 윌버 왕 얀 쵸이(Wilbur Wong Yan Choy) 감독은 연합감리교회의 첫 번째 아시아계 미국인 감독으로 피선되어, 전국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연합감리교인들은 쵸이 감독이 자신을 위한 길을 개척했을 뿐 아니라, 교회 전반에 있는 민족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더 다양한 지도자들을 위해 문호를 활짝 열어주었다고 말하며, 친구들은 또한 그를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으로 기억한다.

쵸이 감독은 2021년 12월 28일 시애틀에서 103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수년에 걸쳐 그가 했던 사역의 영향으로 그는 자신이 감독으로 피선되기 전보다 민족과 인종이 다양하고 풍성한 교회로 성장시킨 유산을 남겼다.

중국 이민자의 아들인 쵸이 감독은 그의 사역 초기에 한국인과 중국인 그리고 필리핀인으로 구성된 캘리포니아-동방 잠정 연회에서 장로 목사로 섬기다 1952년에는 잠정 연회를 지역으로 구분된 감리교 연회와 통합하는 작업을 주도했던 통합위원회의 의장을 맡았다.

2년의 세월이 흐른 뒤, 쵸이 감독은 중국인 감리교회와 백인과 흑인 교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던 교회를 통합하여 다인종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고, 1969년에는 백인이 주를 이루는  지방의 감리사가 되어 연합감리교회 최초의 중국계 미국인 감리사가 되었다.

1972년 쵸이 목사는 서부 지역총회 감독으로 피선되어, 1984년에 은퇴하기 전까지 태평양북서부 연회(Pacific Northwest Conference)를 8년, 캘리포니아-네바다 연회(California-Nevada Conference)를 4년간 이끌었다. 그는 또한 은퇴하기 직전인 1983-84년에 총감독회 회장으로 봉사했다.

쵸이 감독이 은퇴하던 해에 최초의 일본계 감독이자 두 번째 아시안 감독으로 피선된 로이 사노(BRoy Sano) 감독은 그를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쵸이 감독이 모든 사람에게 주를 아는 기쁨과 은총을 전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 메시지는 정말 전파력이 강했다.”

 

댄 리브스(Dan Reeves)

Dan Reeves. Photo courtesy of Dignity Memorial.사진, 댄 리브스. Dignity Memorial 제공.

다니엘 에드워드 리브스(Daniel Edward Reeves)는 미국프로풋볼(NFL) 선수이자 코치로서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슈퍼볼 2회 우승을 비롯한 200회 이상의 우승과 50회 플레이오프 출전 및 아이스 볼(Ice Bowl)에서 던진 전설적인 터치다운 패스를 기록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의 이름은 조지아, 콜로라도, 사우스캐롤라이나, 텍사스에 있는 스포츠 명예의 전당(The Sports Halls of Fame)에 올라가 있다.

리브스와 동역한 연함감리교인은 그가 명성이 높아질수록 가장 중요한 것,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집중했다고 말한다.

댈러스 카우보이스(Dallas Cowboys), 덴버 브롱코스(Denver Broncos), 뉴욕 자이언츠(New York Giants), 애틀랜타 팰컨스(Atlanta Falcons) 등지에서 38년의 프로풋볼 경력을 쌓았던 리브스는 2022년 1월 1일 애틀랜타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77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리브스는 조지아 아메리쿠스(Americus)에서 성장했다. 고등학생 시절 조지아 풋볼 올스타 경기에서 MVP를 수상했고,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University of South Carolina)에서 장학금을 받았지만, 그는 항상 고등학교 때 그가 한 일 중 제일 잘한 일은 신입생 치어리더였던 팸 화이트(Pam White)와 데이트한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57년간 결혼 생활을 영위했다.

리브스는 침례교단에서 성장했지만, 연합감리교회에서 자신의 길을 찾았다. 애틀랜타 피치트리로드연합감리교회(Peachtree Road United Methodist Church)에서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는 빌 브릿(Bill Britt) 목사는 리브스가 댈러스 카우보이스에서 선수로 뛰는 동안 러버스레인감리교회(Lovers Lane Methodist Church)에서 주차 위원으로 섬겼으며, 오프시즌에는 주일 아침마다 주차하는 교인들을 기쁨으로 도왔다고 전했다.

브릿 목사는 교회가 리브스에게 간증을 부탁하거나 기금 모금 행사에서 교인 대표로 섬기는 일을 요청했을 때,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기독교운동선수협회(Fellowship of Christian Athletes)의 평생 후원자였다.

“댄은 여러분의 입장이 되어, 여러분과 함께 아파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거대한 야망을 품은 사람들은 때때로 그것을 다스릴 신실함이 부족했고, 또 다른 야망을 품은 신실한 사람들은 종종 겸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댄은 야망과 신실함 그리고 겸손함을 모두 갖춘 보기 드문 사람이었습니다.”

 

제이 위버(Jay Weaver)

Jay Weaver. Photo courtesy of Big Daddy Weave.사진, 제이 위버, 빅대디위브 제공.

빅대디위브(Big Daddy Weave)의 베이스 기타 연주자인 제이 위버(Jay Weaver)는 밴드가 “Every Time I Breathe”나 “Redeemed”와 같은 곡으로 현대 기독교 음악 차트의 1위에 오르도록 도왔다.

그는 또한 플로리다 걸프 브리즈(Gulf Breeze)에 소재한 세인트폴연합감리교회(St. Paul United Methodist Church)에서도 유명 인사로 통했다.

위버는 수년간 투병하다 코로나19 합병증으로 2022년 1월 2일 42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위버와 그의 형은 세인트폴교회에서 성장했고, 십 대 때부터 예배를 인도했다. 몸집이 크고 수다스러웠던 두 형제는 데이브매튜스밴드(Dave Matthews Band)와 음악적으로 필적이 되는 빅대디위브(Big Daddy Weave) 밴드의 핵심 멤버였다. 1998년 결성된 이 밴드는 2001년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하고, 20년 넘게 여전히 히트곡을 내며, 해외 공연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제이 위버는 당뇨로 고생하다 2016년 발을 절단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신장 투석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그는 공연과 밴드 사업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그의 동역자들은 그가 믿음 안에서 유머 감각과 기쁨을 잃지 않았다고 그를 회고했다.

“너무나 많은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음에도 그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웃음을 잃지 않고 여전히 기뻐했습니다. 슬픈 상황에도 여전히 웃을 수 있고 함께 있는 걸 즐길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고통에 대한 승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라고 세인트폴교회의 담임인 크리스티나 쉐버(Christina Shaver) 목사는 말했다.

 

스티븐 딜 목사(Rev. Stephen Dill)

The Rev. Stephen Dill. Photo courtesy of Frye Gaillard.사진, 스티븐 딜 목사. 프라이 게일라드 제공.

타고난 설교자로 알려진 스티븐 딜(Stephen Dill) 목사는 앨라배마 모빌(Mobile) 다우핀웨이연합감리교회(Dauphin Way United Methodist Church)에서 담임목사로 섬기던 18년을 포함해, 40년간 앨라배마-서부플로리다 연회(Alabama-West Florida Conference)에서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딜 목사는 2022년 1월 14일 93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앨라배마에서 출생한 딜 목사는 일찍이 1960년대부터 민권(civil rights)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해왔지만, 사역하는 동안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특히 인종차별의 죄에 대한 강력한 설교로 유명했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그가 속했던 연회와 자신이 목회했던 교회를 비롯해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에서도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세기가 바뀔 때, 그는 모빌(Mobile) 시에서 기독교의 2천 년 역사를 축하하는 초교파적 기념행사인 ‘Celebration 2000’의 회장을 맡았다.

연합감리교인이자 저명한 작가인 프라이 게일라드(Frye Gaillard)는 딜 목사의 설교를 수집하여, 딜 목사의 저서 “The Poetry of Faith: Sermons Preached in a Southern Church”의 서문을 쓰기도 했다.

게일라드는 연합감리교뉴스(UM News)에 보낸 딜 목사에 대한 헌사에, “스티븐은 적어도 신비의 근원이자 신비로운 임재로서 내가 이해하는 신앙을 구체화한 연합감리교회의 목사였습니다.”라고 썼다.

 

에시 벨필드(Essie Bellfield)

Essie Bellfield. Photo courtesy of The Record.사진, 에시 벨필드. The Record 제공. 

텍사스 오렌지(Orange,TX) 시 최초의 흑인 여성 시장이었던 에시 벨필드(Essie Bellfield)는 2022년 1월 23일 89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그녀는 18,000명의 텍사스 남동부 지역사회에서 민권(civil rights) 향상을 위해 힘썼던 신실한 연합감리교인이었다.

벨필드는 루이지애나 배턴루지(Baton Rouge)의 서던대학교(Southern University)를 졸업한 후 텍사스 갤버스턴(Galveston)에 소재한 병원의 시설 관리과에서 일했다. 벨필드가 불의에 대한 투쟁을 시작한 것은 그녀가 피부색 때문에 텍사스 마을 공원 의자에 앉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라고, 오렌지리더(The Orange Leader)는 보도했다. 그녀는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성공적으로 공원을 개방한 후, 오렌지 시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벨필드는 수년간 오렌지메모리얼병원(Orange Memorial Hospital)의 시설 관리과를 이끌며 젊은 시절을 보냈고, 지역사회 내 민권과 여성 단체에도 관여했다.

마침내 벨필드는 오렌지시의회(Orange City Council)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7년 당시 시장의 사망으로 시장에 지명된 그녀는 1998년 시장으로 임명되었고, 2000년 시의회에 복귀할 때까지 시장직을 수행했다.

그녀의 죽음에 많은 시민단체의 지도자들이 앞다투어 애도의 뜻을 밝혔다.

벨필드의 대녀(goddaughter)인 마리 샌더스(Marie Sanders)는 KBMT(편집자 주: 텍사스 지역의 지역 방송국)에 다음과 같이 전했다. “벨필드 여사는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섬겼던 살렘연합감리교회(Salem United Methodist Church)와 그녀의 자녀들과 손자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지역 사회를 사랑했고, 그녀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인만 무어 목사(Rev. Inman Moore)

The Rev. Inman Moore. Photo courtesy of Legacy.com/San Gabriel Valley Tribune.사진, 인만 무어 목사. Legacy.com/San Gabriel Valley Tribune 제공. 

미시시피주 빌록시(Biloxi)에 있는 이름난 교회의 목사인 르우벤 인만 무어 주니어(Reuben Inman Moore Jr.)는 1963년 27명의 백인 감리교 목회자들과 함께 “신념의 탄생(Born of Conviction)”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분리주의적 사회가 지속되는 것에 항거한 이 성명은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일부 서명자들은 출석하던 교회에서 쫓겨났을 뿐 아니라, 그중 몇몇은 살해 위협까지 받게 되었다. 무어 목사 역시 캘리포니아-태평양 연회(California-Pacific Conference)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

무어 목사는 90세가 되던 해에 출간한 자서전 “민권으로 가는 길(On the Road to Civil Rights)”에 자신의 경험을 시간의 순서대로 기록했다.

무어 목사는 2022년 1월 26일 캘리포니아 패서디나(Pasadena)에서 96세에 소천했다.

남부 미시시피에서 감리교 목사의 아들로 성장한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해군으로 복무한 후,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시시피에서 지냈던 그는 조기 은퇴하기까지 캘리포니아에서 연합감리교회의 목사로 사역했다. 또한 그는 은퇴 후에도 부름을 받을 때마다 시간제 목회자로 섬기며, 고인이 된 아내 넬리(Nellie)와 함께 무어 밴딩(Moore Vending)과 토너먼트 기념품(Tournament Souvenirs)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73년간 이어졌다.

그의 오랜 친구인 마크 트로터(Mark Trotter) 목사는 무어를 “사랑받는 목회자이자 탁월한 설교자이고, 성공적인 사업가이자 헌신적인 친구”로 표현하며, “무어는 그와 함께하는 모든 공동체의 삶에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힘썼다.”라고 전했다.

 

브래드 브래디 목사(Rev. Brad Brady)

The Rev. Brad Brady. Photo courtesy of Deal Funeral Directors.사진, 브래드 브래디 목사. Deal Funeral Directors 제공. 

르머 로간 “브래드” 브레디 3세(Remer Logan “Brad” Brady III) 목사는 고향인 남동부 지역총회를 비롯한 교단 전체의 사역을 일궜다.

브래드 목사는 2022년 2월 7일 68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그가 소천할 당시, 은퇴 목사는 교단 전체의 사역을 조정하는 리더십 기구인 연대사역협의회 (Connectional Table)의 회원이었으며, 그 또한 자신이 2009~2012년에 사역했던 남동부 지역총회(Southeastern Jurisdictional Conference)의 총무로 새로운 임기를 막 시작하고 있었다.

40년 넘게 사역하는 동안, 브래드 목사는 남조지아(South Georgia Conference) 연회에서 여러 지역으로 파송을 받았으며, 다양한 지도자 역할도 맡았다. 그는 연회 내 유권자들에 의해, 총회와 남동부 지역총회의 대의원으로 여러 번 선출되었으며, 평화 장교 성직자(peace officer chaplain)로서 법 집행을 조언하고, 애틀랜타(Atlanta) 에모리대학의 캔들러신학대학원(Emory University’s Candler School of Theology)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브래드 목사는 2021년 6월 조지아 페리(Perry)에 소재한 페리연합감리교회(Perry United Methodist Church)의 담임목사로 은퇴했지만, 폭넓은 교회의 연대를 위해 사역을 이어갔다. 그는 연대사역협의회를 통해 교단의 총회 기관에 대한 평가 기준을 설정하는 일을 도왔으며, 다가오는 총회 전에 교단의 예산을 책정하는 사역도 담당했다.

연대사역협의회 의장인 크리스천 알스테드(Christian Alsted) 감독은 성명을 통해, “브래드는 개체 교회와 전 세계 연합감리교회의 사역을 성장시키는 데 헌신했습니다. 그는 따뜻하고 친절하며 통찰력 있는 목회자이자 연대사역협의회의 헌신적인 회원이었습니다.”라고 그를 회고했다.

 

마조리 투엘(Marjorie Tuell) 

Marjorie Tuell.    Photo courtesy of the Pacific Northwest Conference.사진, 마조리 투엘, 퍼시픽-노스웨스트 연회 제공. 

고(故) 잭 M. 투엘(Jack M. Tuell) 감독의 아내, 마조리 “마지” B. 투엘(Marjorie “Marji” B. Tuell)은 자신의 96번째 생일로부터 불과 며칠 후인 2022년 2월 9일 소천했다.

그녀는 간호학과 학생이던 1945년, 미 육군 항공대에 복무하던 남편을 만나 6주 만에 약혼했다. 두 사람은 세 자녀를 낳고, 68년 동안 결혼 생활을 영위했다.

1950년 투엘은 퍼시픽-노스웨스트 연회(Pacific Northwest Conference)에서 시작된 남편의 목회 사역에 함께했다. 남편이 목사나 지방감리사로 파송 받았을 때나 1972년 감독으로 피선되었을 때도 그녀는 항상 그와 함께했다. 그녀의 남편인 잭 투엘 감독은 오리건-아이다호 연회(Oregon-Idaho Conference)를 이끌다 1992년 캘리포니아-태평양 연회(California-Pacific Conference)로 재배치되어 은퇴할 때까지 그곳을 주재했다.

투엘에게는 자신만의 사역이 있었다. 그녀는 교회 성가대를 지휘했고, 교회 음악과 교육 분야에서 학위를 받았다. 이후 찬송가 연구 분야에서 존경받는 전문가가 된 투엘은 연합감리교회와 관련된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Claremont School of Theology)에서 강의했고, 연합감리교회 찬송가(The United Methodist Hymnal) 1989년 판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왔다.

현재 퍼시픽-노스웨스트 연회(Pacific Northwest Conference)와 오리건-아이다호 연회(Oregon-Idaho Conference) 그리고 알래스카 연회(Alaska Conference)를 이끄는 JW 스타노브스키(JW Stanovsky) 감독은 “마조리 투엘은 찬송가를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찬송가가 어디에서 왔고, 우리 심령의 어떤 현을 당기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당신이 사랑하는 찬송가를 통해,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단 스탠튼 목사(Rev. Nathan Stanton)

The Rev. Nathan Stanton. Photo courtesy of Ryan Mortuary and Crematory.사진, 나단 스탠튼 목사. Ryan Mortuary and Crematory 제공. 

나단 스탠튼(Nathan Stanton) 목사는 자신이 근위축성측삭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으로 움직임에 제한이 있었음에도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방법을 찾았다.

그레이트플레인즈 연회(Great Plains Conference) Congregational Excellence에서 총무로 섬기던 스탠튼 목사는 흔히 루게릭병이라 불리는 ALS로 약 19개월간 투병하다 2022년 3월 12일 52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친구들은 그가 병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긍정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믿음 안에서 동료 사역자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꾸준히 격려했다.

연합감리교 목사의 아들로 자란 스탠튼 목사는 처음에는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그는 결국 목사 안수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14년간 개체 교회들을 섬긴 후 그는 그레이트플레인즈 연회(Great Plains Conference) 교회개척부(New Church Development)의 코디네이터로 임명되었고, 그 직책을 맡은 4년 동안 13개 교회의 개척을 도왔는데, 대부분이 흑인이나 히스패닉 또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교회였다. 그는 또한 2017년 연회의 지도자를 맡아 사역했었다.

교회 개척과 부흥에 헌신했던 것처럼, 스탠튼은 27년간 아내 브렌다(Brenda)와 세 아들 노아(Noah), 이삭(Isaac), 엘리(Eli)에게도 매우 헌신적인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의 친구인 세인트폴연합감리교회(St. Paul United Methodist Church)의 에이미 리폴트(Amy Lippoldt) 목사는 그레이트플레인즈 연회에서, “스탠튼은 끊임없이 격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겐 루게릭병을 진단받기 전부터 가졌던 습관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사람들을 격려할 때면, 음향 조절 다이얼을 10까지 올린 것 같았다는 점입니다.”라고 말했다.

 

토마스 H. 트로거 목사(Rev. Thomas H. Troeger)

The Rev. Thomas H. Troeger. Photo by Jean Santopatre, courtesy of Yale Divinity School.사진, 토마스 트로거 목사, Jean Santopatre, Yale Divinity School 제공. 

연합감리교회와 관련된 아일리프신학대학원(Iliff School of Theology)에서 설교학을 가르쳤고, 예일신학대학원(Yale Divinity School) 종교음악원의 랜츠(Lantz) 명예교수였던 토마스 H. 트로거(Thomas H. Troeger) 목사는 오랜 투병 끝에 2022년 4월 3일 77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트로거 목사는 설교, 시, 찬송가, 예배 등을 다룬 24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그중에는 연합감리교회 출판부의 어빙돈출판사(Abingdon Press) 책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또한 플루트 연주가이자 시인이었는데, 그의 작품은 다른 여러 교단의 찬송가에 등장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성가 합창곡에 메시지를 제공하기도 했다.

1989년 판 연합감리교회 찬송가에는 그가 작곡한 곡들이 다수 실렸는데, 그중에 “Source and Sovereign, Rock and Cloud”와 “Silence! Frenzied Unclean Spirit”은 조현병을 앓았던 자신의 형에게서 영감을 받은 곡들이다.

어빙돈출판사의 부출판인인 폴 프랭클린(Paul Franklyn)은 트로거 목사를 20세기 5대 찬송 작사가 중 한 명으로 꼽았다. “트로거 목사는 설교와 예배에서의 창의력과 상상력에 필요한 방법과 기술을 정의하고 가르쳤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에녹 켈리 헤이니(Enoch Kelly Haney)

Enoch Kelly Haney. Photo courtesy of Havenbrook Funeral Home.사진, 에녹 켈리 헤이니, Havenbrook Funeral Home 제공. 

저명한 화가이자 조각가였던 에녹 켈리 헤이니(Enoch Kelly Haney)는 오클라호마주 의사당 지붕 꼭대기에 서 있는 17피트 높이의 조각상 “가디언(The Guardian)”을 만들었다.

또한 오랫동안 연합감리교인으로 섬겼던 헤이니는 의사당 내부에서도 수호자 역할을 담당했다. 22년간 주 상원과 하원의 입법자였던 그는 상원세출위원회의 의장으로도 활동했다.

세미놀 네이션(Seminole Nation)에 의하면, 헤이니는 오클라호마주 의회 의원으로 선출된 최초의 순수 혈통 미원주민이었다. 그는 최초의 부족 국가 협약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오클라호마주의 인디언아동복지법(Indian Child Welfare Act)을 입안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세미놀 네이션(Seminole Nation)의 수장을 역임했다.

헤이니는 2022년 4월 23일 8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공직에 헌신한 만큼 신앙생활에도 헌신했다. 젊은 시절, 그는 오클라호마인디언선교 연회(Oklahoma Indian Missionary Conference)에서 직업 상담가와 목사 그리고 청소년 감독으로 봉사했으며, 세미놀히치티연합감리교회(Seminole Hitchitee United Methodist Church)와 놀만퍼스트아메리칸연합감리교회(Norman First American United Methodist)에서 교인으로 섬기다 최근에는 오클라호마시티에 First Americans Museum을 개발하는 다른 연합감리교인들과 동역했다.  

오클라호마인디언선교 연회(Oklahoma Indian Missionary Conference)를 섬겼던 데이비스 윌슨 (Davis Wilson) 감독은 “헤이니는 자신의 지혜와 믿음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그의 토착 영성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 그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의 신앙 여정은 그가 오클라호마인들을 위해 했던 모든 일에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로즈 킹(Rose King)

Rose King. Photo courtesy of St. Luke United Methodist Church.사진, 로즈 킹, St. Luke United Methodist Church 제공. 

로즈라고 불렸던 마거릿 로제타 킹(Margaret Rosetta King)은 테네시, 켄터키, 사우스 조지아를 이끌다 은퇴한 남편 제임스 킹 주니어(Jame R. King Jr.) 감독의 사역을 신실하게 지원했다. 그녀는2022년 4월 27일 77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그녀는 앨라배마 몽고메리(Montgomery)에서 태어나 2살 때 가족과 함께 테네시 내쉬빌(Nashville)로 이사했으며, 클락메모리얼연합감리교회(Clark Memorial United Methodist Church)에서 신앙을 키웠다.

킹은 연합감리교단과 관련이 있는 베넷대학(Bennett College)에서 심리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워드대학교(Howard University)에서 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뉴욕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녀는 내쉬빌로 돌아와 어머니의 미용실에서 미용사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친구들은 킹이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어머니이자 교육자인 수잔나 웨슬리에게서 영감을 받은 교사였다고 말한다. 수잔나와 마찬가지로 킹도 슬하에 딸과 두 아들 그리고 두 손자까지 두고 있는 자랑스러운 어머니였다. 그녀의 아들인 로버트 S. 킹(Robert S. King)은 현재 연합감리교회의 목사이다.

킹은 주일학교에서 어린이와 성인에게 성경을 가르쳤고, 남편과 함께 교회 워크숍을 이끌며 교회 모임을 주최했다. 그녀는 또한 자신과 같은 목회자 배우자들의 평생 교육을 격려했고, 최근에는 조지아 콜럼버스(Columbus)에서 미국의 초교파적 국제단체인 개신교 성경연구단체의 여성 저녁모임(Bible Study Fellowship International Evening Women's Group)을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콜럼버스에 위치한 세인트루크연합감리교회(St. Luke United Methodist Church)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킹의 추도예배를 인도했던 테드 헤이굿(Thad Haygood) 목사는 “그녀는 이름까지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내면과 외면이 너무나 아름다운 여성으로, 고운 성품과 넘치는 배려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매우 열정적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노만 미네타(Norman Mineta)

Norm Mineta. U.S. Secretary of Transportation official portrait, courtesy of Wikimedia Commons.사진, 노만 미네타, U.S. Secretary of Transportation official portrait, 위키미디어 커먼스 제공. 

노만 미네타(Norman Y. Mineta)는 두 명의 미국 대통령 내각에서 근무하던 아시아계 미국인 공무원으로 인종 장벽을 허물했다.

평생 연합감리교회의 교인이었던 그는 2022년 5월 3일 메릴랜드 엣지워터(Edgewater)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90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일본인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미네타는 어린 시절의 일부를 미국 수용소(U.S. internment camp)에서 보냈다. 이후 캘리포니아 산호세(San Jose)에서 정치를 시작한 그는 1971년에 미국 내 주요 도시의 첫 아시아계 미국인 시장이 되었고, 영향력 있는 10선 미 하원의원을 역임했다. 미네타는 교통 문제 이외에도 미국 정부가 전시 수용소에 강제 수용한 12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던 1988년 역사적인 시민자유법안(Civil Liberties Act)의 승인을 도왔다.

그는 클린턴 대통령 행정부에서 상무장관(commerce secretary)을 지낸 후, 조지 W. 부시 대통령 행정부의 교통부 장관(transportation secretary)이 되어, 민주당 행정부에서 공화당 행정부로 바로 전환한 최초의 각료가 되었다. 그는 또한 9/11테러 공격 중 민간 항공기의 비행을 중단하도록 결정을 내렸는데, 이로인해 부시 대통령은 미네타에게 미국 시민에게 있어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 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여했다.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산호세의 일본 타운에 위치한 현 웨슬리연합감리교회의 교인으로 예배에 참석했고, 최근에도 몇 년 동안 교회의 온라인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다. 이 교회에서 성장한 미네타는 청년 시절, 주일학교 교사로도 섬겼다.

웨슬리연합감리교회의 전임 담임목사였던 키트 이누예(Keith Inouye) 목사는 “아마도 노만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점을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의 공직 생활과 정치 생활 전반에 하나님에 대한 깊고 변함없는 믿음이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연합감리교인으로서 노만은 존 웨슬리가 생각한 ‘사회적 복음(social gospel)’, 즉 우리의 신앙이 다른 사람이나 세상의 평안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다니엘 딕슨 주니어 목사(Rev. Nathaniel Dixon Jr.)

The Rev. Nathaniel Dixon Jr. Photo courtesy of Nelson Funeral Chapel.사진, 나다니엘 딕슨 주니어 목사, Nelson Funeral Chapel 제공. 

나다니엘 딕슨(Nathaniel Dixon) 목사는 복음의 변치 않는 메시지와 재즈의 즉흥적인 전율을 혼합시켰다. 전임 재즈 뮤지션이었던 그는 연합감리교의 목사가 된 후에도 설교하기 전 먼저 테너 색소폰을 집어 들고 몇 소절을 연주하고 나서야 설교를 시작했다.

딕슨 목사는 2022년 5월 5일 아내와 아이들에 둘러싸여 72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소년 시절, 딕슨은 클라리넷을 시작했다. 그의 첫 공연은 카네기홀에서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연주였다. 이후 그의 관심은 색소폰으로 옮겨갔고, 재즈 연주자로 녹음에 참여한 곡이 “Penguin Guide to Jazz on CD”에 실리기도 했다. 그는 또한 뉴욕시의 학교에서 교사와 관리자로 27년간 근무했다. 

당김음과 같이 변화무쌍한 그의 삶에 변하지 않았던 한 가지는 바로 할렘(Halem)에 소재한 살렘연합감리교회(Salem United Methodist Church)였는데, 그곳에서 그는 신학교에 입학하고, 목회자가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딕슨 목사는 2017년 목사를 은퇴하기 전, 브롱크스(Bronx)의 유서 깊은 세인트스티븐연합감리교회(St. Stephen United Methodist Church) 건물의 복구 작업을 이끌었으며, 2016년에는 “Made in New York City: Nat Dixon and Friends”라는 재즈 음반을 만들어 발매하는 등 사역과 함께 자신의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GOJA”라고 불렀는데, GO는 “gospel”을, JA는 “jazz”를 의미한다.

연합감리교회 목사이자 재즈 보컬리스트인 로리 하트만(Lori Hartman) 목사는 2016년 연합감리교뉴스에, “재즈는 그의 목소리입니다. 그는 음악을 통해 복음을 선포합니다.”라고 말했다.

 

찰스 유리겐 주니어 목사(Rev. Charles Yrigoyen Jr.)

 The Rev. Charles Yrigoyen Jr. Photo courtesy of the United Methodist Commission of Archives and History.사진, 찰스 유리겐 주니어 목사, 연합감리교회 역사보존위원회 제공. 

역사학자로서 찰스 유리겐 주니어(Charles Yrigoyen Jr.) 목사는 수많은 사람이 존과 찰스 웨슬리 그리고 그들이 시작한 감리교운동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도왔다.

저명한 연합감리교 역사학자이자 고향인 동부펜실베니아 연회(Eastern Pennsylvania Conference)의 사랑받는 지도자였던 그는 2022년 5월 9일 펜실베이니아 랭커스터(Lancaster)에서 84세에 소천했다.

친구들에게 “척(Chuck)”이라고 불렸던 유리겐은 1982년부터 2005년까지 연합감리교회 역사보존위원회(United Methodist Commission on Archives and History)의 최고 경영자였다. 또한 그가 은퇴했을 때, 역사보존위원회는 그에게 “명예 총무”라는 흔치 않은 영예를 안겨주었다.

유리겐 목사는 사역하는 동안, 신학교에서 주일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감리교 역사를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연합감리교회 내 소그룹 전반에 인기 있는 교재 “존 웨슬리: 마음과 삶의 성결(John Wesley: Holiness of Heart and Life)”을 포함한 11권을 저술 또는 편집했다.

유리겐 목사의 오랜 친구이자 유리겐을 이어 역사보존위원회의 최고 경영자로 사역하다 지금은 은퇴한 로버트 J. 윌리엄(Robert J. Williams) 목사는 “누구도 척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그의 뒤를 이을 뿐이지요.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안정적이었으며, 신뢰할 만했고,  완벽했습니다. … 또한 그는 너그럽고 친절하며 온화했습니다.”라고 유리겐 목사를 회고했다.

 

마리타 Y. 헤럴 목사(Rev. Marita Y. Harrell)

The Rev. Marita Y. Harrell. Photo courtesy of the North Georgia Conference.사진, 마리타 Y. 헤럴 목사, 북조지아 연회 제공. 

애틀랜타 커넥션스엣메트로폴리탄연합감리교회(Connections at Metropolitan United Methodist Church)에서 시무했던 57세의 마리타 Y. 헤럴(Marita Y. Harrell) 목사는 길을 잃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사역하기를 원했다.

경찰은 그녀를 살해한 혐의로 현재 체포되어 기소된 남자를 그녀가 도우려 했다고 말한다. 2022년 5월 18일경 발생한 그녀의 사망 소식은 북조지아 연회(North Georgia Conference)와 연합감리교회 전역에 알려지며 깊은 애도의 물결을 일으켰다. 유족으로는 27년간 함께한 그녀의 남편과 두 딸이 있다.

목사로 안수받기 전, 시카고 출신인 헤럴은 애틀랜타 저널-컨스티튜션(Atlanta Journal-Constitution)에서 22년간 광고 부서의 콜센터 관리자와 직장 내 다양성 훈련 인도자(diversity training facilitator)로 근무했다. 2014년 에모리 캔들러신학대학원(Emory’s Candler School of Theology)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고, 2015년에는 설교 자격증을 받은 헤럴은 연합감리교회의 준회원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교회로 파송되기 전, 헤럴 목사는 리버타운연합감리교회(Rivertown United Methodist Church)와 연합감리교어린이집(United Methodist Children’s Home) 그리고 뉴난채플연합감리교회(Newnan Chapel United Methodist Church)를 섬겼다.

수 하퍼트-존슨 감독(Bishop Sue Haupert-Johnson)은 모든 북조지아 연회 목회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마리타는 우리의 친구였고, 우리 가운데 빛나는 빛이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삶 전체가 증언했던 주님이 그녀와 함께하시고, 그녀를 영원한 본향으로 이끄신 것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썼다.

 

로베르토 고메즈 목사(Rev. Roberto Gómez)

The Rev. Roberto Gómez. Photo courtesy of the Gómez family.사진, 로베르토 고메즈 목사, 고메즈 목사 가족 제공. 

로베르토 루이스 고메즈(Roberto Luis Gómez) 목사는 오랜 기간 영어권과 스페인어권을 넘나들며 사역한 연합감리교 목사였다. 

고메즈 목사는 심장절개수술 후 합병증으로 2022년 5월 26일 샌안토니오(San Antonio)에서 75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그는 뛰어난 사역의 이정표로 기억되지만, 그보다 그가 자유롭게 확장시켰던 목회적 돌봄으로 더 많이 기억된다.

고메즈 목사는 목사와 지방감리사로 사역하였고, 텍사스 조지타운(Georgetown)에 소재한 그의 모교인 사우스웨스턴대학교(Southwestern University)를 포함한 다양한 연합감리교 관련 기관에서 이사로 섬겼다.

그는 또한 연합감리교회 출판국(United Methodist Publishing House) 이사로 17년간 사역했으며, 교단 지도자들은 그가 스페인어 연합감리교회 찬송가를 출판하기로 한 출판사의 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고메즈 목사는 그의 고향인 리오그란데 연회(Rio Grande Conference)를 뛰어넘어, 목회적 돌봄에 초점을 맞춘 퍼킨스신학대학원(Perkins School of Theology)의 스페인어 학습 과정을 30년간 파트타임으로 가르치며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안수받은 목사로 40년이 넘는 세월을 적극적으로 사역하면서, 로베르토는 그의 지도력을 통해 우리 연합감리교회와의 관계를 축복했습니다.”라고 조엘 마르세네즈(Joel Martinez) 은퇴 감독은 말했다.

 

로엘 A. 제스 목사(Rev.Dr. Lowell A. Gess)

The Rev. Lowell A. Gess. Photo courtesy of the Dakotas Conference.사진, 로엘 A. 제스 목사, 다코타 연회 제공. 

안과 의사이자 안수받은 연합감리교 목사인 로엘 A. 제스(Lowell A. Gess) 박사는 처음에는 나이지리아에서 섬기다 시에라리온으로 옮겨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의료 선교사로 섬기며, 의사와 목사를 결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2015년 초, 93세였던 그는 에볼라와의 전쟁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의료 지원을 제공하기로 결심하고 시에라리온으로 돌아왔다. 이 안과 의사는 에볼라 생존자의 시력에 그 병이 끼치는 장기적 영향을 확인한 최초의 의사 중 한 명으로, 그의 연구 업적은 영국의 란셋(Lancet) 의학 저널에 실렸다.

제스 목사는 2022년 6월 21일, 미네소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100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제스 목사와 그의 아내 루스(Ruth)는 미네소타에 있는 여러 교회를 목회한 후, 1952년 처음으로 아프리카 땅에 발을 디뎠다. 이 부부는 당시 연합감리교회의 전신인 복음주의연합형제교회(Evangelical United Brethren Church)의 선교사였으며, 제2의 고향이 된 시에라리온으로 파송 받기 전, 3년간 나이지리아에 머물렀다.

제스 목사 부부는 파송 선교사로 18년, 서아프리카 국가의 자원봉사자로 34년을 섬겼다. 미국에서 안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제스 목사는 매년 3개월은 반드시 시에라리온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그곳에서 16,000회 이상의 백내장 수술을 마치고자 했을 뿐 아니라, 시에라리온 사람들을 위한 다른 일반외과적 수술과 다양한 종류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2012년 시에라리온의 연합감리교인들은 제시 목사와 고인이 된 그의 아내를 기리기 위해 프리타운(Freetown)의 키시안과병원(Kissy Eye Hospital)의 이름을 로웰루스제스연합감리교회안과병원(Lowell and Ruth Gess United Methodist Eye Hospital)으로 개명했다. 안과 진료를 제공하고 안과 전문의를 양성하는 이 병원은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부(Board of Global Ministries)의 특별헌금 지정 기부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받는다.

시에라리온 연회(Sierra Leone Conference)의 총무 에드윈 모모(Edwin Momoh) 목사는 “안과 의사로 시에라리온에서 성실하게 섬겨준 제시 목사님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온화한 영혼과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그를 뛰어난 선교사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알렉산더 제퍼슨 중령(Lt. Col. Alexander Jefferson)

Lt. Col. Alexander Jefferson. Photo by U.S. Embassy, London, courtesy of Wikimedia Commons.사진, 알렉산더 제퍼슨 중령, 런던 주재 미국 대사관, 위키미디어 커먼스 제공. 

은퇴한 알렉산더 제퍼슨(Alexander Jefferson) 중령은 평생을 연합감리교인으로 신앙과 봉사의 삶을 살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터스키기(Tuskegee Airman) 항공병으로 참전했던 그는 전쟁포로로 잡혔지만, 무사히 돌아왔다.

제퍼슨은 2022년 6월 22일 100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2022년 초, 그의 고향인 디트로이트(Detroit)는 그의 100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그에게 도시의 열쇠(Key to the city)를 수여하고, 루지 공원(Rouge Park)에 알렉산더 중령 플라자(Lt. Col. Alexander Jefferson Plaza)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디트로이트자유언론(The Detroit Free Press)은 이 공원이 제퍼슨이 젊었을 때 모형 비행기를 날렸던 곳이라고 보도했다. 유명한 터스키기 항공병이자 미국 최초의 흑인 전투기 조종사로 알려진 그는 유럽 공습에서 폭격기를 호위하는 임무를 18회 수행했다. 하지만 그가 조정했던 전투기가 격추되면서 폴란드에 8개월간 전쟁 포로로 구금됐었다.

퍼플 하트 훈장(Purple Heart)과 다른 군 명예 훈장을 받은 제퍼슨은 현재 연합감리교회와 관련된 학교인 클라크애틀랜타대학교(Clark Atlanta University)를 졸업하고, 하워드대학교(Howard University)에서 화학을 전공한 후, 웨인주립대학교(Wayne State University)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디트로이트 공립학교에서 과학 교사와 교감으로 재직했다.

2007년 미국 연방의회는 제퍼슨과 그의 동료 터스키기 항공병들에게 국가적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상인 의회 금메달(Congressional Gold Medal)을 수여했다.

그가 받은 영예 이외에도 제퍼슨은 디트로이트 코난트애비뉴연합감리교회(Conant Avenue United Methodist Church)의 오랜 교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평신도 리더, 재단 위원, 성가대원, 청소년 성가대 지휘자로 섬겼다.

전직 목사이자 그의 사촌인 카터 그리맷(Carter Grimmett) 목사는 미시간 연회(Michigan Conference)에서, “우리는 그의 인생사와 영웅으로서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들어왔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 기독교인으로서의 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는 언제나 신앙을 지키며 살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루스 진 터커(Ruth Gene Tucker)

Ruth Gene Tucker. Photo courtesy of the North Texas conference.사진, 루스 진 터커, 북텍사스 연회 제공. 

루스 진 터커(Ruth Gene Tucker)를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라도 텍사스에 거주하는 연합감리교인이라면, 그녀의 손길이 닿은 작품 아래에서 성례(sacraments)와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축하했을 것이다.

2022년 6월 24일 소천한 터커는 텍사스주 전역에 위치한 교회에 걸려있는 수백 개의 기독교 테마 배너(banner)를 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웨딩드레스 조각으로 텍사스 파머스 브랜치(Farmers Branch)에 소재한 자신의 모교회인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Christ United Methodist Church)에 걸려있는 13개의 배너를 제작했다. 그 배너들은 예수님의 생애를 묘사하고 있으며, 다른 배너들은 기독교 신앙이나 예배력을 상징하고 있다.

스캇 홀콤브-맥라인(Scott Holcomb-McLain) 목사는 터커를 직접 만나기 전 그녀의 배너를 먼저 알게 된 텍사스 연합감리교인 중 한 명이다. 그의 아내 팸(Pam)이 그가 안수를 받기위해 준비하던 중 터커의 배너를 하나 받았고, 그가 북텍사스(North Texas Conference) 연회에 파송 받았을 때, 이 배너를 그의 교회 사무실에 전시했다. 이후 그가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로 파송 받게 되면서 그는 터커가 다니는 교회의 목회자가 되었다.

홀콤브-맥라인 목사는 북텍사스 연회(North Texas Conference)에서 터커를 향한 헌사에 이렇게 적었다.

“루스 진은 예술을 통해 그녀의 진실을 말했습니다. ‘약속의 찬송(Hymn of Promise)’으로 표현하자면, 그녀의 마음속에는 형상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또한 환상도 있었습니다; 그녀의 옷감은 언제든 변화할 수 있었고, 그저 한두 땀의 바느질이 필요할 뿐이었습니다. 선물로 시작된 것이 사역이 되었습니다. 때가 찰 때까지 드러나지 않으니, 오직 하나님만이 그것을 볼 수 있으십니다.”

 

느심바 느쿨루 느탐보 테레사(Nshimba Nkulu Ntambo Thérèse)

Nshimba Nkulu Ntambo Thérèse. Photo courtesy of the Ntambo family.사진, 느심바 느쿨루 느탐보 테레사, 느심바 느쿨루 느탐보 테레사 가족 제공. 

느심바 느쿨루 느탐보 테레사(Nshimba Nkulu Ntambo Thérèse)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 여덟 명의 자녀를 키웠고, 자신의 고향인 콩고에서 고아와 버려진 아이들의 삶을 계속해서 변화시켰다.

은퇴한 연합감리교회의 감독인 느쿨루 느탄다 느탐보(retired United Methodist Bishop Nkulu Ntanda Ntambo)의 아내였던 그녀는 2022년 6월 29일 72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테레사는 남편이 초등학교 교사에서 연합감리교회 목사로, 지방감리사로 또 감독으로 피선되는 동안 그와 목회 파트너로 함께 했으며, 남편이 콩고민주공화국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후에도, 그가 인권 옹호를 위해 투쟁하고 국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종식시키고자 국제 무대에서 활동했을 때도 늘 그의 곁을 지켰다.

테레사는 또한 다른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의 복지를 위해 일했다. 그녀는 서오하이오 연회(West Ohio Conference)와 협력하여, 콩고 카미나(Kamina)지역에 있는 보육원 시설을 건축하고 설립하기 위해 북카탕가 연회(North Katanga Conference)를 지휘했다.

북카탕가 연회를 주재하는 무욤보 감독(Bishop Mande Muyombo)은 그녀의 보살핌 아래 고아와 버려진 아이들이 사랑으로 양육 받았을 뿐 아니라, 흔들림 없는 기독교 지도자들도 세워졌다고 말했다. 그들 중에는 현재 짐바브웨 소재의 연합감리교회 관련 학교인 아프리카대학교(Africa University)를 졸업한 이들도 있다.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부(United Methodist Board of Global Ministries)에서 선교사이자 조종사로 사역하는 아들 가스톤 느탐보(Gaston Ntambo)는 그의 어머니가 섬기는 자의 마음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녀의 도움으로 성장한 많은 고아는 여전히 그를 가스톤 형제라 부른다. 그는 또한 어머니가 사람의 지위나 신분과 상관없이 항상 사람들에게 정직해야 한다고 강조한 점을 언급했다.

“자녀와 남편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특별하고 순수하며 진실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가족 대부분이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회복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어머니의 아들로 내가 성장했기에, 내가 자녀들에게 물려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비록 아픔이 있더라도 항상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레스 롱댄 목사(Rev. Les Longden)

The Rev. Les Longden Photo courtesy of Sytsema Funeral & Cremation Services.사진, 레스 롱댄 목사, Sytsema Funeral & Cremation Services 제공. 

“레스”로 불렸던 레이시스터 랄프 롱댄(Leicester Ralph Longden) 목사에게는 복잡한 아이디어를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연합감리교회의 신학자로서 자신이 가진 그 기술을 목회에 적용시켰다.

그는 2022년 7월 6일 75세의 나이로 미시간 머스키건(Muskegon)에서 소천했다.

롱댄 목사는 오리건과 미시간에 있는 연합감리교회의 목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하지만 뉴저지 매디슨(Madison)에 있는 연합감리교회와 관련된 드루대학교(Drew University)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그는 가르치는 일로 사역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는 15년 동안 교수로 재직했으며 아이오와에 있는 더뷰크신학대학원(Dubuque Theological Seminary)에서 연합감리교 연구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그는 연합감리교회의 저명한 신학자인 알버트 아우틀러(Albert Outler) 목사의 작품 연구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가였다. 아우틀러 목사처럼, 그 역시 독서광이었는데, 그의 개인 서재에는 6,000권 이상의 책들이 소장되어 있었다.

그는 또한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갱신과개혁연합(Renewal and Reform Coalition)의 교단 지도자이자 연합감리교뉴스의 논설위원이었다.

그의 친구이자 노스캐롤라이나 연회(North Carolina Conference)에서 은퇴한 연합감리교회 목사인 파울 T. 스톨스워스(Paul T. Stallsworth)는 “롱댄은 사역의 많은 부분을 연합감리교회가 영적 소비자들에게 영적인 선택을 제공하는 것에서 벗어나 거룩한 공회(Church catholic)의 신앙을 신실하고 온전하게 고백하도록 격려하는 데 사용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아우투라 이슨-윌리엄스 목사(Rev. Autura Eason-Williams)

The Rev. Autura Eason-Williams. Photo courtesy of Southeastern Jurisdiction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사진, 아우투라 이슨-윌리엄스 목사, Southeastern Jurisdiction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제공. 

52세의 아우트라 이슨-윌리엄스(Autura Eason-Williams) 목사는 테네시-서부캔터키 연회(Tennessee-West Kentucky Conference)에서 사랑받는 지도자였다. 많은 사람은 감리사였던 그녀가 2022년 7월 18일 자신의 멤피스 자택 앞에서 차량 탈취 사건으로 총에 맞아 사망했을 때, 충격과 슬픔에 휩싸였다.

이슨-윌리엄스 목사가 사망한 지 몇 시간 만에 긴급히 소집된 저녁 기도회에는 200명 이상의 사람이 모였다. 그녀의 유족으로는 남편과 네 자녀가 있다.

멤피스 연회(Memphis Conference)에서 인종을 초월한 파송의 선구자였던 그녀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연합감리교회를 만들기 위해 힘썼다. 그녀는 자신의 연회에서 반인종주의 활동을 이끌었으며, 교단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BeUMC 캠페인의 리더이기도 했다.

그녀는 또한 병원 조직의 신앙과건강위원회(Faith and Health Committee)의 위원으로, “Methodist Le Bonheur Healthcare”에서 수년간 봉사하며, 보건 분야에 존재하는 인종적 불공평을 해결하는데 특별히 중점을 두었다.

그녀가 속했던 연회는 그녀를 2024년으로 연기된 총회의 대의원으로 선출했을 뿐 아니라, 감독 후보로도 추천했다. 하지만 이슨-윌리엄스 목사는 그녀가 맡은 지방감리사로서의 사역에 집중하기 위해, 2021년 7월 감독 후보직을 사퇴했다.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최근 지방감리사로 은퇴한 신티아 데이비스(Cynthia Davis) 목사는 “이슨-윌리엄스 목사는 열정을 쏟아부어 설교하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과 친밀하게 되길 원했고, 당신이 떠나지 않는 한 그녀는 당신을 떠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커트 보간 목사(Rev. Kurt Boggan)

The Rev. Kurt Boggan. Photo courtesy of the Arkansas Conference.사진, 커트 보간 목사, 아칸소 연회 제공. 

연합감리교인들은 윌리엄 커트 보간(William Kurt Boggan) 목사를 활력 있는 교회를 만들기 위한 범교단적 운동에 일조했던 재능 있는 교회 지도자로 기억한다. 은퇴 후에도 그는 계속 아칸소 지역에서 가장 취약한 지역 사회에 위치한 두 교회의 목사로 섬겼다.

“커트(Kurt)”로 불렸던 보간 목사는 2020년 7월 20일 심장마비로 아칸소의 리틀 락(Little Rock)에서 67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그의 유족으로는 변호사로 일하는 딸 에밀리 와인랜드(Emily Wineland)와 연합감리교회 역사보존위원회의 최고 경영자인 딸 애슐리 보간(Ashley Boggan)이 있으며, 43년간 그의 목회 파트너였던 아내 레베카(Rebecca) 집사도 2022년 세상을 떠났다.

아칸소 순회 설교자의 후손인 보간 목사는 아칸소주 전역에 위치한 연합감리교회들의 목사였다. 그는 지방감리사를 역임하고, 아칸소 연회에서 새롭게 설립한 Center for Vitality의 이사이자 수석 재무사(equipper)로 섬기며, 성직자와 평신도를 훈련시켜 더 많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우는 활력있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힘썼다. 이후 그는 그런 기량들을 벤톤빌제일연합감리교회(Bentonville First United Methodist Church)에 적용시켰다.

은퇴 후에도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앞장서서 섬겼다. 그는 세상을 떠날 당시 쿠어파우쿼터연합감리교회(Quapaw Quarter United Methodist Church)와 캔버스커뮤니티연합감리교회(Canvas Community United Methodist Church)의 목사였는데, 쿠어파우쿼터연합감리교회는 아칸소 연회에서의 처음으로 성소수자들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힌 화해하는 교회(Reconciling congregation)였다.

보간 목사를 지방감리사로 파송했고, 지금은 은퇴한 찰스 크러치필드(Charles Crutchfield) 감독은 “그는 항상 힘써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섬겼습니다. 이 점에서 그는 평균 그 이상의 성과를 올린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나그레이트 클레이버 박사(Dr. Annegret Klaiber)

Dr. Annegret Klaiber. Photo courtesy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Germany.사진, 아나그레이트 클레이버 박사, 독일 연합감리교회 제공. 

젊은 시절, 아나그레이트 클레이버 박사는 의료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녀는 또한 스위스 바젤(Basel)에서 수학할 때, 저명한 개신교 신학자인 칼 바르트(Karl Barth)의 강의에 들으며 신학을 공부했다.

과학과 신앙에 대한 헌신은 그녀의 사역과 현재는 은퇴한 월터 클레이버(Walter Klaiber) 감독과의 결혼 생활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녀는 치매와 다른 건강 문제들로 투병하다 2022년 7월 23일 83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1938년 독일 튀빙겐에서 태어난 아나그레이트 클레이버 박사의 어린 시절은 전쟁으로 얼룩졌지만, 그녀는 자신의 모교회에서 위안을 받곤 했다. 그녀는 의대생 시절에 신학생이었던 남편을 만나 1965년 결혼하고, 아들 셋을 낳았다.

그녀의 남편이 부르심에 따라 목회자와 신약학 교수가 되었을 때, 클레이버 박사도 자신의 소명을 따라 의사이자 건강학 교수가 되었다.

그녀의 남편이 감독이 된 직후, 클레이버 박사는 독일 연합감리교인들을 위해 새로운 연합감리교회 찬송가를 번역하면서, 영어 찬송 번역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독일인들이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부를 때, 그들이 사용하는 번역이 그녀의 번역일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그녀가 번역한 찬송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에큐메니컬 영역에서도 사용되었다.

현 독일 연합감리교회의 헤럴드 루커트(Harald Rückert) 감독은 “아나그레이트 클레이버 박사는 친근한 사람이었으며, 그녀에게는 어려운 상황에 부딪힌 사람에 대한 연민이 있었습니다. 지혜와 신중함으로 그녀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일했습니다. 특히, 그녀는 중독을 지원하고 예방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 그녀가 독립적으로 하던 평신도 집사 사역 또한 많은 곳에 축복의 흔적을 남겼습니다.”라고 말했다.

 

밥 게리 목사(Rev. Bob Gary)

The Rev. Bob Gary. Photo courtesy of Atlanta Journal-Constitution /Legacy.com.사진, 밥 게리 목사, Atlanta Journal-Constitution/Legacy.com 제공. 

로버트 “밥” 게리(Robert "Bob" Gary) 목사는 상한 심령을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방법을 가르쳤다. 에모리대학병원(Emory University Hospital)에서 오랫동안 원목으로 근무했으며,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도 받았던 그는 2022년 8월 3일 조지아 디케이터(Decatur)의 자택에서 90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1971년 연합감리교 관련 병원의 원목이 되기 전까지 게리 목사는 5개의 교회를 섬겼다. 26년간의 병원 재임 동안 그는 임상목회교육 프로그램(clinical pastoral education program)을 국내 최대 규모로 성장시켰다. 그는 또한 에모리의 캔들러신학교(Emory’s Candler School of Theology)에서 목회적 돌봄도 강의했는데, 그가 은퇴했을 때, 빌 클린턴 대통령은 그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은퇴 후에도 게리 목사는 자문위원과 목회 상담가로 사역했으며, 종종 분열이 있는 교회를 돌보기도 했다. 65년간 함께했던 그의 아내 자넷(Janet)은 주일학교의 리더로 섬기며, 애틀랜타 글랜메모리얼연합감리교회(Glenn Memorial United Methodist Church)의 예배에 게리 목사와 함께 참석했다.

은퇴한 캔들러대학 학장이자 에모리 대학교의 총장이었던 제임스 T. 레이니(James T. Laney) 목사는 ”그에게 조언과 상담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밥 목사와 함께했던 시간을 그들 삶의 위대한 전환점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레이니의 아내도 50대 중반에 병원의 원목이 되기 위해, 게리 목사에게 훈련받았다.

레이니 목사는 “나의 아내는 게리 목사에게 받은 원목 훈련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으며, 원목으로서의 삶이 자신의 진정한 소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이야말로, 누군가의 삶에 대한 놀랄만한 평가입니다.”라고 게리 목사를 추억했다.

 

얼 바이블 목사(Rev. Earl Bible)

The Rev. Earl Bible. Photo by Mike DuBose, UM News.사진, 얼 바이블 목사, 마이크두보스, 연합감리교뉴스.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신다, 그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바로 얼 바이블(Earl Bible) 목사가 그들에게 이렇게 전했기 때문이다.

연합감리교회에서 인허받은 본처목사(local pastor) 중 가장 오랫동안 사역한 목사 가운데 한 명인 바이블 목사는 2022년 8월 4일 웨스트버지니아 세네카 록스(Seneca Rocks)에 있는 자택에서 85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연합감리교뉴스는 본처목사 시리즈에서 그에 관한 기사를 실었었다.

거의 40년간 그는 위트머(Whitmer), 서클빌(Circleville), 노스 드라이 런(North Dry Run), 잡(Job) 연합감리교회를 섬기며, 목회자로의 삶을 살았다. 그는 또 다른 의미의 목자이기도 했는데, 그와 66년 동안 함께했던 아내 도리스(Doris)가 그들의 농장에서 양 떼와 몇몇 소를 돌보았기 때문이다.

인근 공장에서 현장 감독으로 일할 때, 바이블 목사는 8년간 여름휴가 때마다 워싱턴 D.C.에 있는 웨슬리신학대학원(Wesley Theological Seminary)에서 본처목사 과정을 수강했다.

바이블이 사역했던 알레그해니(Allegheny)가 포함된 포토맥 하이랜즈 지역의 지방감리사로 치리하는 스캇 퍼거슨(Scott Ferguson) 목사는 “그는 많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와 더 친밀한 관계로 인도했던 그리스도 중심의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한 번은 그가 나에게 은퇴할 때가 언제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그 부분은 그와 하나님이 대화해야 할 부분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쉬지 않고 일했던 것을 보면, 그의 때가 아니었나 봅니다. 우리는 얼을 그리워하겠지만, 그의 영적 유산은 대대로 계승될 것입니다.”라고 회고했다.

 

이본 로워리 케네디(Yvonne Lowery Kennedy)

Yvonne Lowery Kennedy. Photo courtesy of Ever Loved.사진, 이본 로워리 케네디, Ever Loved 제공.

평생 연합감리교회를 섬겼던 이본 로워리 케네디(Yvonne Lowery Kennedy)는 돌아가신 그녀의 부모님인 조셉 로워리 목사와 에블린 로워리 목사의 뒤를 이어 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녀는 앨라배마 칼레라(Calera)에서 2022년 8월 6일 74세에 소천했다.

앨라배마 버밍엄(Birmingham)에서 태어난 케네디와 그녀의 자매들은 “삼촌”과 “이모”로 알고 지냈던 민권 운동 지도자들에게 둘러싸여 성장했다. 그들은 또한 그들의 부모님과 함께 민권행진(civil rights marches)을 하면서, 사람들이 평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위협을 일찍부터 알게 되었다.

그러나 케네디는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고, 소수 민족과 여성의 권리를 위해 일하는 여러 조직을 이끌었다. 버밍햄에 있는 앨라배마대학의 여성과 소녀 사업 네트워크(Women and Girls Business Network)의 창립자이자 이사였던 그녀는 대학의 소수 민족 비즈니스 프로그램 부이사장으로 은퇴했다. 케네디는 슬하에 5명의 자녀와 14명의 손주를 두었다.

그녀는 또한 전국흑인여성회의(National Congress of Black Women)의 이사이자 버밍햄 지부의 창립 의장이었다. 2012년 케네디는 어머니가 사망한 후, 어머니가 설립했던 남부기독교리더십컨퍼런스(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의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많은 단체의 사람들과 매년 앨라배마의 민권운동의 성지로 알려진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Edmund Pettus Bridge)를 건넜다. 그곳은 흑인 참정권 보장을 주장하던 사람들에게 무차별 폭력이 가해졌던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의 현장이다.

은퇴한 연합감리교회의 감독인 우디 화이트(Bishop Woodie White)는 그 다리를 함께 건넜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케네디가 소천하기 직전까지 함께 기도했던 화이트 감독은 “그녀는 사귀고, 사랑하기 어렵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잘 웃는 사람이었고,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그녀만의 방식으로 ‘우디 삼촌’이라고 부를 때마다 내 마음은 따뜻해졌습니다.”라고 말했다.

 

비비안 불(Vivian Bull)

Vivian Bull. Photo courtesy of Drew University.사진, 비비안 불, Drew University 제공. 

비비안 A. 불(Vivian A. Bull)은 대학교 교수와 총장 그리고 연합감리교회 고등교육사역부(Higher Education and Ministry)의 이사로 오랜 기간 사역하며, 연합감리교회의 교육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비비안 불은 87세의 나이로 2022년 8월 12일 소천했다.

그녀는 예루살렘 여행 중 미래의 남편인 로버트 J. 불(Robert J. Bull)을 만났고, 그를 따라 뉴저지 매디슨(Madison)에 있는 연합감리교회 관련 대학인 드류대학교(Drew University)로 갔다. 로버트 불은 신학교에서 강의하고, 비비안 불은 1960년부터 1992년까지 32년간 드루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다 1978년부터 1986년까지 인문대 부학장을 역임했다. 이 부부는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다.

그녀는 오리건 맥민빌(McMinnville)에 있는 린필드대학(Linfield College) 총장으로 재직했던 13년간 드류를 떠나 있었으며, 그곳에서 은퇴할 즈음에 명예 총장 지위를 얻었다. 그녀는 은퇴 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년간 임시로 드류대학교 12대 총장을 맡았다.

비비안 불은 경제학자로서의 재능을 교회 확장을 위해 사용했다. 1988년부터 고등교육사역부(Higher Education and Ministry) 투자위원회(Investment Committee)의 위원으로 사역하던 비비안 불은 지난 몇 년간 위원회의 의장을 맡아 섬겼다.

고등교육사역부 총무인 샌드라 스테이너 볼(Sandra Steiner) 감독은 “비비안 불 박사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소중히 여기는 위대한 지혜를 가진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현재를 넘어 가능성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 참을성 있는 교육자였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월터 헨리 맥켈비 시니어 목사(Rev. Walter Henry McKelvey Sr.)

The Rev. Walter Henry McKelvey Sr. Photo courtesy of the Western North Carolina Conference.사진, 월터 헨리 맥켈비 시니어 목사, 서부 노스캐롤라이나 연회 제공.   

월터 헨리 맥켈비 시니어(Walter Henry McKelvey Sr.) 목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교단의 많은 부분에서 차별했던 감리교회 중앙지역총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더 폭넓은 교회를 섬기기 위해, 평신도와 목회자 및 감독들을 훈련시키는 역사적인 흑인 연합감리교회 계열인 애틀랜타에 소재한 갬먼신학대학원(Gammon Theological Seminary)의 총장이 되었다.

1997년부터 2010년까지 갬먼신학대학원의 총장이었던 맥켈비 목사는 2022년 8월 15일 81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린빌(Greenville)에서 태어난 그는 애틀랜타에 위치한 국제신학센터(International Theological Center)의 일부인 갬먼신학대학원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후, 테네시 내쉬빌에 있는 전 스카릿대학(Scarritt College)에서 전도학 석사 학위와 뉴저지 매디슨에 있는 연합감리교회 관련 드류신학대학원(Drew University)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또 미시간대학교(Michigan University)에서 경영 관리 자격증을 받았으며, 1984년에는 갬먼신학대학원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맥켈비 목사는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와 홀스턴(Holston) 그리고 서부 노스캐롤라이나(Western North Carolina) 등 세 개의 연합감리교회 연회를 섬겼다.

맥켈비 목사의 리더십 아래 갬먼신학교의 회계(treasure)를 역임한 조셉 L. 크라우포드 시니어(Joseph L. Crawford Sr.) 목사에 의하면, 신학교 총장인 맥켈비 목사는 예비 신학생들을 모집하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장학 기금을 모으는 데 열정을 가진 건전한 재정 관리자였다.

갬먼의 전 임시 총장이기도 했던 크라우포드 목사는 “그의 흠 잡을 데 없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품과 연합감리교회에 대한 헌신은 신학생들과 직원들에게 참된 모델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를 뛰어난 복음 설교자이자 가정적인 남성이며, 존경할 만한 동료이자 열정적인 ‘어부’로 기억하고, 그리워합니다.”라고 말했다.

 

존 러셀 감독(Bishop John Russell)

Bishop John Russell Photo courtesy of UM News.사진, 존 러셀 감독, 연합감리교뉴스 제공. 

중부텍사스 연회(Central Texas Conference)의 초대 감독인 존 윌리엄 러셀(John William Russell) 감독이 2022년 9월 2일 텍사스 우드랜즈(Woodlands)에서 96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텍사스 애빌린(Abilene) 출신인 러셀 감독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감리교 목사가 되기 전, 제2차 세계 대전에 미 육군으로 복무했다.

그는 오클라호마 지방감리사로 다양한 개체교회를 섬겼다. 그는 1980년 중남부 지역 총회에서 감독으로 피선되었고, 댈러스-포트워스(Dallas-Fort Worth) 지역에서 사역했다. 1988년 러셀 감독은 새롭게 형성된 포스워스 감독구를 주재했는데, 이는 중부텍사스 연회가 처음으로 자체 감독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또한 텍사스 와코(Waco)에 있는 감리교어린이집(Methodist Children’s Home)의 이사로 20년간 섬겼으며, 1992년 은퇴한 후, 자신의 아내인 메리 진(Mary Jean)과 포스워스에 소재한 제일연합감리교회(First United Methodist Church)의 신실한 교인이 되었다. 그와 고인이 된 그의 아내는 71년을 함께했다.

퍼포스워스의 제일연합감리교회의 전 담임목사이자 현 중부텍사스 연회의 재무행정위원회 총무인 팀 브루스터(Tim Bruster) 목사는 “러셀 감독은 매우 온화하고, 사랑이 넘치며, 목회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어떤 상황에도 뛰어난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농담을 던지기 전 항상 이런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그가 곁에 있었을 때, 당신이 웃음을 터뜨렸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지니 로우터 목사(Rev. Ginnie Lowther)

The Rev. Ginnie Lowther. Photo courtesy of Heavner & Cutright Funeral Chapel.사진, 지니 로우터 목사, Heavner & Cutright Funeral Chapel 제공. 

지니(Ginnie)라 불리던 메리 버지니아 세틀 로우터(Mary Virginia Settle Lowther) 목사는 몇몇 총회에 기념사진 서비스를 제공했던 서버지니아 연회(West Virginia Conference)의 오랜 지도자였다.

그녀는 2022년 9월 4일, 87세로 소천했다.

지니 로우터 목사는 1997년 안수를 받고 연회의 정회원 집사목사가 되었으며, 연대사역부를 비롯한 연회의 몇몇 지도자 직분을 맡았다. 그녀는 서버지니아 연회 저널(West Virginia Annual Conference Journal)의 공동 편집자로 30여 편을 편집했으며, 서버지니아 연회의 역사보존위원회 의장과 연회 안수사역부의 위원 및 서버지니아 연회의 사모협회(Minister’s Wives Association)의 회장으로 섬겼다.

2002년 은퇴한 지니 로우터 목사는 그녀의 남편인 드웨인 로우터(Dewayne Lowther) 목사와 기록 사역(Ministry of Memory)을 시작했다. 그들은 사진 저널링(photographic journaling)을 사용하여 사람들이 교회를 섬기는 모습을 포착했고, 총회 때는 포토 부스를 설치하여 개인과 대의원들의 인물 사진도 찍어주었다.

서버지니아 연회의 총무이자 전 총회 계획 위원회 의장이었던 주디 M. 케나스톤(Judi M. Kenaston)은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축하와 고통의 순간들을 담아 총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전문적으로 전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의 수고였습니다.”라고 말하며, 지니 로우터 목사가 예배에 대한 헌신과 교회 역사 보존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로버트 H. 스페인 감독(Rev. Robert H. Spain)

Bishop Robert H. Spain. Photo by Mike DuBose, UM News.사진, 로버트 H. 스페인 감독, 마이크두보스, 연합감리교뉴스 제공.   

많은 사람이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나이에, 로버트 히치콕 스페인(Robert Hitchcock Spain) 감독은 연합감리교회 출판부(United Methodist Publishing House)의 전임 목회자로 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목회적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나섰다.

은퇴한 뒤에도 스페인 감독은 90세가 넘을 때까지 정기적으로 예배를 인도했다. 또한 병자들을 방문하고, 슬픔에 빠진 이들을 위로하며, 졸업을 축하하는 등 수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인도했다. 그의 친구들과 동료 목회자들은 그를 에너자이저 토끼(Energizer Bunny)처럼 지치지 않고 계속 사역을 이어 나간 감독으로 기억한다.

“밥(Bob)”으로 불렸던 스페인 감독은 2022년 9월 9일 96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 의무부대(Navy’s Medical Corps)에서 복무했으며, 목회자로 부름을 받기 전까지 의대 준비 과정을 공부했다. 테네시 내쉬빌(Nashville)과 그 주변 지역에서 수십 년간 목사와 지방감리사로 섬기던 그는 62세 때 감독으로 피선되었다.

스페인 감독은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당시 켄터키(Kentucky), 루이빌(Louisville), 레드버드(Red Bird) 선교 연회(Missionary Conference)로 구성되어 있던 루이빌 지역을 이끌었다. 이후 1995년 조셉 B. 베시아 (Joseph B. Bethea) 감독이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사망하자 남동부지역총회의 동료 감독들은 그에게 1996년 새로운 선거가 있을 때까지 사우스캐롤라이나 연회(South Carolina Conference)의 임시 감독이 되어주길 요청했다.

이전에 연합감리교회 출판부에서 세미나를 인도했으며, 기관목사로서 해야 할 역할도 열정적으로 수행했던 그는 여전히 목사로서 사역하길 원했다. 그와 74년을 함께했던 그의 아내 시블(Syble)은 스페인 감독이 한때 담임목사로 섬기던 브렌트우드연합감리교회(Brentwood United Methodist Church)의 적극적인 예배자가 되었다.

연합감리교회 출판부 대표이자 명예 발행인인 네일 알렉산더(Neil Alexander)는 “밥의 영향력은 우주적이었으며, 누구도 그가 전파하는 희망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라고 그를 회고했다.

 

크리스티아나 케리케 다발레(Christiana Kerika Dabale)

Christiana Dabale. Photo courtesy of the Dabale family.사진, 크리스티아나 다발레, 다발레 가족 제공. 

고(故) 던 피터 다발레(Done Peter Dabala) 감독의 미망인인 크리스티아나 케리케 다발레(Christiana Kerike Dabale)가 2022년 10월 17일 70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연합감리교인들은 그녀를 “마마 비숍(Mama Bishop)”으로 불렀다. 2006년 암으로 소천한 그녀의 남편은 나이지리아 최초의 연합감리교회 감독이었다. 두 사람은 11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 10명의 자녀와 14명의 손주가 그녀의 곁을 지켰다.

나이지리아 아다마와 바쿰(Bakum)에서 태어난 크리스티아나 다발레는 하나님과 가족 그리고 연합감리교회를 사랑하는 기독교 신앙의 든든한 수호자로 성장했다. 동료 연합감리교인들은 다발레 감독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나이지리아에 연합감리교회를 세우는 데 일조했다고 말하며, 그 공로를 인정했다.  

그녀의 여섯째 자녀인 웨남 피터 다말다(Wehnam Peter Dabale)는 그의 어머니가 교인과 평생 처음으로 교회를 방문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환영하는 “오픈 하우스 정책(open-house policy)”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그녀가 자녀들을 성경적인 명령으로 교육했으며, 민족적, 종교적,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궁핍한 자들을 도왔다고 전했다.

짐바브웨 무타레(Mutare)에 있는 연합감리교회 관련 대학인 아프리카대학교(Africa University)에서 국제 학생 자문으로 일하는 그녀의 아들은 “우리는 어머니가 교회와 가족 그리고 인류에 보여준 이타적인 희생과 공헌에 대해 하나님께 영원히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루쿠조 J. 무라파(Rukudzo J. Murapa)

Rukudzo J. Murapa. Photo by Mike DuBose, UM News.사진, 루쿠조 J. 무라파. 마이크두보스, 연합감리교뉴스 제공. 

루쿠조 J. 무라파(Rukudzo J. Murapa) 전 아프리카대학교 부총장은 연합감리교회 대학의 평화, 리더십 그리고 통치 연구소(Institute of Peace, Leadership and Governance)의 설립을 도운 것을 포함하여, 그의 비전과 네트워킹 및 지도력으로 기억되고 있다.

무라파는 2022년 10월 27일 무타레(Mutare)의 무람비가든병원(Murambi Garden Clinic)에서 82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범아프리카대학교(pan-African University)의 2대 부총장을 역임한 그의 사망 소식은 그 대학이 개교 30주년을 기념한 지 불과 며칠 후에 전해졌다. 짐바브웨의 대학 부총장은 미국 대학의 총장에 해당한다.  

무라파는 미네소타에 소재한 연합감리교회 관련 햄린대학교(Hamline University)에서 정치학 학사 학위를 받고, 노던일리노이대학교(North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공공행정, 비교 정치와 경제학(public administration, comparative politics and economics)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친구들과 동료들은 정치학자로서의 그의 경력이 기관의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짐바브웨의 에벤 K. 느히와티와 감독(Bishop Eben K. Nhiwatiwa)은 무라파가 아프리카대학에서 봉사했던 어떤 부총장보다도 명예의 전당의 가장 특별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그는 자신이 무라파가 대학에 대한 비전을 나누었을 때, 그것을 처음 들었던 직원 중 한 명이었다고 전했다.

“그가 아프리카대학의 이름을 학계에 널리 알렸습니다.”라고 느히와티와 감독은 말했다.

 

차벨로 고메즈 목사(Rev. Chabelo Gomez)

The Rev. Chabelo Gomez. Photo courtesy of the North Texas Conference.사진, 차벨로 고메즈 목사, 북텍사스 연회 제공. 

동료 목회자들과 다른 사람들의 멘토였으며, 오랜 시간 히스패닉 사역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어온 이사벨 “차벨로” 고메즈(Isabel "Chabelo" Gomez)가 2022년 11월 10일 85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2021년 말, 말기 암 진단을 받은 고메즈 목사는 남은 시간 동안 이루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북텍사스 연회에 있는 히스패닉/라틴계 목회자들에게 전 리오그란데 연회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그는 지난 1월, 지리적이 아닌 스페인 언어로 하나 된 연회의 이야기를 전하겠다는 그의 목표를 달성했다.

고메즈 목사는 리오그란데 연회와 북텍사스 연회를 섬겼으며, 연합감리교회 인종관계위원회(United Methodist Commission on Religion and Race)의 초창기 회원 중 한 명이었다. 고메즈 목사가 선구적인 히스패닉 지도자로서 병원 원목 사역으로 섬길 때, 그를 처음 만난 오웬 로스(Owen Ross) 목사는 그때를 회상하며, 그가 비참한 상황에 깊고 따뜻한 사랑의 사역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그의 친구였던 로스 목사는 그를 추모하는 글에, “그는 정의와 사랑을 위해 싸우던 기쁨의 용사였습니다.”라고 남겼다.

“인종적 차별이 있었던 댈러스에서 성장하며, 너무나 많은 사회적, 개인적 비극을 목격하고 경험한 그는 회복시키시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느끼며 새롭게 되었고, 그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은 그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염되었습니다.”

 

데비 타이리 목사(Rev. Debi Tyree)

The Rev. Debi Tyree. Photo by Jonathan Tyree, the Rev. Tyree’s son.사진, 데비 타이리 목사, 타이리 목사의 아들 조나단 타이리 제공. 

데비(Debi)라 불렸던 데브라 R. 타이리(Debra R. Tyree)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독교적 신앙을 노래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19년간 테네시 내쉬빌(Nashville)에 소재한 벨뷰연합감리교회(Bellevue United Methodist Church)에서 예배와 선교 담당 목사로 섬겼다. 그녀는 또한 2016년에 열렸던 총회에서 예배 기획팀의 일원이자 교단의 선교 기관인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부(United Methodist Board of Global Ministries)의 글로벌 찬양팀 리더로 섬겼다.

벨뷰교회에서 거행된 추모 예배에서는 글로벌예배(global worship)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기리기 위해 3개의 언어로 된 찬양을 드렸다고 그 교회의 담임인 브라이언 말컬리어 목사(Rev. Brian Marcoulier)는 전했다.

타이리 목사는 암 투병 끝에 2022년 11월 11일 66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연합감리교회의 집사목사로 안수받은 타이리 목사는 오랜 기간 자신의 음악적 은사를 사용하여, 사람들이 기쁨이 충만한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왔다. 타이리 목사는 22년간 버지니아 메카닉스빌(Mechanicsville)에 소재한 세이디그로브연합감리교회(Shady Grove United Methodist Church)를 섬기며, 성가대와 핸드벨 그리고 전례무용(liturgical dance)을 포함한 음악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하지만 연합감리교회 예배에 대한 타이리 목사의 영향력은 그녀가 섬기고,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인도했던 교회 너머로 확장되었다. 세계선교부와 벨뷰연합감리교회에서 사역을 맡기 전, 그녀는 연합감리교회 출판부(United Methodist Publishing House)에서 음악 편집자로 섬겼다. 

교단 전반의 음악 사역 지도자들은 그녀를 친구로 여겼다. 그들 중에는 병원 원목이자 연합감리교예배 예술인협회(The Fellowship of United Methodists in Music and Worship Arts)의 전임 이사였던 데이비드 L. 본(David L. Bone)도 있었다. 그는 그녀가 입원했을 당시 그녀를 돌보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데비는 모든 것이 포함되도록 원을 더 넓고 크게 그리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예배드릴 때, 그녀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벽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넘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확신의 찬 목소리로 모든 억압과 두려움을 산산조각 냈습니다.”라고 본은 말했다.

 

지난 한 해 연합감리교뉴스에 기고해 주시고, 인터뷰에 응해 주신 분들과 연합감리교뉴스를 찾아와 기사를 읽어 주시고, 페이스북에서 반응과 공유로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Hahn)은 연합감리교뉴스의 부편집장입니다. 이 기사에 그레이트플레인 연회의 데이비드 버크(David Burke), 미시간 연회의 잭 하니쉬(Jack Harnish), 미네소타 연회의 카를라 호프(Karla Hovde), 독일 연합감리교회의 클라우스 울리히 루오프(Klaus Ulrich Ruof), 북조지아 연회의 시빌 데이비드슨(Sybil Davidson), 시에라리온의 필리어스 주수(Phileas Jusu), 콩고의 베티 무사 (Betty Musau) 목사와 중부텍사스 연회의 밴스 모튼(Vance Morton)이 기여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이메일, tkim@umnews.org 또는 전화, 615-742-5109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읽기 원하시면,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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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사시던 시대에 화장은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널리 행해졌지만, 육체의 부활을 믿었던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잘 행해지지 않았다. 사진 출처, 메리 W,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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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월 10일, 소설가 한강을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고, 그의 작품들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사진은 한강의 작품집 중 채식주의자(2007), 소년이 온다(2014) 그리고 디에센셜(2022년) 등 3편이다.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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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구 박사는 “산문적 글쓰기의 정밀함과 아름다움 속에 인간의 비참함에 대한 깊은 연민과 동정, 그리고 분노를 넘어서 순수한 평화에 대한 깊은 열망”이 작가 한강을 노벨문학상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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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감리교인들도 죽은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드립니까?

만인성도주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연합감리교회에서는 11월 1일 <만인성도일(All Saints Day)> 또는 11월 첫 주일을 <만인성도주일>로 지킵니다. 이와 관련하여 왜 연합감리교인들이 추모 예배를 드리고 죽은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는지 신학적이고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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