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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가득 찬 연합감리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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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 글은 정희수 감독이 연합감리교 몽족 전국지도자대회에서 발표한 특별총회 이후 연합감리교회의 미래와 성소수자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돕고자 발표한 글로 정화영 목사가 번역한 것이다.  

현재 연합감리교회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최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 교단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알게 되는 뼈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이 과제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했지만, 이토록 어려울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현 모습은 상처받은 교회입니다. 갈라진 교회입니다. 우리 교단은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저는 연합감리교회가 앞으로도 계속 세계 선교의 비전과 영향력을 만방에 나눌 수 있는 길을 찾아 전진할 것이라 믿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가장 선명하고, 핵심적이고, 성서적으로 신실하며, 신학적으로 건강하고, 윤리적으로 책임감 있는 연합감리교회의 미래를 위해 함께 가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시대, 문화, 장소 등의 상황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역동적인 종교 운동으로 시작되어 발전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적이며 이분법적이었던 고대 사회의 단점을, 성령의 힘으로 잘 극복했습니다.  신화와 마법에 의존하던 원초적 사고방식을 넘어 종교적으로 다양한 문화 상황에서도 현명하게 대처해 나갔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전통, 성서의 권위와 해석에 관한 다른 입장, 신학적 성찰의 독특한 방법론 및 다양한 문화적 도덕론 등을 거치며 발전했습니다. 

더불어 세계의 지성, 윤리, 영성, 심리학 등 여러 학계의 발전도 수용하고 종합하며  성장했습니다. 이런 적응 없이 기독교는 발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연합감리교회 신학의 중요한 요소인 웨슬리의 “네 가지 원칙”은 여러 변화 속에 처한 오늘날의 우리에게, 신실한 해석의 눈을 제공해 줍니다.

우리는 성서의 권위를 높이 존중하며, 성서를 이해하기 위해 성서 신학의 깊은 연구를 적용합니다. 

또한 삶을 변혁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에 기반을 둔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그리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성령의 체험이 우리 삶 속에 다양하고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실천하는데, 최고의 지성과 냉철한 이성을 적용합니다.

성서를 이해하고 신학적으로 사고할 때, 가장 심오한 연구, 분석, 해석을 적용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최선의 모범을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깊이 사랑하듯 우리도 세상을 사랑하고,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되기를 추구합니다.

연합감리교회는 단순한 율법주의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를 둔다는 뛰어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느냐보다, 구원을 받아 무엇을 하느냐에 더 중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로 규정된 신앙인이 아니고, 은혜로 용서된 신앙인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변화되어, 이 세상에 성육신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연합감리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키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공동체 실현에 대한 비전을 저해하는 죄악의 힘이 존재함을 인정합니다.

이 같은 “죄”의 개념은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행동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성이 있기 때문에 죄인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 앞에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가 구원자임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 세례, 고백, 친교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연합감리교인들은 행동이나 편견을 바탕으로 남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에게 선포하고, 정죄는 오직 하나님만의 것임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식탁이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열려 있다는 것은 감리교 정신의 근간이 됩니다.

현재 연합감리교회 분열 원인은 누가 교회에 속하고 속하지 않는가, 누가 지도자의 자격이 있고 없는가, 동성애 결혼과 같은 문화 변화를 언제 받아들이고 거부하는가, 성경의 권위는 무엇인가, 성서 해석의 옳은 방법이 무엇인가 등의 논점에 대한 이해가 다름에서 생깁니다.

이런 논점들은 우리 역사에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감리교 이전의 교단들 역시 인종, 성, 노예, 고리대금, 인권 그리고 의로운 전쟁 등의 문제로 인해 분열을 고려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논의가 있을 때마다, 구약과 신약이 모두 여러 다른 입장을 옹호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인간의 입장을 옹호하고 논쟁에서 이기는데 사용되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에, 성경의 일부분만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거부해 왔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성경이 어느 시대의 공동체나 사회에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표현해 준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성경 전체의 통일성에 더 큰 비중을 둡니다.

어느 시대에나, 인간을 분열시키는 문제 그 자체 보다, 그 문제들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하여 새길을 여는가가 항상 더 중요했습니다.

성정체성에 관한 이견으로 야기된 분열은,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답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우리 교단의 오래된 성향을 보여줍니다.

연합감리교회는 모두가 포용 되어야 하는 복합적 현실에 대해 “이것 혹은 저것”  즉, 성소수자들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이분법적 형태의 응답을 추구해 왔습니다.

우리의 성경은 인간 중에 동성에 끌리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항상 존재해 왔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이 세상에 나타나는 모습에 대해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한 것은 아님을 보여줍니다. 다만, 성경에서 이처럼 현실과 다른 많은 사회 문화적 양상을 보여준다 하여, 그것을 단순하게 죄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중에는 성경의 역사적 상황이나 본 의미와는 상관없이 그저 단순히 동성애는 죄라고 이해하고 싶어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영어 성경에 현재 “동성애”라고 번역된 개념은 계몽주의 후 나타난 청교도적인 빅토리아 시대에 생긴 것입니다. 이는 동성애를 성행위만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이런 이해와 개념이 등장하게 된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고, 동성애의 “죄”란 것은 성행위와 상관이 없고, 하나님의 “번성하여 큰 나라와 백성을 세우라”는 말씀에 기본을 둔 공동체 언약을 위반하는 것이라 인식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보다 속세를 더 편애하는 그리스 철학의 이분법적 논리를 염두에 두고 신약성경을 이해하려 합니다. 

성서학자들은 “동성애”를 언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성서 구절들이 실은 고대 사회에서 전체 공동체에 대한 이해보다 개인적인 쾌락을 우선시하는 행동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동성애”라는 단어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구약과 신약이 쓰일 때는 근대의 성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깊은 신학적, 학문적 이해를 바탕으로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성경을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한, 오늘의 논쟁은 계속 다른 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미래를 위해, 하나님이 복합적으로 창조하신 우리 인간 공동체에 단순한 답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존중하며, 최고의 이성, 이해, 학문을 다해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할 것이며, 성경의 전체를 종합적으로 존중해야지, 일부 내용을 선택하여 우리의 세계관을 옹호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든 사람에게 나누는 것은 우리가 세례 때 받은 소명입니다. 정죄하고 판단하는 파괴적인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육신의 쾌락을 갈망하는 것이 죄라고 합니다. 그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합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에 누구의 죄가 더 잘못됐다고 주장하거나, 다른 이를 정죄하는 것을 포함한 나의 죄는 간과하며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실한 제자가 된다는 것은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문제를 가지고 이는 용서하지 못할 죄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실한 연합감리교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기독교 역사에서 정통이냐 이단이냐는 문제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과오를 기억합니다.

노예제도, 여성억압,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어린이 학대, 일부다처제, 하나님 백성의 권리라 주장하며 자행된 강간과 학살 등이 받아들여졌던 시대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는 하나님의 뜻에 위반되고 비인간적이라고 판단되어 집니다. 고기와 유제품을 함께 조리하는 것, 안식일의 노동, 이혼, 여성의 지도력, 채권 이자 관행들이 받아들여졌던 때도 있고, 거부되는 때도 있었습니다. 

법은 바뀝니다. 물론 율법에 대한 의존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하고 자유롭게 받아들이기가 항상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한 교훈을 배우고 또 배우지만 또 자꾸 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두려움과 떨림을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추구”해야 합니다. 

신실한 연합감리교인들은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완벽하게 해 주시지만, 우리는 현재 완벽한 상태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지만, 모두 같은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큰 사안이건 작은 사안이건 우리가 매사에 다 동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따로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가 많이 있지만, 우리의 다름이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나 전통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삶이 마음에 안 든다고 세례를 무효화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렵고, 깨지고, 힘이 없는 중에도, 세례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향한 우리의 비전을 공유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 정신은 승자와 패자를 갈라놓지 않습니다.

은혜의 힘으로 우리는 남을 정죄하지 않으며, 스스로 본 모습을 지켜나갑니다. 

우리는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동일한 의견을 가진 동지들과 함께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그중 다른 점을 인정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데, 이것은 서로 존중하며, 다른 길을 갈 수 있도록 틈을 열어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미를 달리 해석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큰 계명을 함께 따릅니다. 이웃이 비록 나의 신념과 삶에 도전하더라도, 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우리를 완성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공유하는 우리의 삶은 역동적으로 살아있고, 변화하는 관계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계속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도전하시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랑· 기쁨· 정의· 자비· 은혜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능력을 계속 확대해 주십니다.

저는 모든 연합감리교인들에게 바울의 로마서를 읽고, 공부하고, 성찰하기를 권장합니다. 로마서는 우리가 앞으로 교단의 미래를 계획하는데 너무나 필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현 상태에 안주하지 말고, 개혁에 열린 마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평화· 일치· 화해· 치유를 위해 함께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 판단을 맡기고, 빛과 생명과 희망을 주는 사역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스스로와 남을 용서하여, 그리스도의 몸 안에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다시 보고, 우리와 다른 입장의 사람들 역시 그리스도의 몸 안에 합당한 자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입장의 차이가 중요하지만, 이 세상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함께 하는 소명에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 “열린 마음, 열린 생각, 열린 문”의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런 공동체를 위해 하나님께서 저를 감독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저는 은혜의 감독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감독입니다. 희망의 감독입니다. 모든 생명을 환대하고 받아들이는, 구속된 창조를 일구는 감독입니다. 모든 장소와 시대 그리고 사람들을 위한 감독입니다. 이 소명을 영예롭게, 신뢰를 가지고 받아들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교회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신 이 창조 세계를 사랑합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은혜가 존재하는 미래가 모두에게 있기를 희망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이 우리와 함께하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성령의 계시와 협조가 있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맑은 정신과 마음으로 열심히 읽고 묵상하여 주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 된 다른 기독인들을 존중하고 정직하게 대화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필요한 수백만의 사람들을 위해 마음과 생각을 열어 주십시오.

앞으로도 계속 우리가 하는 행동과 말을 통해,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독교 공동체가 되도록, 함께 계획 세우기를 희망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안에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포용력이 큰 교회를 계획하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어느 장소에 있든지, 어느 시점에 있든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실행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자매·형제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가장 좋은 선물은 바로 우리에게 서로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 선물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서로 하나 되어, 이 세상을 위한 사역에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기를  희망합니다. 

영어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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